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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8명 지방 아기 … "KTX 차비 빌려달라" 전화도



①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 내부에 동작 센서가 달려 있어 밖에서 문을 열면 교회 안에 벨이 울린다.
② 벨이 울리면 교회 관계자들이 교회 1층 다용도실과 연결된 베이비박스 반대편 문을 열고 아기를 꺼낸다.
③ 교회는 2~3일간 아기들을 돌보고 ④ 일주일에 두 차례(화·목) 관악구청 직원들이 아기를 보육원에 보내기 위해 데려간다. 박종근·강정현 기자
지난 2일.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은 20대 남성이 서울 관악구 난곡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교회 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열고 아이를 넣은 뒤 황급히 돌아섰다. 벨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이종락(60) 목사가 차를 타고 떠나려던 남자를 붙잡았다. 짧은 길거리 상담이 시작됐다. 남자는 전문대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4)씨였다. 아이는 이틀 전 새벽에 태어났다고 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 <상> 난곡 베이비박스 불편한 진실
438명 아기 기록일지 분석해보니
미혼모, 성폭력 피해 등 이유 다양
대학생 커플 하루 뒤 찾아가기도
출생신고 의무화돼 입양 더 꺼려



 “아이 엄마가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당장 키울 형편이 안 돼 제가 졸업 후에 아기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양가 어른들은 아직 아기가 태어난 사실도 모르고 계세요.”



 김씨는 겨우 몇 마디를 털어놓고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7시30분쯤 김씨 부부는 다시 교회를 찾아 아기를 데려갔다. 밤새 뒤척이며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형편이 어렵지만 아기를 키우려고 합니다. 양가에도 이 사실을 알릴 거고요.”



 437번째로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이 아이는 하루도 채 안 돼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베이비박스에 버렸다 다시 찾아간 이런 경우는 지난 4년 동안 수십 건에 불과하다.



 이 목사 부부는 자신들의 보호하에 있는 2~3일 동안 최대한 아기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직접 만나지 못했을 경우에는 남겨진 편지·쪽지나 폐쇄회로TV(CCTV)에 남겨진 인상착의를 기록했다. 친부모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2010년 3월 29일부터 올 4월 5일까지 이런 식으로 작성된 기록은 438건이다.



 ‘가정에서 출산한 것으로 보임. 탯줄을 실로 묶어놓음. 가위로 탯줄을 길게 잘랐고 끝을 불로 지진 흔적. ’



 2010년 3월 29일 들어온 모세(당시 1개월)는 베이비박스 1호 아이였다. 모세는 보육원을 거쳐 새 이름을 얻고 입양됐다.



 본지는 베이비박스 기록일지 438건을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사유가 담긴 323건 중 경제적 어려움, 장애, 부모 범죄, 불법체류자 등 아이를 버린 이유는 갖가지였다(그래픽 참조). 이 중 ‘미혼모(부)’가 절반이 넘는 173건(53.5%)으로 가장 많았다. 성폭행으로 원치 않은 아이를 낳게 된 대학생 오모(25·여)씨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22일 교회로 찾아와 아이를 맡긴 오씨는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기록을 남기도록 입양특례법이 개정돼 입양을 포기하고 베이비박스를 찾아왔다”며 울먹였다. 입양에 앞서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이후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미혼모가 늘고 있다.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한 미혼모는 편지에서 “입양특례법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입양을 택하려 했지만 무조건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이 가능하다고 들어 포기했다”고 썼다. 지난달 19일에는 선천적으로 뇌가 없이 태어난 ‘무뇌증’ 여자 아기(생후 1개월)가 들어왔다. 10대 미혼모 김모(19)양이 낳은 아기로, 김양의 어머니 황모씨가 아기를 교회로 데리고 왔다. 황씨는 “어린 딸이 아기를 낳은 것도 충격인데 아기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의료비를 감당할 처지가 안 되니 맡아달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김모(19)양은 생후 이틀 된 여자 아기를 맡기면서 “아기 아빠가 내가 임신 중에 다른 여자를 강간한 범죄를 저질러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이라며 “아기를 봐줄 사람도, 키울 돈도 없어 맡긴다”고 하소연했다.



 베이비박스 아이 10명 중 8명 정도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다. 조모(21)씨는 ‘왕자’라는 태명의 남자 아이(당시 1개월)를 들쳐 업고 전남 진도군에서 상경했다. 조씨는 “부모님이 모두 일흔 살이 넘어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교회에는 "KTX를 타고 갈테니 차비를 빌려달라”는 상담전화도 걸려온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등 관계당국은 베이비박스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김대열 회장은 “아동 유기는 엄연히 범죄지만 베이비박스가 있기 때문에 아기가 안전하게 다른 이들의 품속에서 자랄 수 있다”며 “베이비박스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기헌·장주영·이유정·정종문·장혁진 기자, 사진=김상선·송봉근·박종근·강정현 기자





◆베이비박스(Baby Box)=미혼모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양육하기 힘든 영아를 놓고 갈 수 있도록 한 상자. 독일·체코·폴란드·일본 등 19개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선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가 2009년 12월 처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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