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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월'호 참사는 안전 후진국의 인재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
해사수송과학부·전 선장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야간이 아닌 대낮에, 그것도 해상 상태가 양호한데도 이런 사고가 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데다 침몰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인명사고로 연결됐다는 것이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는지 참담하다. 안전 면에서 우리가 영원히 후진국으로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와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세월호는 좌초(坐礁) 후 선체가 왼쪽으로 90도 기울긴 했지만 2시간 반 가까이 떠 있었다. 해경·해군은 구조 선박 수십 척과 헬기 18대를 보내 구조 중이라고 했고, 일부 구조 장면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장면을 지켜 본 국민의 입장에서는 백주 대낮에 눈뜨고 당한 것이다.

 사고 원인이 파악되지 않아 더욱 당황스럽다. 일단 관계 당국은 ‘무리한 변침’이 원인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변침(變針)은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급격하게 변침하면 원심력에 의해 배에 경사가 생긴다. 이때 생기는 경사를 ‘외방경사’라고 한다. 많은 승객이 증언한 바와 같이 ‘쾅’ 하는 소리가 난 것은 1·2층에 실린 화물 컨테이너와 승용차 등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체에 부딪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세월호에는 차량 180대와 컨테이너 화물 1157t이 실린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이들 화물은 결박(라싱)돼 있었겠지만 혹시 안전불감증으로 결박하지 않은 상태로 출항했다면 화물이 한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있다. 즉, 급격한 변침으로 결박 화물이 이탈하고 그 여파로 배가 서서히 기운 뒤 나중에는 급격하게 기울어진 것이다.

 그러나 선박이 전복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배 전체적으로 GM(전문용어로 무게중심과 경심 간의 거리)이 불량할 경우다. 일반적으로 선박은 출항 직전 GM을 60~80㎝로 조정하여 항해를 시작한다. 선박이 저렇게 급속히 전복되는 것은 GM이 불량한 상태, 즉 GM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경우다. GM이 불량한 상태로 출항하였는데 선체 내 어떤 화물 즉 컨테이너 등이 움직였다면 급격히 전복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GM 불량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조타를 크게 하더라도 선박이 뒤집히는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세월호는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해수부 권고 항로(맹골수도)를 벗어나서 운항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천항에서 3시간 정도 늦게 출항하였는데,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좀 더 거리가 짧은 항로를 택하였고 결과적으로 지정항로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는 인적 과실과 연결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선박 사고가 대형 인명참사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선박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구명조끼를 입는 것이고 그 다음 할 일은 갑판 위로 나가는 것이다. 이는 선박의 전복 및 화재 등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기본 수칙이다. 선박에서 경미한 사고라도 나면 갑판 위로 올라가는 것은 기본적인 시맨십(seamanship)에 속한다. 선장과 대다수의 선원들이 구조됐다는 것은 그들이 이 원칙을 잘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는 계속적 ‘선내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황당한 안내 방송을 한 것이 가슴 아픈 사고로 연결된 것이다.

 사고 발생 시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구조 요청이었는데도 관계 당국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신고하지 않은 것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 사고 선박이 사용할 수 있는 통화장비로 VHF가 있다. 이것으로 쉽게 구조 요청할 수 있다. 선장이 먼저 탈출했다는 것도 기본적인 시맨십에 어긋난다.

 구명정이 진수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구명정은 중력식과 자유낙하식이 있고, 구명벌은 수압식이 있다. 어떤 형태일지라도 구명정이 진수되지 않은 것은 차후 사고에 대비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으려면 원인별로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 만약 인재라고 한다면 여객선에 승무하는 해기사의 해기 자격을 좀 더 끌어올려야 할 것이고, 선체의 노후나 구조변경이 문제라면 선박 검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만약 여객선 운항상의 문제라고 한다면 여객선운항관리제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 사고의 수습 과정에서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의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안전을 강조하지만 막상 현장에는 행정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안전행정부는 이번 기회에 안전감사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업무나 재정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안전에 대해서 철저하게 감사하는 시스템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각 작업 현장에는 안전감독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번 참사의 수많은 원인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재(人災)’다. 비극적인 참사를 계기로 안전 패러다임을 확실하게 바꾸는 것이 그나마 끔찍한 희생을 고귀한 희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살아남은 자의 최소한의 몫이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해사수송과학부·전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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