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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맞수] 천안쌀생막걸리 vs 음봉생막걸리

(왼쪽) 천안양조장 경영권을 물려받은 장남 정우재씨(오른쪽)가 아버지 정상진씨에게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오른쪽) 음봉양조장을 경영하는 삼형제 도영(둘째)·우영(셋째)·준영(첫째·왼쪽부터)씨와 부모 안연홍·강미자씨가 기념촬영을 했다.

고된 하루를 보낸 서민들이 평상에 앉아 주고받던 전통주.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의 피로를 풀어주던 농주. 바로 막걸리다. 몇 년 새 막걸리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막걸리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기 때문이다. 천안·아산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가 있다. 천안쌀생막걸리와 아산음봉막걸리다. 두 막걸리 이야기를 음미해 보자.

40년간 '좋은 술' 신념 하나로 일해 vs 술 한 병 만드는데 많은 시간 투자

1960년 어느 날. 한 중학생이 친구와 우연히 뒷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봤다. 막막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은 어디니.”

 “저기 파란 지붕 보이지. 양조장인데 그런대로 우리 마을에서는 가장 잘 산다더라.”

 친구의 말을 들은 중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양조장을 차리고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어 부자가 되겠다’고. 그는 꿈을 찾기 위해 이튿날 서울로 떠났다. 하지만 어려서 양조장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돈도 떨어져 사흘 만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엄한 아버지가 “무슨 양조장이냐. 농사나 지어라”고 꾸짖었지만 아들은 꿈을 버릴 순 없었다. 1년여 준비한 뒤 이번엔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가장 큰 양조장에 취직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일한 덕에 사장에게 잘 보여 기술을 전수받았다. 부산 양조장에서 기술을 배우던 그는 지역마다 막걸리 맛이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20여 년간 진해·김해·공주·아산 등에 있는 유명 양조장에서 일을 더 배우고 천안으로 와 2000년 천안양조장을 인수했다.

 “40여 년간 ‘서민들에게 좋은 술을 선사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일했습니다. 이제는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이 천안쌀생막걸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로 만들어 주길 바라죠.”

 천안양조장 초대 사장 정상진(67)씨의 얘기다. 현재 천안양조장은 맏아들 우재씨가 운영하고 있다. 천안양조장은 하루 750mL들이 막걸리 5000병을 생산한다. 대부분 천안에서 소비가 되지만 가깝게는 아산, 멀리는 전주까지 간다. 최근엔 서울에서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천안양조장의 연 매출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매년 가파른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

 아산음봉막걸리는 천안쌀생막걸리보다 역사가 깊다. 아산음봉막걸리는 1989년 시중에 선보였다. 초대 사장 안연홍(66)씨가 음봉양조장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온양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던 그는 농약 중독증 때문에 전업을 생각하다 시가보다 싸게 매물로 나온 음봉양조장을 샀다.

 “그때는 막걸리 사업이 하향세였어요. 하지만 ‘정성’을 들여 만들면 문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씨는 막걸리 제조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정씨와 마찬가지로 전국 각지를 돌며 유명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임금을 받지 않고 6개월간 일하기도 했다. 그 뒤 안씨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막걸리 기술자를 고용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개업 1년 남짓 동안 인기가 많았죠. 하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과의 마찰로 인해 위기가 찾아왔어요. 저는 막걸리 한 병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 직원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막걸리를 대충 만들었어요.”

 그 직원이 나가고 안씨는 부인 강미자(60)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인은 팔을 걷어붙이고 남편을 도와 매일 막걸리 생산에 힘썼다. 당시 음봉양조장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없었다. 지하 발효실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3시간마다 술의 온도를 측정해 선풍기를 틀거나 보일러를 가동했다. 힘들지만 서로 격려하고 잘 자라는 자식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 아산음봉막걸리 인지도도 높아져 갔다. 막걸리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매출도 수직 상승하고 있다.

 현재 음봉양조장은 하루 750mL들이 막걸리 1000병을 생산한다. 아직 천안생막걸리와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매출은 매년 2배 이상 뛴다.

 “저 역시 지금은 경영권을 아들들에게 넘겼죠. 삼형제가 우애 좋다 보니 잘 운영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정성을 담은 술을 빚어줬으면 좋겠어요.”


미국에 양조장 설립하고 싶어 vs 제조부터 유통까지 우리 손으로

현재 두 양조장 모두 2대째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되고 있다. 음봉양조장의 경우 안연홍씨의 뒤를 이어 장남 준영씨, 둘째 도영씨, 막내 우영씨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자신들이 직접 거래처까지 배달한다. 아산에서는 인지도가 꽤 높기 때문에 주문이 많은 날에는 삼형제가 한꺼번에 배달을 나가 오후 늦게까지 못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중간업자를 두지 않는다. 거래처에서 소비자들을 만나고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일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로 뛰는 시간이 많은 만큼 매출도 눈에 띄게 올랐다.

“우리 형제가 사람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영업에도 큰 도움이 됐죠. 앞으로 많은 사람이 아산 대표 막걸리 하면 음봉막걸리만 떠올리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안이나 평택 등으로 유통망을 넓힐 계획입니다.” 준영씨의 포부다.

대를 이어 천안양조장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우재씨는 다섯 살 때 처음 막걸리 맛을 봤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가업을 맡아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중·고교와 대학 시절 틈틈이 집안일을 도운 적은 있지만 이젠 맥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다.

“아버지가 40년 넘게 해오신 일인데 부담이 안 갈 수는 없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천안막걸리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죠.”

우재씨에겐 천안양조장을 잘 운영하는 것 외에 한 가지 큰 포부가 있다. 미국에 천안양조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막걸리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신선도를 우선으로 하는 생막걸리는 아직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

 “생막걸리는 유통기한이 15일 정도로 짧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조장이 꼭 필요해요. 생산 후 바로 판매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일단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양조장을 하나 설립하고 싶어요. 그 뒤 유럽 시장에도 진출해야죠.”

글=조영민 기자 , 사진=프리랜서 진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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