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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플레이볼 … 절망에 굴복 않는 의지

프로야구가 세월호 사고 애도에 동참하는 뜻으로 20일까지 응원전을 중단한다. 17일 잠실구장 전광판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과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문구가 표시됐다. 이날 프로야구 4경기는 우천 취소됐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온 나라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오열하는 어린 학생과 가족은 남 같지 않다. 이 같은 참사 앞에서 놀이이자, 축제의 성격이 강한 스포츠는 도대체 무엇인가.

 2001년 9·11 테러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일주일간 중단됐다. 애도하는 분위기와 더불어 스타디움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수만의 인파가 모일 경우 테러의 또 다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비극적 사태 속에서 복귀해야 하는 심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변호사·회계사·배관공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은 마음으로 일터로 복귀한다.” 리그를 재개하며 밥 분 신시내티 레즈 감독이 남긴 말이다.

보스턴, 우승 트로피로 테러 아픔 애도 보스턴 레드삭스 외야수 조니 곰스가 지난해 11월 MLB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에 내려놓고 있다. [보스턴AP=뉴시스]
 경기가 재개되던 날 선수들은 성조기를 모자와 유니폼에 부착하고 나왔다. 경기장 정비 시간에는 ‘야구장으로 나를 데려가 줘’라는 노래 대신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국가를 불렀다. 뉴욕 메츠 선수들은 구조 과정에서 희생된 경찰과 소방관을 기리는 뜻으로 ‘NYPD(뉴욕 경찰국의 약자)’ ‘FDNY(뉴욕 소방국의 약자)’라고 새긴 모자를 쓰고 경기에 임했다. 스포츠는 삶의 일상성(ritual)을 회복하고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누는 장이 됐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이 일본 도호쿠(東北)지역을 강타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를 한 달 반이나 중단할 정도로 충격이 큰 재해였다. 도호쿠를 연고로 하는 일본 프로야구 만년 꼴찌팀 라쿠텐은 홈구장이 부서져 한 달 넘게 원정경기만 다녔다. 바로 그 팀이 지난해 11월 3일 프로야구 정상에 올랐다. 일본을 대표하는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는 순간 일본 전역이 들썩거렸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팬들은 임시 주택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이끈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지진으로 고생하는 여러분을 보면서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아픔을 달래드리겠다는 각오로 3년간 싸웠다”고 말했다. 라쿠텐은 역경을 딛고 재기를 다짐하는 도호쿠의 상징이 됐다.

리버풀, 힐즈버러 희생자 위한 빈자리 13일(한국시간)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FA컵 준결승. 힐즈버러 참사로 숨진 96명을 기리며 96석을 비운 채 경기를 했다. [런던 액션이미지=뉴시스]
 J리그 야마가타 소속 트레이너는 종합스포츠센터에서 지진 피해자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밀착형 봉사활동을 펼쳐 화제가 됐다. J리그는 2012년과 2013년 올스타전을 동일본 지진 부흥을 지원하는 특별 경기로 치렀다. 스포츠 스타의 기부도 이어졌다. 메이저리거 이치로 스즈키는 1억 엔(약 13억3000만원)을 내놓았다. 마쓰이 히데키는 62만 달러(약 6억8200만원)를 기부했다. 박찬호와 박지성 등 국내 스포츠 스타도 각각 1억원을 쾌척했다.

 지난 15일은 보스턴마라톤 테러 1주년이었다. 1년 전 압력솥 폭탄이 터져 3명이 숨지고 264명이 부상당했다. MLB 보스턴 레드삭스는 테러 이후 치른 홈경기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유니폼도 평소와 달랐다. 유니폼 상의에 레드삭스(Red Sox)라는 팀 명칭 대신 보스턴(BOSTON)이라는 지명을 새겼다. 지역 사회가 한마음으로 단합해 아픔을 이겨내자는 취지였다. 자니 곰스(34)는 테러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레드삭스와 MLB 사무국, MLB 선수협회가 보스턴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64만6500달러(약 7억원)를 기부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보스턴은 테러 현장에서 우승 퍼레이드를 하고, 우승 트로피를 세워놓은 뒤 희생자를 다시 추모했다. 2012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5개 팀 가운데 최하위였던 보스턴의 환골탈태였다. 테러 1주년 기념식에서 “결승선은 테러범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고 말한 조 바이든 부통령의 연설을 레드삭스는 스포츠를 통해 보여줬다.

일본 J리그, 대지진 추모 올스타전 일본 프로축구 J리그는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힘을 하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동일본지진 부흥기념경기를 치렀다. [J리그 홈페이지]
 영국은 25년 전 힐스보로 참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89년 4월 15일 힐스보로 경기장에서 열린 FA컵 준결승에서 전반 7분 철조망이 부서지며 리버풀 팬 96명이 압사한 사고다. 전반 7분에 일어난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리버풀은 힐스보로 주간에 열리는 경기는 7분 늦게 시작한다. 이 사고는 안전 문제에 대해 영국 사회가 뼈저린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됐다. 92년 창설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사고를 막기 위해 지정 좌석제를 운영하는 등 안전 문제에 철두철미하다.

 김정효(체육철학) 박사는 “온 나라가 침울하고 비통에 잠겨 있는데 스포츠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지속하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치어리더의 응원을 자제하는 등 아픔에 동참한다는 상징적인 조치를 하면서, 매일 해 왔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게 사회 전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은 “안산 단원고는 프로축구 안산 경찰청의 홈구장(와∼스타디움)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지역 사회의 아픔이 커 프로구단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매우 조심스럽다. 표나지 않으면서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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