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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배 90도로 기울어 …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기울어진 ‘세월’호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서해해경청]
안개가 짙게 내린 봄날이었다. 15일 저녁 인천 여객터미널은 하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지금 바다에 안개가 짙어 출항할 수 없사오니….”

 몇 차례 똑같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제주행 여객선은 오후 6시30분으로 예정된 출발 시각을 넘겨도 떠날 기미가 없었다.

 인솔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차례차례 배에 올랐다. 우리 안산 단원고 2학년 325명은 이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7시30분쯤 배에 올라 저녁을 해결하고 배가 출항하기만 기다렸다.

 밤 9시쯤 되자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경적 소리와 함께 배가 꿈틀대자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드디어 제주도에 가는구나.”

 우리는 반별로 3~4층으로 흩어져 짐을 풀었다. 어떤 친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었고, 또 다른 친구들은 스마트폰으로 채팅이나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16일 아침에 눈을 뜨니 배는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전 7시30분쯤 일어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몇몇 친구들은 갑판에 나가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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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오전 8시40분쯤이었다. 9반 김민경은 식당칸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민경이는 배가 흔들리는 게 신경 쓰였지만 파도 때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식탁 위의 식기가 차례로 떨어졌고 친구들이 웅성댔다.

 “배가 왜 이러지? 가라앉는 거 아니야?”

 “선생님! 배가 이상해요!”

 비슷한 시각 4층 SP1호실에는 1반 장현정을 비롯해 5명이 아침을 먹고 쉬고 있었다.

 퍽-. 갑자기 실내등이 꺼지더니 배가 스르르 기울었다. 배 안은 컴컴한 어둠에 휩싸였다. 오전 9시쯤 됐을까. 2~3분 사이에 창문은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승객 여러분 움직이면 위험하니 밖에 나오지 말고 가만히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배는 점점 바닷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안내방송은 “움직이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말도 없었다. 전날 배에 오른 뒤에 누구도 우리에게 사고를 당하면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배가 바닷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처럼 재빠른 속도로 물이 들어찼다. 물이 점점 차오르자 현정이는 친구들과 구명조끼를 꺼내 서둘러 입었다.

 구명조끼는 형편없었다. 지퍼가 달려 있지 않거나 제대로 올라가지 않아 몇몇은 끈으로 억지로 조끼를 동여맸다. 배는 거의 90도로 기울었다. 물이 허리춤까지 차오르자 친구 3명이 구명조끼를 보관하는 선반을 딛고 올라섰다. 다급해진 현정이도 다른 친구의 손을 잡고 선반에 발을 올렸다.

 빠지직-. 그 순간 선반이 부서지면서 현정이와 친구들은 방 안에 들어찬 물속으로 빠졌다. 몇몇은 떨어지면서 곧장 바닷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현정이는 친구들이 떠내려가는 걸 보면서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겨우 출입구에 도착했을 때 밖에서 헬기 소리가 났다. 현정이는 간신히 구조대에 손을 내밀어 사고 난 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건 갑판 위도 마찬가지였다. 갑판에는 바다 구경을 하던 친구들이 20명쯤 있었다. 이 친구들은 갑판 위에서 바다를 보던 중에 갑자기 배가 기울어 난간 쪽으로 20~30m가량 미끄러졌다. 이날 최초로 사고 소식을 전한 6반 이한일도 갑판 위에 있었다. 한일이는 8시57분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지금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무서워….”

 한일이 아버지는 아들을 진정시킨 뒤 곧바로 해양경찰에 신고했다. 해양경찰대와 군부대, 민간 어선 등이 구조를 하러 나선 것은 그 직후였다.

 그 시각 5반 박준혁은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로 나왔다가 몸이 휘청거리는 걸 느꼈다.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질 정도로 급격하게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준혁이는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급하게 구명조끼부터 입었다. 복도에서 물에 잠긴 채 떠 있던 준혁이는 밖에서 헬기 소리가 들리자 탈출을 결심했다. 준혁이는 물 밑으로 잠수를 해 배 밖으로 나왔다. 눈을 꼭 감은 채 필사적으로 팔을 저었다. 겨우 배 밖으로 나오자 보트 1대가 다가왔다.

  오후 1시쯤 4반 정차웅이 사망한 채 바다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에게 “침착하게 기다려달라”고 안내하던 선박 매니저 박지영(22)씨도 시신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배에는 우리 안산 단원고 학생 말고도 일반 승객 89명도 타고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15명)과 선원(33명)까지 합하면 모두 462명이 같은 배에 있었다.

진도=권철암·이승호·장혁진 기자

※이 기사는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안산단원고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스토리텔링 형식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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