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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6번째 북한 다녀온 전 주한미국대사 도널드 그레그

그동안 20명의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을 거쳐 갔다. 그중 도널드 그레그(86) 전 대사만큼 오랫동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레그는 1973년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으로 서울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과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하며 때론 목격자로, 때론 주역으로 한국 현대사에 깊숙이 관여했다. 두 번에 걸친 미국의 김대중 구명(救命) 활동에 참여했고, 박정희 정부의 핵무기 개발 포기, 노태우 정부의 주한 미군 전술핵 철수, 팀스피릿 훈련 중단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은퇴 이후에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과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회장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여섯 번째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그 전 대사를 뉴욕 인근 아몽크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그레그 전 대사는 한반도 분단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언급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미국과 북한이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6년 만에 평양에 갔는데 방북 경위가 궁금하다.

 “PCI 회장 자격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방북을 희망하는 편지를 썼다. 12년 전에도 그의 아버지(김정일)에게 편지를 썼고, 그걸 계기로 처음 평양에 갔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논의를 해야 하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 방북하고 싶다고 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김정은에게 편지가 전달돼 북한 외무성 초청으로 지난 2월 평양에 가게 됐다.”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나.

 “강석주 노동당 비서와 이용호 외무성 제1부상 등 북한의 넘버 3나 넘버 4급 인사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도자가 가진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내성적인 성격의 아버지보다는 개방적인 성격의 할아버지(김일성)를 닮았다. 편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안다. 이 점을 십분 활용해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바꿔 나갈 생각인지 그 청사진을 본인 육성으로 외부 세계에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06년 평양에 갔던 ABC 뉴스의 메인앵커인 다이앤 소여를 다시 보내 김정은과의 인터뷰를 주선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세상은 그를 ‘악마’로 여길 것이다. 고모부를 죽인 살인자이고,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는 독재자라는 말을 계속해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먼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외부 세계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들도 눈을 반짝이며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하더라.”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예컨대 얼마 전 유엔에서 북한 인권보고서가 나왔다. 부인하고 화를 내기만 할 게 아니라 정면으로 대응하란 것이다. 세상이 뻔히 알고 있는데 무조건 부인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또 북한 인권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다 김정은 탓인 것처럼 비난하면 그로서도 억울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김정은 스스로 외부 세계에 ‘그렇다.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바꾸려 한다’는 식으로 직접 말을 하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정말 바꿀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바뀌는 것은 변화가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걸 스스로 각성했을 때뿐이다. 미국이 내민 손을 중국이 잡은 것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1900만~2000만 명의 목숨을 잃고 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걸 마오쩌둥(毛澤東)이 깨달았을 때였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소련도 변화를 택했다. 반면 우리가 변화를 억지로 강요했을 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쿠바와 이란이 그렇고, 과테말라와 베트남이 그렇다.”

 -서른 살밖에 안 된 김정은이 절대권력을 확보했다고 봐야 하나. 아니면 배후에 누군가 있다고 봐야 하나.

 “권력 이양은 끝났다고 본다. 그가 조언을 구하는 원로그룹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북한은 미국 역사상 최악·최장의 정보 실패사례다. 위성으로 북한을 손바닥처럼 관찰하고 정밀 감청을 해도 우리는 그들의 내부를 알지 못한다.”

 -올 들어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등 대남 유화책을 폈던 북한이 최근에는 미사일을 쏘고 4차 핵실험으로 위협하는 등 다시 도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용호는 내게 ‘버락 오바마는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정권을 기다리겠다. 일단 남한과 먼저 대화할 테니 미국은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의 진심이라고 본다. 최근 북한이 도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미 연합훈련 때문이다. 그들은 한·미 연합훈련을 극도로 싫어해 보복적인 대응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레그 전 대사는 “한국은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며 “이 점에 대해 늘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귀하는 박근혜는 아버지의 머리와 어머니의 가슴을 동시에 물려받았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 긍정적 기여를 할 거란 기대를 표명한 바 있는데.

 “한국 현대사에는 3명의 걸출한 대통령이 있었다. 박정희·노태우·김대중이다. 노태우는 한국에서 너무나 저평가돼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의 업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박근혜는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북한에 손을 내민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했다고 본다.”

 -대북 신뢰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엔 우리는 좋은 편이고, 너희는 나쁜 편이기 때문에 너희가 변하면 모든 일이 잘될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 좀 아쉽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좋은 제안을 했다. 그걸 실천으로 보여 줬으면 한다. 박 대통령이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2~3년 안에 남북 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 들어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며 통일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데.

