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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10화>실망과의 싸움,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는데, 아버지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불효일기 9화 잘 읽었다.

내일은 암병원 진료

1층 방사선종양학과 11시

3층 종양내과 12시

지난주에 촬영한 PET-CT

협진결과 나오면

항암제를 바꿀지

방사선치료를 할지

아니면 보류가 될지?

좌우지간 뭘 해 주겠지?

기대하면서



짧지만 짧지 않은 11줄 메시지를 보면서, 아버지는 꽤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고교 국어시간의 기억을 살려 한 줄 한 줄 씩 아버지의 생각을 풀이해 봤다.



첫 줄은 요즘 연재하고 있는 불효일기를 잘 본다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불효일기를 재밌게 보고 있기는 하다. 눈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텍스트를 가까이 하지 않은지 1년. 글을 읽는 재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딱딱한 글을 읽기에는 약간은 벅차다. 자신의 이야기인 만큼 읽는데 부담도 덜하고, 이해를 하기 위해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꾸준히 써보라는 이야기다.



또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연재하려면,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전화통화를 하고 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일이 곧 가정사가 되고, 가정사가 일이 될 수 있다. 아버지 역시 연재물의 소재가 된다는 생각 외에도, 자신과의 대화가 더 생산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는 듯 했다. "글 잘 본다" "다음회는 뭘 쓰니"라고 물어보신다.



아버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효과도 있다. 내가 봤던 다른 암환자들 중 상당수도 자꾸 메모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루 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길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정리하고 또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둘째 줄부터는 치료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암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기존에 맞던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다면서 새로운 치료방법을 고민 중이라는 의사의 말에 적잖은 실망을 하기도 했다.



암은 실망과의 싸움이다. 아버지에게는 이런 실망이 한두 번도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이 될 때쯤,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가 아버지에게 있어 실망의 시작이다. 식도를 잘라냈는데, 잘라낸 곳 인근 림프절에 암세포가 전이된 것 같아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랬다.



두번째 실망은 항암치료를 6개월 가량 한 뒤, 3개월을 쉬면서다. 당시 의사는 암 덩어리가 없어진 것 같으니 좀 쉬면서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암 완치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기쁨과 함께 아버지와는 웃으면서 전화통화를 한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다시 재발. 또 실망이다.



세 번째 실망은 2차 재발 이후 항암치료를 하던 약물이 잘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소화기내과의 교수는 "제가 갖고 있는 약은 다 썼어요. 이제는 저희 과에서 쓸 약이 없으니 종양내과에서 진료를 받으세요"라는 말을 했다. 물론 담당 교수야 최선을 다했을 것이겠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그 말이 어찌나 야속한지 싶다.



네 번째 실망은 아직 없다. 사실 두 번째 실망 이후부터는 실망을 잘 하지는 않는다. 암과 싸우려 하지 말고 조화롭게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가 치료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 하루를 재밌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계실 때 잘 하라"는 말이 적용되는 사례를 눈으로 몇 차례 봤다. 엉엉 울어봐야 소용 없다. 그래서 그냥 하루 하루를 즐겁게 같이 살자고 말한다.



아버지 역시 2차 재발 이후 긍정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어제 전화에서도 "이번에 약이 잘 안 들으면 신약 임상시험이라도 시켜주겠지"라고 말한다. 아버지라고 임상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절망만 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짧고, 아버지에게는 더 짧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가족들이 있다. '가장' 아닌가. 그래서 아버지는 오늘도 힘을 내고, 내일을 기대한다.



하지만 때로는 힘이 빠지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내게 내년이 있을까"라고 말한다. 아직은 없지만, 내게 아이가 생기면 아버지는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나는 껄껄껄 소리를 내면서 아버지에게 "내년에 애 낳으면 안아는 봐야 할 것 아닙니까"라고 농을 친다. 그러면 "내게 그럴 기회가 주어질까"라고 답한다. 나는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아요. 힘을 내셔야 좋은 컨디션에 애기 안아볼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나. 사실 "살 수 있을까 VS 그럼요" 식의 대화는 매주 몇 차례 한다.



이번 10화를 쓰다가, 마무리가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는 요즘 전화를 받을 때 `뜨르르릉`이라고 입으로 소리를 낸다. 복고풍 벨소리가 아버지에게는 추억을 주는 모양이다. [이현택 기자]


입으로 '뜨르르릉'이라면서 전화를 받는다. 최근 전화벨이 식상하다고 하여, 복고풍으로 옛날 다이얼전화기 벨소리로 설정해드렸는데, 그게 좋으신지 전화를 받을 때 뜨르르릉 뜨르르릉이라고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소리도 반갑겠지만, 누가 내게 전화를 해준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는 일상이고 또 즐거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에 바빠 전화가 별로 없는 친척들에 대해서는 "아니, 이 형님은 아프신데 전화들이 없느냐"며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벨소리 이야기로 1분 가량을 이야기 했다. "얘, 특이한 벨소리를 해놔야 좋지 않니. 내 친구들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벨소리 다들 깜짝 놀라면서 좋다더라."



그 다음에는 역시나 먹는 이야기였다. 오늘 아침에 먹은 반찬 이야기를 했다.



"근데 지금 어디세요"하고 물었다.



"어, 근처 산에서 산보하고 있지. 곧 항암치료인데 몸 관리를 하고 들어가야 하잖아. 그래서 열심히 걷고 있지. 오늘은 근처 봉우리까지 걸어갈 생각이야. 원래 거기 국수 파는 할머니가 있어서 맛있게 먹고 왔는데, 없네. 오늘은 집에 가서 국수를 해먹어야 겠어."



미세먼지 이야기로 이어지다가 다이어트 이야기가 나온다.



"미세먼지 있다고 하는데 나왔어. 네 엄마는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답답해서 있을 수가 있나. 그런데 너는 운동 좀 하니. 살 빼라. 집에 새 양복 그대로 있다. 살을 빼야 입지."



국수를 끓여먹을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말씀을 다시 이어가신다.



"아, 국수를 끓여먹을까. 먹고 싶은데. 그런데 끓여먹지 말라고 해서."

"누가요."

"네 엄마가. 싫다는 거 했다가 구박받을 일 있니." (엄마는 영양식을 고집한다.)



어머니에 대한 고자질로 낄낄대다가 전화는 10분만에 끊어졌다.



전화를 끊기 전, 아버지는 내일 진료가 12시 좀 넘어서 끝난다고 강조했다. 진료 끝나고 버스를 타고 우리 회사에 잠깐 들르겠다고 한다. 회사에서 부모님 댁까지는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선도 딱 맞는데 점심 함께 하자는 말씀이다.



그리 노래를 부르시던 보리굴비나 먹으러 갈까. 아버지와 점심 값 많이 썼다고 아내가 혼내겠나. 계속 살아계시면 숨은 맛집 많이 찾아내 모시고 다닐테니 오래 좀 사세요. 실망은 저 혼자 할게요.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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