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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근혜 정치와 국민통합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대통령책임제 정부 형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국가 주요 정책과 결정의 궁극적인 최종 책임자다. 즉 대통령은 자기 시대의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현실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주요 국가 현안의 진행, 또는 악화나 해결 과정에서 대통령의 잦은 후퇴와 실종이다. 대통령은 온 나라를 갈라놓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조차 긴 시간 침묵하거나 한발 떨어져 있다가, 마치 국왕이 포고를 발하듯, 초월적 원론을 천명하거나 훈계적 질타를 내리곤 한다. 아니면 끝내 묵언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자기 공약과는 반대로 진행되는 주요 현안-예컨대 경제민주화, 기초연금,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고교 무상교육, 4대 중증질환, 낙하산 인사 금지, 기초공천제 폐지-에 대해서조차 직접적 국민 설명과 동의를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건국 이래 국가 문서들은 대통령들이 공개적 의사표명에 관계없이 주요 현안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꿰뚫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대통령의 포고와 초월, 외면과 침묵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포고(령)정치를 말한다.



 사실, 짧고 강렬한 단문어법으로 복잡한 상황을 일거에 정리하는 포고정치는, 당선 이전 오랫동안 대통령의 장기였다. 상황 장악과 국면 돌파의 정수였다. 그러나 한 파당과 진영의 대변자로서 경쟁 진영에 승리하기 위해 사용하던 포고정치·진영정치는 전체 국민과 국가를 책임지는 최고 공직 수임 이후에는 대화정치·통합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원론과 훈시(=위임)를 넘는 정치의 본령인 책임윤리를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에 크게 빚진 바 없어 개혁과 통합의 최적임자였다. 특히 산업화에 주력한 아버지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을 포용할 경우 대통령은 최초의 국민통합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 기회는 아직도 열려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압축 달성은 시간 단축에 비례하는 사회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기에, 압축 갈등의 이완을 통한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요체는 국민통합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막 다녀온 독일은 헌법과 법률상 주어진 ‘제도적 권력’조차 ‘실제 현실정치’에서 양보하여 세계에 대화와 통합과 연립 정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 국내 통합의 예술이 동서(독) 통합으로 확장된 것이 곧 독일 통일이었다. 대통령이 독일 정치와 독일 통일의 요체를 체득했다면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권력·이념·직위의 독점과 독식을 지양하는 것이다.



 몇몇 사례를 보자. 최근 공기업의 부채 급증과 도덕적 해이에서 보다시피 공공 부문과 공기업의 낙하산 금지 문제는 공공 부문의 정상화와 공공성 회복, 자율성 확보를 위해 핵심적 개혁 현안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는 대통령 자신의 약속에 정면으로 배치될뿐더러 개혁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집권 과정과 집권 이후 자기 정당과 주요 정부기구가 계속 이념논쟁을 주도해 나라를 갈라놓고,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를 통해 인권·민주기구조차 독식하는 국민 분열의 정치 역시 중단해야 한다.



 인권·민주기구의 자율성을 높일수록 박근혜 통합정치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세계는 헌법재판소, 진실과 화해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같은 한국의 인권 및 과거극복기구들을 높이 상찬한 바 있다. 이들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역할을 통해 세계적으로도 처벌과 보복이 가장 적은 민주화 이행을 실현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용공조작으로 판명된 독재 시기의 많은 시국사건을 주도한 인사들조차 오늘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나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은 같은 공동체를 함께 사랑했던 ‘동시대의 삽화’로 기록될 것이다. 포용과 통합이 절대적인 이유이다. 우리는 호메로스의 위대한 기록이 인류에게 가장 오래도록 기억되는 근본 이유가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전쟁조차 넘어서는 불편부당성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한 공동체 안에서야.



 박정희 기념사업을 허용하고 지원한 결정에 대해 일부에서 항의의 의견을 표시했던 사례를 지적하며 의견을 물었을 때 퇴임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필자에게 했던 언명은 아직도 선명하다. “대통령에게 진보정책과 보수정책은 있을 수는 있지만 진보국민과 보수국민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국민과 하나의 국가가 있을 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을 부인해선 안 됩니다.”



 인정과 대화, 공존과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파) 대통령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국민(파)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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