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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33> 대중가요 희귀 LP 10선

이지영 기자
매끈한 디지털 음원에 밀려 LP의 시대는 진작에 가버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LP의 아날로그 매력은 여전히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가 꼽아준 대중가요 희귀 LP 음반 10장을 소개합니다. 수집가들 사이에 ‘명품’으로 통하며 100만원 이상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앨범들로, 우리 대중가요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들입니다.



두번 금지곡 된 비운의 노래 … 미군도 놀란 신들린 기타 연주





▶ 박신자의 ‘땐사의 순정’(신세기축음기, 1959)



1950년대는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꼽힐 만큼 여성들의 춤바람이 사회문제가 됐던 시기다. 비어홀·카바레 등 밤 문화를 즐기는 클럽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전쟁 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젊은 여성들이 고향을 떠나 여급 또는 댄서로 살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댄서의 순정’은 그런 50년대 사회 분위기를 직설적인 가사에 담아 반영한 노래다. 주현미의 큰어머니인 가수 박신자가 불렀다. 68년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가사가 저속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고, 70년 김추자에 의해 리메이크돼 큰 인기를 끌었지만 75년 또다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빼어난 미모였지만 23살에 요절한 박신자의 노래는 이처럼 시대적 아픔에 금지의 아픔까지 더해져 1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음반으로 대접받는다.



▶최초의 어린이 독집 ‘하춘화 가요앨범’(가나다레코드, 1962)



여섯 살에 데뷔한 하춘화의 첫 음반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어린이가수 독집이다. 61년 동화예술학원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한 하춘화는 기타 치는 8세 남자아이 김영환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9세 여자아이 정선과 함께 ‘학원의 3대 영재’로 통했다. 이들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서울 시내 극장 쇼 단장들이 뛰어왔고, 그해 종로 천일극장에서 데뷔 공연을 했다. 공연 후에 음반 취입 기회가 왔다. 아세아레코드에서 가나다레코드 레이블을 만들어 8곡을 동시녹음했다. 62년 초 1000장의 10인치 LP ‘하춘화 가요앨범’이 발표됐다. 첫 트랙은 ‘효녀 심청 되오리다’다. “저는 금년에 일곱 살 된 하춘화입니다”란 앙증맞은 인사말로 시작한다. 하춘화의 10인치 데뷔앨범은 대중음악사의 기념비적 존재가치와 희귀함으로 100만원이 넘는 고가 음반이 됐다.



▶신중현의 솔로 연주앨범 ‘히키 신 키타 멜로듸’(도미도레코드, 1963, 64 추정)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데뷔 앨범이다. 데뷔 당시 미군들은 신들린 듯 연주하는 그를 ‘히키 신’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신중현은 58년 19세 때 미8군 선배 연주인들의 도움을 받아 ‘히키 신 키타 멜로듸’를 녹음한 것으로 전해진다. 녹음은 미군 휴대용 녹음기로 했다. 앨범 발매 시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도미도레코드에서 제작된 이 음반의 번호가 LD156번인 것으로 미뤄볼 때 녹음은 50년대 말에 했을지 모르지만, 음반 제작은 63년과 64년 사이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신중현은 이 음반을 통해 당시 미8군 무대에서 실력을 뽐냈던 트위스트 레퍼토리와 동요, 심지어 가곡 ‘동심초’를 재즈와 접목하는 음악적 재능을 담아냈다. 이 음반의 오리지널 초반은 훼손·오염이 없는 ‘민트급’의 경우 700만~800만원을 호가한다.



▶키보이스 1집 ‘그녀 입술은 달콤해’(신세기레코드, 1964)



한국 최초의 록밴드는 미8군 장교클럽 하우스밴드로 활동했던 코끼리브라더스지만, 국내 최초의 록앨범은 키보이스 1집이다. 이 앨범의 초반은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 키보이스는 ‘한국의 비틀스’를 표방했던 록밴드다. 이들의 데뷔앨범인 이 음반에는 윤항기·차중락·김홍탁·차도균·옥성빈 등 오리지널 키보이스 멤버들의 넘치는 끼와 개성이 살아 있다. 키보이스는 국내에서 비틀스 노래를 가장 먼저 번안한 밴드다. 60년대 당시 신중현의 에드포는 ‘한국의 벤처스’, 키보이스는 ‘한국의 비틀스’로 불렸다. 키보이스는 69년 9월 시민회관 공연을 끝으로 창단 멤버 전원이 밴드를 떠나고 새로운 후기 멤버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대중이 기억하는 키보이스의 대표곡 ‘해변으로 가요’는 후기 키보이스의 작품이다.



▶이미자 박스음반 ‘히트곡 선집’(지구레코드, 1967)



이미자의 음반이 모두 몇 장인지, 취입곡이 모두 몇 곡인지는 가수 본인은 물론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음반 발매와 취입곡에 대한 기록이 부실한 국내 대중음악계의 관행 때문이다. 한 가지 정확한 것은 67년 11월 발매된 ‘이미자 히트곡 선집’이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개인 음악가의 박스음반이라는 사실이다. ‘이미자 히트곡 선집’은 일부 대중가요 음반 컬렉터 사이에서만 회자되는 진귀한 보물이다. 실물구경도 쉽지 않지만 3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67년 이전 이미자의 히트곡이 총망라돼 6장의 음반과 책자에 담겨 있으며 나무박스로 제작됐다. 28쪽 분량의 책자에는 총 72곡의 수록곡 중 40곡의 노래악보가 실려 있고 나머지 32곡은 가사만 적혀 있다.



