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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신문으로 본 시시콜콜 풍속사

일간지 지면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사건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태 소식이나 유명인의 추문, 일상의 작은 소동이나 소란도 다룬다. 무게감이 덜할지는 모르지만 당대 독자들의 욕망과 내면을 솔직히 반영하는 기사들이다. 딱딱한 역사 교과서로는 알 수 없는 미시사·풍속사의 영역이기도 하다.

 근대문학 전문가인 이승원(42·인천대 국문과 초빙교수)씨가 펴낸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천년의상상)은 그런 점에 착안했다. 당시 대한협회의 기관지였던 대한민보 1면에 실렸던 이도영(1884~1933) 화백의 1900년대 초반 만평, 같은 시기 각종 일간지 3면에 실린 기사들을 분석했다.

당시 신문의 1면은 논설·관보·외신 등을 중심으로 한 정론 기사를 주로 다뤘다. 3면에는 진지한 사회 기사도 실렸지만 잡다한 사건 보도, 소설이나 지방통신 기사, 기담과 광고 등이 실렸다. 한 마디로 표정 있는 지면이었다.

 스캔들·사생활·성병 등 15개 소주제로 나눠 이씨가 복원한 1900년대 초반의 사회상은 흥미롭다. 1910년 2월 20일자 이도영의 만평은 친일파 이완용과 며느리를 함께 등장시켰다. 이완용은 병원에 입원 중이다. 1909년말 독립운동가 이재명의 칼을 맞아 중상을 당했다. 한데 면회온 며느리가 수줍은 표정이다. 장안을 떠들석하게 했던 이완용과 며느리의 불륜 소문을 그린 것이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10월 28일자에는 이런 이발광고가 실렸다. “본인이 이발 졸업생을 고빙(雇聘)하고, 소독기계를 특별히 신설하였사오니 첨군자(僉君子)는 종로 어물전 뒤 고등 이발소로 내림하시기를 희망함. 홍종윤.” 고빙은 ‘학식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예의를 갖춰 모셔 옴’, 첨군자는 ‘여러분’이라는 뜻이다. 당시 이발사는 신종직업이었다. 단발령으로 인한 사회 변화상이 짐작된다.

 이도영의 만평은 모두 29컷이 실렸다. 당시 사진자료 64종도 곁들였다. 이승원씨는 “만평과 신문기사를 함께 읽으면 20세기 초반의 풍경들이 말을 걸어온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들이 우리의 진정한 과거, 절실하게 살아낸 역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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