 “나는 ‘잭팟(jackpot)’이나 ‘보난자(bonanza)’ 같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승패를 전제로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통일은 서로 윈윈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급격한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지면 한쪽은 졌다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이겼다고 느낄 것이다. 서로 이익이라고 느끼려면 상호 합의에 의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밖에 없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오바마는 지금 북한에 손을 내밀기 어려운 처지다. 정치적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 공화당은 즉각 ‘또 나쁜 놈들에게 손을 내민다’고 비난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존 케리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문제로 정신이 없다. 그렇다 보니 같은 말(馬)을 두 번 살 수 없느니, 대화를 하는 것은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하는 것이니 하는 말만 들린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시간 낭비다. 그걸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에 핵무기고를 늘릴 시간만 주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는가.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 경제가 나아질 때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보장 수단이다. 방어적 성격의 억지력이다. 미국과의 핵전쟁이 북한의 절멸을 의미한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만난 북한 관리들은 미국과 진정한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 억지력은 필요 없어질 것이고, 핵무기는 당연히 폐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뭔가.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다. 우리가 그쪽으로 진지하게 움직이면 북·미 간 불신이 줄어들면서 핵 문제를 논의할 여지가 커질 것이다.”

 -한국은 귀하에게 무엇인가.

 “나는 일본에서 10년을 근무했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진심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한국인은 다르다.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인은 항상 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말했다. 그래서 훨씬 상대하기 편했다. 한국은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점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가 주한 미대사로 있으면서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시킨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가 나와 한마디 상의 없이 이를 부활시켰다. 그로 인해 1991년을 전후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긍정적 성과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남북한 사이에 격차가 벌어진 가장 결정적 요인이 뭐라고 보나.

 “처음엔 북한이 남한보다 강했다. 그걸 역전시킨 최대 공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뛰어난 경제관료와 기업가를 발탁해 일할 수 있는 여지를 줬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북한은 달랐다. 북한에는 공포와 일인통치 개념만 있었다.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사회와 전체주의에 묶여 있는 사회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귀하가 염원하는 한국의 모습은.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자동차로 서울과 평양을 오갈 수 있고, 남한 학자들이 북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남북 화해가 이뤄지면 한국은 아주 파워풀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귀하는 천안함 사건에서 북한 편을 들고, 평양을 들락거리며 북한 대변인 노릇을 하고,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에는 눈을 감는 종북인사란 비판이 일각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들의 자유다. 일일이 변명하거나 반박할 생각은 없다. 대학에서 정보 분야에 대해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과 진실은 힘있는 사람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거리낄 것도 없고 불편할 것도 없다.”

[인터뷰 후기] 지난 생각에 목이 멘 노년

‘팟셔드(Pot Shards)’는 깨진 항아리 조각을 의미한다. 오는 6월 워싱턴의 뉴아카데미아 출판사에서 출간될 그레그 대사 회고록의 제목이다. 지난 5일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약 60㎞ 떨어진 전원마을 아몽크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회고록의 마지막 교정쇄를 보고 있었다.

 “주한 미대사로 있을 때 서울 시내 건설 현장을 지나칠 일이 있으면 차에서 내려 둘러보곤 했어요. 땅을 파다 보면 깨진 도자기 조각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그때를 떠올리고 붙인 제목입니다.” 그의 회고록에는 ‘CIA, 백악관, 그리고 두 개의 코리아에서 보낸 삶의 조각들’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인터뷰 말미에 한국과의 운명적 관계에 대해 묻자 그는 회한에 잠긴 듯 한참 동안 침묵했다.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언급하고, CIA 요원으로 자신이 맡았던 첫 번째 임무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목이 메었다. “6·25 전쟁 당시 태평양의 사이판섬에서 많은 한국 청년들을 정보원으로 훈련시켜 적진에 침투시켰지만 거의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요.”

 “죽는 날까지 미국과 북한이 신뢰를 쌓고, 남북 관계가 진전되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습니다.” 코리아에 대한 미국의 ‘원죄’와 CIA 요원으로서 첫 경험에 대한 날카로운 기억의 파편들이 지워지지 않는 ‘한(恨)’으로 남은 것일까.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중앙일보 뉴욕지사 신동찬 기자

그레그 대사

1951년 윌리엄스 대학 졸업, 31년간 CIA 근무, CIA 한국지부장(73~75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NSC 정보국장, 조지 H W 부시 부통령 외교안보보좌관, 주한 미대사(89~93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93~2009년), 2002년 첫 방북, 현재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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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