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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파즈호, 선장은 영화 보고 견습선원이 몰다 유조선과 충돌





국내외 대형 해난 사고
1912년 1514명 사망 타이태닉호, '빙산 조심' 경고 무시하고 가다 침몰
2006년 이집트 보카치오 98호, 화재 났는데 계속 항해 1000여 명 희생
1970년 319명 수장된 남영호, 선장 경험 열흘 된 2등 항해사가 몰아
1993년 292명 숨진 서해훼리호, 강풍에 출항 강행, 갑판장이 운항













만약 세월호가 보다 안전한 항로로 갔다면, 만약 경험 많은 선장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배를 몰았다면, 만약 승객들을 안심시키면서 신속하게 대피시켰다면…. 어느 한 고비에서만이라도 누군가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세월호의 아이들은 무사했을 것이다.



 처음 배를 바다에 띄운 이후 인류는 수많은 침몰사고를 겪어왔다. 대부분은 자연이 아닌 사람 탓이었다. 수많은 ‘만약’의 고비에서 방심하는 쪽을 택했던 사람들이 만든 참사였다.



 영화 ‘타이타닉’ 때문에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의 무대로 알려져 있는 타이태닉호 침몰 사건 역시 방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타이태닉호는 1912년 4월 15일(현지시간)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뉴욕으로 가던 중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승선자 2224명 중 1514명이 숨졌다. 당시 타이태닉호는 세계 최대 여객선으로 ‘침몰할 수 없는(unsinkable) 배’로 불렸던 호화 여객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선장과 승무원은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무시했다.



 빙산이 떠다니는 위험지역인데도 전속력에 가까운 시속 40㎞의 빠른 속도로 배를 몰았고, 빙산을 조심하라는 무선통신의 경고도 무시했다. 밤바다는 마법에 걸린 듯 고요했다. 망루에 올라 전방을 감시하는 승무원은 망원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망원경은 옷장 안에 있었는데 보초 근무하러 나올 때 옷장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망루에 있던 승무원이 빙산을 발견한 것은 빙산이 눈앞 450m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구명재킷과 구명보트는 승객 수의 절반밖에 없었다. 바다에 뛰어든 많은 이는 북대서양의 차가운 물에서 심장마비나 저체온증으로 30분을 못 넘기고 죽었다. 20㎞ 거리에 화물선 캘리포니아호가 있었지만 통신사가 자느라 구조요청을 듣지 못했다. 응답이 없자 타이태닉호는 신호탄을 발사했다. 하지만 구조요청용 빨간 불꽃이 없어 흰 불꽃을 쏘았다. 캘리포니아호는 이를 불꽃놀이로 생각했다.



 사상 최악의 선박 침몰사고는 87년 12월 20일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한 도나파즈호 침몰사고다. 4375명이 사망했다. 사고는 승객들이 잠에 빠져 있던 밤 11시30분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하면서 일어났다. 이 사고로 벡터호에 불이 붙었고, 불은 도나파즈호와 주변 바다로 옮겨붙었다. 승무원들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구명조끼가 들어 있는 라커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승객들은 불타는 바다 위로 뛰어내렸다. 살아남은 사람은 4300여 명 중 단 24명뿐. 이후 발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고 당시 도나파즈호에는 견습선원 한 명만이 모니터를 하고 있었다. 선장은 자신의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다른 승무원들은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벡터호는 운항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였고 자격을 갖춘 지휘자도 없었다. 배의 승선 가능 인원은 1424명이었지만 실제론 43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해운사가 값싼 추가 탑승권을 불법으로 팔았던 것이다. 원래 이 배는 63년 일본에서 608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배로 제조됐지만 몇 차례의 개조 과정을 거치면서 1400여 명이 탈 수 있게 됐다.



 94년 9월 27일 에스토니아호에 승선했던 818명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 침몰한 배 안에 갇혀 있다. 전날 저녁 승객 989명을 태운 배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출발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오전 1시 ‘쿵’ 하는 소리가 났고, 15분 후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30분 후 배는 완전히 기울어졌고, 미처 나오지 못한 승객들은 객실에 갇혔다. 핀란드·스웨덴의 선박과 헬기 수십 대가 긴급 출동해 구조를 벌였지만 수온이 차고 강풍이 불어 구조가 어려웠다. 당시 배에는 구명선이 있었지만 내려지지 않았다. 스웨덴 정부는 3개월간의 인양 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포기하고 침몰 선박을 수중무덤으로 보존하겠다고 발표했다.