▶OST 음반 ‘금수강산’(아세아레코드, 1968)



80년대 이전에 개봉했던 국내 영화의 주제가를 담은 OST음반들은 희귀한 아이템이다. ‘동백 아가씨’나 ‘별들의 고향’처럼 흥행 대박이 터져 음반 수가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상당수 OST 음반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거래된다. 음반 수집가들의 선호도는 어떤 배우가 출연한 어떤 영화 스틸사진이 재킷을 장식했고 누가 부른 주제가인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미자가 노래한 영화 주제가 음반들이나 팜므파탈 여배우의 원조 격으로 평가받는 문정숙이 직접 노래한 음반들이 고가에 거래되는 이유다. 68년 개봉했던 영화 ‘금수강산’ OST는 커버를 장식한 주연배우가 윤정희이고, 직접 주제가까지 불렀기에 이 음반은 국내 영화 OST음반 중 최고가에 거래된다. 단 한 곡 수록된 윤정희의 노래는 음반으로 발표된 유일한 영화 주제가다.



▶조용필 데뷔 앨범 ‘뮤지칼 사랑의 일기’(오스카레코드, 1971)



조용필은 71년 5월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제3회 선데이서울컵 전국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록밴드 김트리오 악단 멤버로 참가했다. 당대의 인기 정상 록밴드였던 히식스·키보이스를 제치고 가수왕에 오른 조용필은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음반 제작의 길을 열었다. ‘변혁 작편곡 제1집’으로 발매된 이 앨범은 2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희귀 앨범이다. 조용필과 더불어 영트리오·유미려의 노래가 수록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앨범 재킷 뒷면에 조용필의 데뷔 시절 사진이 실렸는데, 이름이 ‘조영필’로 잘못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 최초로 가왕 조용필의 육성 노래를 담은 이 음반에는 미8군 무명밴드 시절 조용필이 불렀던 ‘님이여’ 등 외국 팝 번안곡 4곡이 수록돼 있다.



▶최양숙의 ‘세노야 세노야’(대도레코드, 1971)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대접받는 앨범이다. 서울대 작곡과 여대생 김광희가 창작한 ‘세노야 세노야’와 가을 시즌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곡 ‘가을 편지’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또 기존의 히트곡·번안곡들도 통기타 중심의 포크 선율로 채색해 대중가요 수준을 예술적 경지로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앨범 수가 적어 초반은 2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초반과 같은 해 발매된 재반에선 타이틀곡이 ‘세노야 세노야’에서 ‘꽃 피우는 아이’로 바뀌었고, 고전인 ‘사의 찬미’, 번안곡 ‘젊은 날의 그 시절’ ‘사랑하는 마음’ 등이 추가됐다. 72년 이후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최양숙은 75년 ‘가을편지’를 악단 세션으로 재녹음한 3판을 발표하면서 컴백에 성공했고, ‘가을편지’는 국민가요로 자리 잡게 된다.



▶바블껌·마일스톤의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오아시스레코드, 1972)



71년 이규대·조연구로 구성된 혼성듀엣 ‘바블껌’은 70, 80년대 청소년들이 즐겨 불렀던 캠프송 ‘연가’ ‘짝사랑’ ‘토요일 밤에’를 최초로 노래한 인기 듀엣이다. 리더 이규대는 67년 배재고 1학년 때 국내 최초로 고교생 포크 사중창단 ‘마일스톤’을 결성한 인물이다. 대학생이 된 이규대는 하루 출연료 500원을 받는 무명가수로 서울 명동 꽃다방에 출연했고, 조연구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팀 이름을 ‘버블껌’으로 정했다. 이후 DJ 박원웅과 정식 매니저 계약을 맺은 이규대는 ‘바블껌’과 더불어 배재고 사중창단 ‘마일스톤’과 함께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72년 1월 오아시스에서 발매된 이 음반은 한국 최초의 고교생 포크사중창단의 데뷔앨범이라는 역사성과 바블껌의 감미로운 포크송 때문에 인기가 높다.



▶오세은 3집 ‘스테레오 독집’(지구레코드, 1974)



오세은은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로 시작하는 가요 ‘또 만나요’의 작곡가다. 대중에겐 낯선 음악가지만 그의 음반들은 대중가요의 희귀 고가 명품으로 통한다. 특히 금지곡 ‘고아’가 수록된 3집은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며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명반으로 꼽힌다. 1500장 정도 판매된 것으로 알려진 오세은 3집의 오리지널 초반을 실제 구경한 사람은 거의 없다. ‘고아’의 가사가 ‘사회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 딱지가 붙어 전량 회수됐기 때문이다. 포크 느낌이 강했던 1, 2집에 비해 3집에는 포크록·블루스 등 여러 장르가 혼재돼 있다. 서울 장충동 녹음실에 걸려 있던 프랑스 여가수의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촬영한 우울한 분위기의 재킷 사진은 ‘블루스’ 음악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다.



참고자료 =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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