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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제목이다. 지난 10일 기초 무공천 결정을 백지화한 새정치민주연합. 다음 날 분위기는 책 제목과 한 글자 차이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였다. 야당 실력자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 문재인 의원 등은 모여서 사진 찍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안 대표는 “지금까지의 혼선은 (다 녹아버린) 어제 내린 눈”이라고 했다.



 김한길 대표는 ‘파부침주(破釜沈舟)’를 말했다. 항우가 진나라를 치러 가면서 솥뚜껑(釜)을 부수고, 타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혔다는 데서 나온, 불퇴전의 각오를 의미한다. 두 사람은 국민·당원이 여론조사에서 공천을 하라고 명령했으니 우린 따른다는 식으로 부담을 털고 가고 있다.



 새 출발을 한다는 데 태클 걸 이유는 없지만. 정말 불태우고, 가라앉힌 게 뭔지 짚고는 가자.



 밥솥 때문에 ‘믿음’을 불태우고, 퇴로를 여느라 ‘정도’를 막은 건 아닌지. 그리고 이것도 어제 내린 눈인가? 안 대표가 기초 무공천 관철을 다짐하며 말한 정계 입문 당시의 ‘초심’, 손해보는 정치를 하면서 더 큰 걸 얻었던 ‘바보 노무현 정신’. 다 녹아버렸나?



 #2. 기초 무공천을 백지화하기 이틀 전이다. 후배 K가 청첩장을 들고 찾아와 소주 한잔을 나눴다. K가 한 주 전 칼럼(‘안철수 벌써 흔드는 배신의 계절’) 얘기를 꺼냈다. 한 기초단체장이 “처음엔 욕을 얻어먹겠으나 나중엔 다 잊는다. 조금 대미지를 입더라도…”라며 무공천 철회를 주장했다는 대목이었다.



 “그 단체장이 누구예요?”



 “네가 그건 왜.”



 “똑똑하네. 당선되겠네~.”



 K는 “그 양반 뭘 안다”며 하하하 웃었다. 지금 보면 기초단체장이나 K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그저 아무렇지 않게 정치시계는 돌아간다. 기억은 유한하고, 대한민국엔 망각해야 할 일이 많다. 명분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3. 하지만. 망각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진 않아도, 나중에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흉터라도 남겨야 한다. 야당은 당원과 국민 여론조사를 출구전략으로 삼았다. 출구가 너무 구불구불했다. 그나마 속이 보이도록 팠다. “새누리당만 공천을 해서 다 죽게 생겼는데, 우리만 무공천을 해야겠나.” 이렇게 물어 오늘의 결론을 유도한 건 다 안다. 수상한 점이 또 있다.



 당원은 ‘공천’(○), ‘무공천’(X) 중 고르게 하고, 국민에겐 ‘공천’(○), ‘무공천’(X) 외에 ‘잘모름’(△)이란 제3의 선택지를 줬다. △가 21%나 나왔다. 물론 계산할 때 △는 뺐다. 하지만 국민도 ○X 중 하나만 택했다면, 답변이 △로 분산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국민 여론은 ‘무공천’ 우세였다. 그 수치가 더 커지지 않았을까.



 이번 기초 무공천 게임은 야당 내 꼼수세력의 승리였다. 애초 무공천이란 오버 액션으로 야권 통합의 명분을 삼았던 게 잘못이었지만, 그때는 박수 치다가 말을 바꾸고 나선 그들. “안철수 손목 비틀기 너무 쉽네”라고 웃고 있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꼼수로 흥한 자 꼼수로 망한다.



 #4.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혼선은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아니다. 처음부터 무책임했다는 게 무슨 면죄부라도 되나. 야당이 어려워지자마자 “거봐, 너나 잘하랬잖아” 하고 희색이 만면해서 나왔다. 아무 생각이 없거나 오만한 거다.



 김민기의 ‘작은 연못’이란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붕어 두 마리가 누군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꾸 더러운 물만 고이는 ‘작은 연못’. 그걸 보려니 슬프다. 내 마음이 물처럼 썩어들어가 ‘작은 연못’을 메워버릴까 두려운, 불신의 봄이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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