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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홈쇼핑의 갑질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롯데홈쇼핑 대표와 직원이 납품업체에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불려갔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내게 든 첫 번째 의문은 왜 납품업체가 홈쇼핑에 뒷돈을 줘야 했느냐였다. 좋은 시간을 배정받기 위해서 그랬다는데, 그렇다면 왜 지상파TV 광고엔 없는 뒷돈이 홈쇼핑에만 필요한가. 수소문 끝에 몇 달 전 홈쇼핑에 욕실용품을 납품했다는 지인 K사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K사장은 “우리 같은 작은 기업에 홈쇼핑은 절대 갑”이라고 말했다. 그가 롯데홈쇼핑의 문을 두드린 건 지난해 말. 첫걸음부터 막혔다. 담당 상품기획자(MD)가 만나주질 않았다. 먼저 로비 전담 벤더사를 꼭 거쳐야 했다. (홈쇼핑과 벤더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 평소 온갖 접대에 퇴직 후까지 살펴준다고 한다.) MD를 만나는 중개료 명목으로 매출의 6%를 벤더사에 줘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납품 계약을 했다. 금요일 저녁 7시, 이른바 골든 타임이다.

 “홈쇼핑은 인터넷보다 싸야 합니다. 돈 벌 생각 마세요. 홈쇼핑은 판매가 아니라 광고예요. 한 시간 동안 시청률 0.2~0.4%에 노출됩니다. 30초짜리 지상파 TV 광고보다 훨씬 효과 좋습니다. 광고비로 1시간에 1억원 쓸 생각 있으면 물건 들고 들어오세요.”

 관행이라며 새파랗게 젊은 상품기획자(MD)가 견적을 뽑아줬다. 납품 수수료는 37%. 하지만 어디 그게 다일까. “홍보 영상 아시죠? 왜 홈쇼핑 중간에 제품 홍보하는 거. 무조건 ○○사에서 찍어야 합니다.” 그렇게 2500만원이 더 들어갔다. 내가 찍어도 저것보다 나을 것 같은 허름한 홍보 영상에 왜 수천만원을 써야 하나? 동영상 제작한 ○○사가 홈쇼핑 계열사 아냐? 의문과 불만은 입으로 삼켜야 했다. 관행이라잖은가.

 “사은품도 준비하세요. 모델료에 반품이랑, 무료 체험 비용은 당연히 그쪽에서 부담하는 거 아시죠?” 사은품은 라면 한 박스. “왜 남의 회사 제품을 내 돈으로 사서 사은품으로 줘야 해?” 이런 항변 역시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마냥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홈쇼핑 납품용 라인을 따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품질을 떨어트린 것도 아니다. 결과는? 1억4000만원어치를 팔아 6500만원의 손실이 났다. 재고 비용을 빼고도 그렇다. 그래도 이게 어디랴. 여기서 리베이트를 또 뜯기는 업체도 많다잖은가.

 K사장은 그 후 울렁증이 생겼다. 홈쇼핑을 보다 가끔 식은땀을 흘린다고 한다. 쇼 호스트가 “준비된 물량이 다 팔렸습니다” 할 때다. 이게 무슨 얘기인지 그는 이제 안다. 이른바 ‘항복선언’이다. 납품업체가 “더 이상 손해 볼 수 없으니 그만 팔겠다”며 외치는 비명이다. 아무리 애초 1만 개를 팔아 1억원 손해 볼 각오를 했다지만 각오는 각오일 뿐, 막상 ‘완판’되는 걸 보면 비명이 절로 나오게 마련이다.

 국내 홈쇼핑TV는 1995년 탄생했다. 매년 평균 두 자릿수 성장, 20년 새 2000배 넘게 커졌다. 지난해 매출은 14조원으로 세계 최대. 원조 미국(약 9조원)을 저만치 따돌린 지 오래다. 화려한 성장사 이면엔 K사장 같은 ‘납품업체의 고혈’이 있다. 애초 정부는 ‘TV홈쇼핑을 통해 중소기업의 판로를 개척해준다’는 취지로 공공재인 전파 사용을 허가했다. 하지만 그런 초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납품업체도 납득이 안 가긴 마찬가지. 고혈을 빨리기 싫으면 납품을 안 하면 될 것 아닌가. 왜 뒷돈까지 내고 홈쇼핑에 질질 끌려가나. 거기엔 속사정이 있었다. 달콤한 독과(毒果)의 유혹이다. “홈쇼핑엔 중독성이 있어요. 1시간 내내 주부들 시선을 잡아 둘 수 있습니다. 표적 광고엔 그만이죠. 소비재, 특히 우리 같은 욕실용품엔 딱이에요.”

 K사장은 한 번 더 홈쇼핑 납품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납품업체 열에 하나는 성공한다니, 그런 요행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래놓고 그는 말미에 “한 곳에 찍히면 전부 찍힌다”며 “절대 익명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홈쇼핑 납품 못할까 걱정인 것이다. 한참을 비분강개해놓고 저러다니…. K사장이 이래저래 안쓰러웠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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