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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중국판 노라의 차이는 남녀평등 의식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지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 <11> 입센『인형의 집』 vs 후스의 『종신대사』

노라는 남편에게 단호하게 결별을 통보하고 집을 나간다. 『인형의 집』(1879)에서 한 가정의 안주인 노라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에 앞서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가출하는 결말은 당시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이 작품에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는 평판을 가져다주었다. 그와 함께 주인공 노라는 세계 문학사에서 작가 입센보다도 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부터 교육해야 해요. 그런데 당신은 그 일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혼자 해야 해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떠날 거예요.” 노라에게 무슨 일이 생겼기에 그녀는 가출을 결심한 것일까? 노라는 사랑하는 남편 헬메르의 귀여운 ‘종달새’이자 ‘다람쥐’로서 그를 거역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남편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다. 결혼 초에 건강이 나빠진 남편에겐 요양이 필요했지만 남편은 절대 남에게 빚을 지지 않는 성미이기에 노라는 남편 몰래 거액을 빌렸다. 게다가 차용증의 보증인으로 아버지의 서명까지 위조한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위법이지만, 노라의 기준으로는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제 헬메르는 건강도 회복되고 곧 저축은행의 총재가 될 예정이며 노라도 생활비를 아껴 빚을 잘 갚아 나가고 있는 참이다. 하지만 채권자가 문서 위조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뒤늦게 노라의 비밀을 알게 된 남편은 자신의 사회적 위신만을 걱정하며 아내를 맹비난한다. 그제야 남편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노라는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결혼생활을 감내해 왔는지 알게 된다.

그런데 채권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차용증을 돌려주자, 남편은 태도를 바꿔 노라를 용서하겠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아, 노라, 당신은 남자의 마음을 몰라. 자기 아내를 용서했다는 걸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남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일이지. 자기 아내를 전심으로, 거짓 없이 용서했다는 것 말이야. 그럼으로써 여자는 두 배로 그의 소유물이 되니까.”

노라는 자신이 지금까지 집안에서 남편에게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먹고살아” 왔던 것을 깨닫는다. “갑자기, 지난 8년간 여기서 내가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중국에서도 노라는 신여성의 대명사였다. 특히 후스(胡適)는 입센주의의 핵심을 개인주의로 보고 노라의 비타협적인 각성을 높이 평가했다. 여기서 개인주의는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교육하고 스스로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리킨다.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에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후스가 이런 계몽사상을 담아 쓴 희곡이 『종신대사(終身大事)』(1919)인데, 전씨 집안의 딸 아매가 혼처가 생기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담은 단막극이다. 전씨 부인은 관음보살의 예언과 점쟁이의 점괘가 나쁘게 나오자 딸의 결혼에 반대한다. 아매는 그런 근거 없는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 전 선생에게 희망을 걸지만, 그는 또 다른 이유에서 딸의 결혼을 반대한다. 사윗감 진 선생의 진(陳)씨가 원래 전(田)씨와 기원이 같기에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매는 절망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하오”라는 진 선생의 연락을 전달받고는 과감하게 부모에게 작별을 고하는 쪽지를 남기고 몰래 집을 나간다.

노라의 가출과 아매의 가출은 무엇이 서로 닮았는가? 아버지와 남편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았던 노라는 뒤늦게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아매 역시 결혼은 부모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구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남편에게 당당하게 자기 의지를 밝히고 집을 나서는 노라에 비하면, 비록 가출이라는 선택 자체가 당시로선 파격적이라 하더라도 몰래 집을 나서는 아매는 아직 미덥지 못하다. 게다가 아매는 혼자 집을 나가는 게 아니라 밖에서 기다리던 진 선생의 차를 타고 떠난다. 그녀의 행동은 구시대적 가치에 대한 반항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사회 조건의 차이이기도 하다. 『종신대사』는 처음에 여자 배역을 찾지 못해 공연이 무산됐는데, 당시 중국에서는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를 따라 가출하는 역할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9년 ‘신청년’에 발표된 작품이 1923년에 와서야 초연된 이유다. 하지만 근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도 아직 인형의 집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필자 이현우는 서울대 대학원(노문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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