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밀회' 달구는 피아노곡
3월 17일 첫 방송 이후 8회에 걸쳐 ‘밀회’에 등장한 음악은 스무 곡이 넘는다. 중요한 대목에 등장해 사랑과 증오, 열정과 비련의 희비를 휘젓고 있는 음악은 어떤 뜻을 숨기고 있을까. 대표 연주 음반을 음악평론가 박제성씨의 도움으로 소개한다(괄호 안은 연주자와 음반사).

◆리스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연습곡’ 4번(니키타 마갈로프, Philips)=선재는 두 번째 곡으로 까다롭고 초인적인 기교가 필요한 이 곡을 선택했다. 시큰둥했던 혜원의 표정이 점점 긴장하며 놀라운 재능에 허를 찔린 듯 허탈하게 웃으며 감동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V 310(안드라스 쉬프, DECCA)(2)=모차르트 곡은 피아니스트의 실력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와 같다. 선재는 세 번째 연주로 긴가민가하던 혜원의 의구심을 단박에 깨부순다. 혜원은 선재의 모차르트 연주에 격하게 반응하며 몰입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Op. 57 3악장(클라우디오 아라우, Philips)(3)=다리 위 난간을 건반 삼아 희열에 들떠 연주하는 선재의 모습은 가슴에서 복받쳐 오르는 정념에 휘둘려 무중력 상태에 든 것처럼 보인다. 작품이 발표됐을 때 당대 연주 불가능이란 평을 들었을 만큼 어려운 곡이지만 선재는 혜원에게 인정받기 위한 쐐기 곡으로 과감하게 도전해 성취한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D760(알프레드 브렌델, Philips)(4)=혜원에게 레슨을 받는 선재가 자세 교정을 하느라 건반 위에서 방황하는 고단한 연습과정을 대변하는듯한 곡. 슈베르트의 곡치고는 드물게 남성적 기운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슈베르트 ‘환상곡’ D940(에밀 길렐스 & 엘레나 길렐스, DG)(5)=피아노 앞에 몸을 숙이고 몰입하는 혜원과 선재의 실루엣이 영롱한 곡의 선율과 잘 어울린다. 깊은 슬픔에 젖어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슈베르트 특유의 내성적 탐미의 세계가 선재의 마음에 겹쳐 화면에 번져나간다. 혜원은 깊은 한숨으로 선재의 구애에 동감한다.
◆쇼팽 ‘에튀드’ Op. 10 No.1(얀 리시츠키, DG)(6)=피아노 음악에서 혁명 같은 지평을 연 연습곡. 왼손의 장중한 화성, 오른손의 화려한 화음이 장관처럼 펼쳐지는 곡으로 ‘승리’라는 부제가 그 인상을 요약한다. 자신의 연주에 몰입하도록 해 혜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선재의 남성적 매력이 물씬 피어난다.
◆모차르트 ‘작은 별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C장조 KV265(크리스토프 에센바흐, DG)(7)=앙증맞은 주제 선율과 귀여운 변주들이 펼쳐지는 소품. 선재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 혜원의 눈길처럼 반짝거린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