 2006년 이집트의 여객선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는 180도 회전한 후 물속에 가라앉아 1000여 명의 희생자를 냈다. 이 배는 2월 2일 저녁 7시쯤 사우디아라비아의 두바항을 떠나 이집트로 가던 중이었다. 승객 1310명과 승무원 104명, 자동차 220여 대가 실려 있었다. 출항 1시간30분 후 배 안 자동차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승객들은 회항하자고 했지만 선장은 이를 무시하고 항해를 계속했다. 3~4시간 후 불길은 되살아났다. 강풍과 높은 파도로 불이 배 전체로 빠르게 번졌고 폭발음에 놀란 승객들이 화재 지점과 반대편 갑판으로 몰리면서 배가 무게중심을 잃었다. 구명보트에 가장 먼저 승선한 것은 선장이었다. 구조선이 현장으로 출발한 것은 배가 침몰한 지 10시간이 지난 후였다.



 2012년 1월 이탈리아 크루즈선인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 때도 선장이 맨 먼저 도망쳤다. 항로를 이탈해 운항하다 암초에 걸렸다. 이 사고로 승객 4200여 명 가운데 32명이 사망했다. 프란체스코 셰티노 선장은 탈출당시 배에 남아있던 승객 300여 명에 대한 직무유기죄를 적용받아 승객 1인당 약 8년형씩 총 2697년을 구형받고 재판 중이다.



국내에서도 크고 작은 침몰 사고가 계속됐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는 초속 13m의 강풍이 부는 날씨에 출항을 강행했다. 짙은 안개와 높은 파도를 만나 뱃머리를 급하게 돌리다 돌풍과 파도를 만나 침몰했다. 사고 당시 서해훼리호를 운항한 것은 항해사가 아닌 갑판장이었다. 승무원들도 규정의 절반만 탔다. 정원 220명의 배에 362명를 태운 배는 높은 파도에 중심을 잡지 못해 뒤집어졌고, 292명이 사망했다.



 70년 12월 15일 오전 1시 승객 331명을 태운 남영호는 서귀포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열흘 전에 바뀐 선장은 경험이 부족한 2등 항해사였다.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닷속에 조난자들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파도에 휩쓸려 갔다. 구조된 승객은 단 12명뿐. 남영호는 아직도 희생자와 함께 서귀포 앞바다에 묻혀 있다.



 87년 6월 16일 경남 거제군 해상에서 해금강 관광에 나섰던 목조 유람선 극동호는 폐차 처분된 자동차의 엔진을 달고 있었다. 구명조끼는 도난 방지를 위해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소화기는 녹슬어 작동하지 않았다. 불길이 번지자 선장이 뱃머리를 육지로 돌리려 했으나 기관이 꺼지면서 배가 말을 듣지 않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승객 86명 가운데 35명이 사망했다.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한 타이태닉호 선장·승무원들



타이태닉호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침몰 직전까지 승객 구조를 돕다가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 그는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대피시킬 것을 지시했다. 배가 본격적으로 기울어지면서 남자 승객들이 앞다퉈 구조 보트에 타려고 달려들었는데, 승무원들은 하늘에 권총을 쏘면서 이를 막았다. 타이태닉호의 생존자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들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일등항해사 윌리엄 머독을 비롯해 많은 승무원도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돕다가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 기관장과 기관사들도 끝까지 전기를 작동시켜 탈출을 도왔다. 배의 설계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구명조끼를 거부하고 시가를 피우며 침몰을 맞았다. 배의 악단은 구명정으로 몰려가는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연주를 계속했다. 나중에 영국인들은 스미스 선장을 영웅으로 추모했다. 그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는 선장을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



박혜민·김민상 기자



사진설명



위 사진은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를 재현한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중앙포토]



② 1912년 4월 15일 1514명 사망 영국 타이태닉호 북대서양서 유빙과 충돌 침몰



③ 1970년 12월 15일 319명 사망 대한민국 남영호 제주도 서귀포 앞 침몰



④ 1987년 12월 20일 4375명 사망 필리핀 도나파즈호 유조선과 충돌 침몰



⑤ 1993년 10월 10일 292명 사망 대한민국 서해훼리호 악천후 항해 중 침몰



⑥ 1994년 9월 27일 818명 사망 에스토니아호 발틱해서 원인미상 침몰



⑦ 2006년 2월 3일 1000여명 사망 이집트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화재로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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