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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 미국, 변심하다

[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목전에 둔 현 시점에서 한국과 아시아는 미국에 어떤 존재인가.

 2년 반 전 오바마 행정부가 천명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대로라면 최고의 요충지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지난 2월 방한한 존 케리 국무장관도 “아태 지역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이 미국의 최우선 과제임을 재확인한다”고 선언했다.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회담 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였다.

 과연 그런가. 한국 언론 앞에선 이렇게 얘기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케리만큼 아시아를 등한시한 미 국무장관도 드물다. 케리의 관심이 어디서 맴도는지는 국무부 홈페이지의 출장 기록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지난해 케리가 유럽·중동에서 보낸 시간은 135일. 반면 아시아는 단 31일에 그쳤다. 특히 이스라엘과 옆나라 요르단에는 열 번이나 날아가 36일간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올인했다.

 올 들어 유럽·중동 편식은 더 심해졌다. 이 지역엔 53일 머물렀지만 아시아는 딱 9일 있었다. 한국에도 사흘 왔다지만 그나마 비행시간을 뺀 실제 체류시간은 24시간이 안 됐다. 미 언론들이 “급부상한 아시아를 팽개치고 중동평화에 병적으로 집착(obsession)한다”고 빈정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 맹방을 자처하는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조차 “케리가 잘못된 강박관념하에 행동한다”며 “유일한 해결책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사라져 주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아시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 지역을 휘젓고 다녔던 전임자 힐러리 클런턴과 너무나 비교된다.

 오바마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그의 머리에선 한국과 아시아의 존재가 희미해진 느낌이다. 오바마의 국정연설 때면 단골로 등장했던 한국이란 단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실종됐다. 일본 역시 거론되지 않았으며 제2의 대국 중국마저 딱 2번 등장했다. 한국이란 단어가 2011년엔 7번, 2012년에도 한번 언급됐던 것과 대비된다.

 국방비가 확 깎이면서 당초 약속했던 아시아 내 군사력 강화는 엄두도 못 낸다. 지난달 초 미 국방부 카트리나 맥퍼랜드 군수담당 차관보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정책을 재검토 중”이라며 “솔직히 말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순진하게 털어놨다 혼쭐이 났다. 이런데도 아시아로의 중심축 운운하니 이런 희극이 없다.

 작금의 상황은 오바마 행정부의 관심과 에너지가 갈수록 유럽·중동에 빨려드는 형국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확인된 실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굴기를 노린다. 오바마 행정부로선 서유럽과의 유대 강화로 러시아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방 전문가 사이에서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Europe)’이 절실하단 주장이 갈수록 거세지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대서양 양편에선 의미심장한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란 초대형 경제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미국·유럽이 힘을 모으고 있으며, 최근 이 노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사실이다. TTIP는 쉽게 말해 미국 주도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추진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유럽·대서양 판이다. 더뎠던 TTIP 협상이 갑자기 빨라진 건 우크라이나 때문이다. 최근 사태로 미국과 서유럽은 동구권 붕괴 이후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푸틴의 강력한 러시아 정책이 TTIP의 고성능 촉매제가 된 셈이다. 이 경제공동체가 실현되면 대서양 동맹을 단단히 들러붙게 할 아교 노릇을 할 게 틀림없다.

TTIP가 완성되면 전 세계 GDP의 45%를 차지해 태평양 중심의 TPP(점유율 38%)보다 더 커진다. 세계경제 질서가 재편되면서 한국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한국은 현재 미국·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덕분에 이 거대시장에서 관세가 줄어 역외국가보다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나 TTIP가 발효되면 가입국 모두에도 똑같은 혜택이 돌아간다. 한국의 우위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변심한 애인과 미련 없이 헤어지듯, 마음 떠난 미국도 쿨하게 보내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한국으로선 절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미국과 대화를 요구하며 떼를 쓰는 북한을 이고 있는 한,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도움이 절실하다. 이런 마당에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일주일 뒤로 다가왔다.

 그간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과거사 갈등으로 외교력을 낭비한 측면이 많다. 외교력을 총동원해 오바마의 방한을 끌어낸 것도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싶다. 이번에 오바마가 일본만 방문한다고 이를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관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과연 논리적인가. 참고로 그간 오바마는 한국은 3번, 일본은 2번 방문했었다.

 일본은 오바마 방한에 맞춰 TPP 협상의 대폭적인 양보 등 여러 선물을 준비한다는 소식이다. 반면 한국은 특별히 줄 게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로서는 간곡한 설득을 통해서라도 오바마의 머릿속에 한국과 아시아의 중요성을 다시금 심어놓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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