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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상실을 경험할 때

김형경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잠에 떨어져 있고 요양원에 도착해서도 몽롱한 졸음기를 매단 채 움직인다. 어머니 관 앞에서 밤을 새우면서도 반쯤 잠에 떨어져 있다. 소설은 몽유병 환자 같은 인물과 그가 경험하는 질식 당할 듯한 더위, 눈을 찌르는 햇살을 몽환적으로 묘사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 주인공도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기차를 탄다. 그는 기차에서 자신이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놀라움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무력한 감회’를 느낀다.



 저 소설의 주인공들은 중년 남자이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상실과 만났을 때 슬퍼하는 대신 몽롱한 졸음의 상태에 머물거나 무력한 감회를 느낀다. 그것은 상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반응이자 정당한 반응이다. 충격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경직되고 무관심해 보이는 마비 상태가 상실에 대한 첫 반응임을 모르는 이들은 가끔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내면을 들여다보며 죄의식을 느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타인을 함부로 오해하기도 한다.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자살을 둘러싼 경험들을 그린 소설이다. 그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 체험에 대해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나는 무감각해지고 모든 것이 갑자기 근거 없는 듯 여겨진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자살에 대해 언급하려 드는 이들에게 화를 낸다.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곧장 화제를 돌려 농담거리를 듣는 일이다.”



 충격적인 마비의 순간이 지나고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남자들은 슬퍼하기보다 분노하는 쪽을 택한다. 여자들이 상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남자들은 슬퍼하기보다는 분노하는 것이 더 쉽고 익숙하다. 화낼 상황도 대상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의 분노는 정당해 보인다. 심리적으로도 분노는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정당한 반응이다. 깊은 잠과 같은 마비에서 풀려났다는 의미이며, 농담 거리로 회피하거나 중독 물질에 빠지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소중한 대상을 잃은 후 격노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화내는 상태를 허용하고 수용해주어야 한다. 분노를 표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정서적 위기 국면을 무사히 넘기는 중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까지.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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