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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지나서 나오니 부처님께도 못 드리는 차죠





① 햇차 순
왕시리봉 아래 해발 400m ‘피아골 차 벨트’

묘덕은 일찌감치 피아골을 눈여겨봐 왔다. 이곳 계곡은 깊고 좁아 산의 경사가 급하다. 노고단에서 뻗어 내린 능선 위로 솟은 왕시리봉(해발 1243m) 동쪽 사면은 특히 돌 기운이 왕성하고 기가 넘친다. 예부터 계곡 곳곳 바위틈을 비집고 차나무들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건너편 황장산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받고, 계곡에서 기어오르는 안개를 마시고, 산바람에 몸을 맡기며 자란다. 새가 물어 나르고 물에 쓸려 내려가던 씨가 스스로 싹터 자라기도 한다. 이런 차나무가 밀어내는 이파리는 크고 길쭉하고 힘이 넘친다. 자줏빛이 도는 순은 꾸밈이 없었다. 안온한 땅에서 자란 찻잎은 작고 통통하고 윤기가 흐른다. 한창 기운 오르는 사내애와 예쁜 계집애라고 비교하면 적합할까.

차밭이 펼쳐져 있는 산중턱엔 계절이 늦다. 아래쪽에서 봄비 내릴 때 눈이 쌓이기도 한다. 피아골 들어가는 입구, 연곡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외서삼거리는 해발 23m다. 스마트폰 고도계 앱을 열었다. 차나무들이 뿌리내린 땅은 해발 300~400m를 가리켰다. 이곳 차가 화개보다 보름 정도 늦는 까닭이다. 그래서 여기의 차는 입하(立夏·5월 5일·여름이 시작되는 절기)차다. 대개의 차는 곡우(穀雨·4월 20일·봄비 내려 곡식이 윤택해지는 절기)차다. 부처님오신날(올해는 5월 6일) 지나야 맛볼 수 있으니 부처님도 잔칫날에 왕시리봉 햇차 공양을 받지 못한다. 묘덕은 10여 년 전부터 이 골짜기에서 찻잎을 구해왔다.

② 400℃에서도 증발하지 않는 물
2009년 5월 초 어느 날이었다. 벚꽃 물결이 섬진강 따라 흘러가버린 다음이었다. 피아골을 걸어 내려오던 묘덕은 다리가 팍팍했다. 마침 지나가는 차가 있어 손을 들었다. 강신우(48)씨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차 이야기가 나왔다. 강씨가 말했다. “스님 저희 차밭 좀 봐주시겠습니까.” 숲에 묻혀 있는 차나무를 보고 묘덕은 옳거니 했다. 건강한 자생종이었다. 이 밭 또한 ‘피아골 차 벨트’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1970년대 초반 강씨의 장인이 묘목을 심고 씨를 뿌려 놓았다고 했다. 농사를 짓지 않은 밭은 숲이 되어 산짐승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 속에서 차나무는 잡목 넝쿨들과 싸워가며 반(半)야생이 되어 있었다. 마침, 여기서 가까운 마을에 있던 작업장을 화재로 잃은 묘덕이었다. 화마에서 살아남은 무쇠솥을 옮겨왔다. 토지면 내서리 작업장에서 만드는 차는 올해로 네 번째다. 강씨는 기독교인이다. 묘덕에게는 차를 매개로 한 이러한 좋은 인연이 많다.

한꺼번에 올라오는 찻잎을 따내기엔 일손이 턱없이 모자란다. 피아골에서 일을 시작할 즈음이면 화개사람들은 고사리를 꺾는다. 우전·세작·중작을 따지는 것은 여기서는 사치다. 지난해에 400여 통을 내놨을 뿐이다.

③차를 덖고있는 묘덕
솥 안 온도 400℃, 비현실의 현실

찻잎은 따낸 당일 덖는다. 찻잎에 섞인 잡티를 솎아내니 해가 떨어졌다. 어둠이 내리고 무쇠솥에 불이 들어갔다. 솥을 먼저 닦는데, 지난밤 덖은 찻잎에서 나온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서다. 솥은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다섯 걸음 뒤에서도 가공할 열기가 코로 훅 들어왔다. 묘덕이 후끈 달아오른 솥에 물을 조금 부었다. 물이 구슬처럼 동글동글 뭉치더니 윙윙 소리를 내며 솥을 돌았다. 기포가 일지 않고 수증기도 나지 않았다. 400℃가 넘는데 증발이 되지 않는다니, 비현실의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한계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불가사의의 영역이다. 이때가 차를 덖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덖은 찻잎을 광목 깐 덕석 위로 옮기고 → 덕석 위에서 찻잎을 치대고 → 망사를 깐 대나무발 위로 찻잎을 떨어트리며 식히고 → 대소쿠리에 옮겨 담고 → 그사이에 묘덕은 정리해둔 솥에서 다른 생잎을 덖는다. 묘덕과 제자들의 동선은 톱니바퀴처럼 오차 없이 돌아갔다. 한 번 덖어내는 데 17분 안팎이 걸렸다. 찻잎이 많을 때는 초저녁에 시작해 먼동이 틀 때까지 일한다. 불을 먹던 찻잎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수증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덖어갈수록 찻잎의 향이 달라지고 소리가 달라진다. 자칫하면 타거나 설익는다. “덖다 보면 찻잎과 몸이 하나가 돼요. 몸이 느끼는 거죠. 인식작용인데, 차를 덖으며 내가 도 통했나 봐요.” 묘덕이 두 번 덖은 찻잎을 손바닥에 수북이 올려 내밀었다. 누룽지 냄새가 났다.

