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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통 죽방 멸치 소금 뿌려 지글지글 술도둑 따로 없네

1 술안주로도 좋지만 밥과 함께 먹으면 황횰경을 경험할 수 있다
요즘은 부부 모두 운전면허를 갖고 있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 부부는 나만 면허 소지자다. 그나마 혼자 살 때는 면허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대중교통이 워낙 잘 발달한 서울에서는 차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통영에 내려오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야 아내에게 등을 떠밀려 운전학원에 등록해 면허를 취득했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3> 남해 멸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처지였던 터라 차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이도 많았지만, 그건 내 ‘장돌뱅이 패턴’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질문이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평일 점심 무렵 목적지에 도착해 터미널 혹은 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인지 마실을 나온 것인지 모를 한가로운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흥정을 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혼자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재밌는 일이었기에 굳이 운전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이 아닌, 특히나 광역시도 아닌 인구 13만 정도의 소도시에서 살기 위해서는 운전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운전면허는 한 번에 땄다. 문제는 면허를 딴 지 석 달 된, 그리고 실제 운전대는 네 번째 잡던 초보가 통영까지 차를 끌고 내려가야 한다는 데 있었다. 성산동, 자유로, 내부순환로를 경험한 직후 강변북로를 거쳐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 나는 아무 사고도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생초보’에게 생명을 의탁하고 네댓 시간을 긴장한 채 조수석에 앉아 있어야 했던 아내가 더욱 더 훌륭(?)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아내가 이제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선언했다. 아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공용차량이 생길 예정이라 직원들은 모두 운전을 해야 할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아내의 손에 차가 남아날까?”

2 조수의 차이를 이용해 멸치를 잡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 3 세상 무엇보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멸치구이 4 묵은지와 함께 쪄낸 멸치는 상추쌈으로 먹는 게 정석
통영산보다 큼직하고 부드러운 맛
오랜만에 한가한 주말을 맞아 남해로 향하던 날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통영에서 남해로 갈 때는 고성을 지나 좌회전을 한 후 고갯마루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약간의 경사와 굽이가 있는 길이라 초보들에게는 그리 녹록지 않다. 나 역시 처음 그 길을 통해 남해로 갈 때는 꽤나 긴장을 해야 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남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식사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멸치를 먹는 일이었다. 통영에도 흔하디 흔한 게 멸치이긴 했지만 남해의 멸치는 확실히 특별한 데가 있다.

통영 멸치가 조금 먼 바다에서 잡아 배에서 바로 자숙(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달리 남해에서는 아직도 원시 어업인 죽방렴(물살이 드나드는 곳에 대나무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방식)으로 멸치를 잡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은 바로 그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를 이용해 무침을 하고, 김치찜을 하고, 구이를 하는 곳이었다.

통영에서도 같은 메뉴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긴 하다. 시장에만 나가도 대가리를 떼고 내장을 발라낸 생멸치를 팔고 있으니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것 역시 크게 번거로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남해까지 가서 멸치를 찾은 건 그곳의 멸치가 통영의 것보다 더 크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멸치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아저씨는 그저 “여 멸치가 딴 데보다 좋아요”라며 간단히 설명을 했지만, 아무래도 해안에서 잡히는 것과 조금은 떨어진 연안에서 잡히는 것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소·짭짤·감칠맛 … 구워 먹어야 진가
그래서 남해의 멸치는 어떻게 먹든 그 잔가시 하나마저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고 넘어간다. 멸치 특유의 고소한 맛이야 살아 있지만 비린내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나리, 마늘, 초고추장처럼 강한 양념들과도 훌륭한 조화를 이뤄낸다. 하지만 남해 멸치의 진가를 가늠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누가 뭐래도 굽는 것이다.

손질한 멸치에 소금을 뿌리고 그릴에 구워내는 것은, 말은 쉬워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멸치요리 전문점 중에서도 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고 그나마도 한창 바쁠 때는 주문이 불가능하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우리 부부야 일부러 식사시간을 피해 갔으니 그 고소하고 짭짤하며 감칠맛이 넘치는 멸치구이를 맛보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아니, 나는 문제가 있었다. 그 맛있는 멸치구이를, 아내는 맥주를 곁들여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아 세상에 저런 아름다운 조합을 혼자서만 즐기다니! 나는 눈물이라도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나는 결코 술을 입에 댈 수 없는 입장이었으니, 아내가 그 바삭한 멸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이내 시원한 맥주를 조금씩 마시는 모습을 그저 외면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따로 있는 법. 나는 이내 은근히 부아가 오르기 시작했고 가급적이면 빨리 식당을 나가자고 아내를 재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침착하고 냉철한 아내는 식사에는 적정속도가 있는 법이니 참고 기다리라며 나를 달랬다.

식당에서 나와 남해의 탁 트인 풍광에 위로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물었다.

“면허학원은 언제 등록할 거야?”

“곧 해야지. 사무실에서 곧 차를 산다고 하니까.”

“그래? 그럼 당장 다음 주말에 갈까?”아내는 왜 그리 서두르냐고 물었지만 나는 “기왕 딸 거 얼른 따는 게 낫지”라고만 했다. 봄 멸치철이 가기 전에 면허를 따야 나도 멸치구이에 맥주 한잔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끝끝내 하지 않은 채.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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