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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주 망하게한 건 지도층의 거짓말

일러스트 강일구
“요즘엔 신문 기사 제목에 ‘거짓말’ 대신에 ‘또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늘었다. 지목되는 대상은 주로 청와대·정부·검찰·국정원 등 국가의 중추 기관과 이러한 기관을 대표하는 공직자들이다.”

[‘문화의 안과 밖’ 릴레이 강연] 이승환 고려대 교수

이승환(57·사진)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공적 윤리 측면에서 가장 큰 한국 사회의 문제는 공직자들의 거짓말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덕목은 공정·정의·배려·관용 등이다. 그런데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대화와 소통이 이뤄질 수 없고,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서는 무엇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5일 네이버문화재단과 세계문화오픈(WCO) 코리아가 후원하는 ‘문화의 안과 밖’ 릴레이 강연에서 ‘공공 공간에서의 행동윤리’를 주제 삼아 연단에 올랐다. ‘공적 영역에서 거짓말은 추방될 수 있는가’가 부제로 달렸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 등이 지난 1월에 시작한 이 강연은 내년 1월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에서 매주 토요일에 진행된다.

이 교수는 거짓말로 인한 공동체 붕괴의 사례로 중국 서주(西周) 시대 유왕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유왕은 새 왕후로 들인 포사가 웃지를 않자 간신 괵석보의 제안에 따라 봉화대에 불을 지폈다. 주변 제후국은 오랑캐가 침범한 것으로 여기고 군대를 보냈다. 봉화는 거짓 신호였고 다급하게 몰려왔던 군대는 허탈하게 돌아갔다. 포사가 이를 보고 크게 웃자 유왕은 이를 반복했다. 그 뒤 견융족이 침입했고, 봉화를 올려도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이로써 서주는 패망했다. 이 교수는 “요즘 다수의 국민은 대형 사건에 대한 검찰의 발표를 믿지 않고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한다. ‘봉화’라는 제도는 믿을 게 못 되므로 ‘특별봉화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비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정직이나 신의와 같은 내면의 인격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공정한 규칙 준수 등 공동체의 가치 기준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도 후안무치한 사람들은 있었다. 문제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점점 다수가 돼가고 공동체의 안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으로 등극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따른다면서 정치 지도자에게는 거짓말이 용납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마키아벨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파괴할 만한 악덕으로 이름을 떨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마키아벨리가 ‘군주는 때로 개인적 차원의 미덕을 접어 둘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은 권력을 위한 속임수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반 이익을 실현하는 책임정치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군주정에서는 영명한 군주의 용단을 관철하기 위해 거짓말이 용인될 수도 있었겠지만, 시민들의 대화와 합의에 의해 공동선이 도출되는 민주공화국에서 지도자와 공직자의 거짓말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직자의 거짓말을 몰아내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으로 이 교수는 유권자의 ‘주인의식 회복’을 제시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공공 세계에서 벗어나 사적인 삶을 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이디오테스(idiotes)라고 불렀다. 오늘날 바보, 얼간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이디어트(idiot)가 여기에서 유래됐다.”

강연 뒤 토론에서 배병삼 영산대(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참말’ 하기가 국가를 바로세우는 일의 근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퇴계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서원(書院) 세우기 운동을 벌인 것은 당시 관리들의 부도덕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도 학교 교육의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대엽 고려대(사회학) 교수는 “국가 기구나 권력 집단 내에서 거짓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집단병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기만된 행위를 용인하는 집단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창 명예교수는 “‘선의의 거짓’이 있다는 생각으로 거짓말에 관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정당화할 수 있다.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안 하는 게 옳다. 피치 못할 때는 침묵하면 된다”고 의견을 냈다. 강연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점점 진실과 거짓이 구별이 안 된다. 어떤 것을 진실이라 믿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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