④ 덖고난 차를 말리는 소쿠리
후~후~아후~아후~. 솥의 열기와 허리 고통 앞에 묘덕은 연방 신음을 토해냈다. 수분이 빠져나갈수록 찻잎은 불을 잘 먹는다. 덖어가며 불을 줄인다. 열이 오른 솥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일곱 번째 덖을 때부터는 찻잎을 치대지 않고 한지를 깐 대소쿠리에 올려 식힌다. 여덟 번째 덖을 때였다. 솥으로 떨어지는 찻잎에서 싸락눈 내리는 소리가 났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다. 덖은 차는 황토방에서 숙성시킨다. 사흘 뒤 아홉 번째, 마지막 불을 먹인다. 그래야 향이 가장 좋다.

묘덕이 말한다. “차는 광물성 식물이에요. 광물 고유의 속성은 열을 가하면 없어져요. 죽염을 구울 때도 굽는 횟수와 불의 온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잖아요. 찻잎이 원하는 만큼만 불을 넣어줘야 해요. 비 오는 날 딴 잎은 발효되면 벌겋게 변하지요. 횟수를 적게 덖으면 무게가 더 나가요. 나 같은 방식으로 찻잎을 떨어뜨리며 덖는 사람은 없어요. 덖을 때 뜨겁잖아요, 그때 향이 도망을 가요. 덖으면서 독한 담뱃진내가 없어지면 차를 꺼낼 때가 된 거예요. 다섯 번째 덖을 때부터 서서히 차의 모양을 갖춰가지요. 이때부터는 찻잎이 품고 있는 냉기를 빼내요. 겨우내 나무가 품었던 냉기는 독기인데, 찻잎이 죽으며 독기를 내뿜는 거지요. 찻잎은 서서히 죽지 않아요. 불을 받고 식고 팽창·축소를 거듭하며 버티다가 한순간에 죽어요. 탄수화물과 수분은 네 번째 덖을 때까지 대개 빠져나가지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독과 약이 함께 들어 있는 차가 돼요. 덖지 않고 말리면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수분만 빠져나가지요.”

버려야 얻는다. 찻잎 속에 법이 있다. 방금 덖어 바삭한 찻잎을 부러뜨렸다. 아이스크림 튀김처럼, 속에는 생잎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길에서 법을 얻다

차에 이끌려 출가했다. 96년 이 땅 야생차의 본향인 선암사에서 계를 받았다. 그전부터 절에 드나들며 배웠으니 차를 다룬 지 20여 년이 흘렀다. 이제 차를 보면 이력이 보인다. 어떤 잎인지, 어떻게 불을 먹였는지, 어떤 솥을 썼는지, 어떻게 덖었는지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아홉 번 덖은 차는 본래 있었다. 묘덕은 복원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아홉 번을 덖느냐, 정말이냐고 묻는 이들도 많다. 그럴 때는 말없이 차를 낸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법을 듣는다. 묘덕은 제자들에게 말한다. 차는 기술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만듭니다. 마음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습니다.

곧 피아골로 들어간다. 행장을 꾸리는 스님의 손길이 설렌다. 지금 지리산은 연둣빛 화엄이다.


 차 찾아 가는 길

섬진강변에 요란하던 꽃들은 산으로 올라가고, 꽃 진 자리엔 신록이 소란하다. 이즈음 강 양쪽을 달리는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로는 뚜벅이족과 자전거족에게 천국이다. 걷고 달리다 강 내다보며 숨 들이쉬고, 산 올려다보며 숨 내쉬어 보자. 막힌 가슴 뚫는 데 이만한 약이 없다. 눈 녹아 흘러내린 강물 속엔 생명들이 북적댄다. 참게들은 몸을 풀고 살이 내렸다. 눈치·쏘가리·모래무지들은 계절을 주체하지 못해 쉴 틈이 없다. 5월 중순 은어가 올라오면 강은 마침내 봄을 떠나보낸다.

-화개장터 앞 남도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민물고깃집 ‘쉴만한 물가’가 있다. 식당 아래엔 다리가 생기기 전에 강을 오가던 나룻배가 매여 있다. 통창 앞에 100살도 넘어 보이는 뽕나무가 서 있다. 잡어찜 앞에 놓고 강물 보고 놀다 보면 한나절이 후딱 간다. 061-782-7628.

5월 지역별 차문화 축제 일정

보성다향제 5월 2~6일 전남 보성군 한국차문화공원 보성차밭 일원
제22회 초의문화제 5월 3~6일 전남 해남군 대흥사 일원
제19회 하동야생차문화축제 5월 16~18일 경남 하동군 하동차문화센터 일원

글=안충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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