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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21세기 성공 창업 교과서 … 잡스의 M&A 유혹도 거절

2009년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 창업자를 직접 만나 10억 달러(언론 추정치) 규모의 인수 제안을 했다. 그러나 휴스턴은 이를 딱 잘라 거절한다. 드롭박스가 애플의 일개 ‘기능’이 되길 원치 않으며, 큰 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블룸버그 뉴스]
요즘 실리콘밸리는 자고 일어나면 수조원대 인수합병(M&A) 소식으로 뜨겁다. 페이스북만 해도 2월 말 27조원에 왓츠앱을 인수한 데 이어, 일주일 전에는 가상현실기술 벤처 오큘러스를 2조1500억원에 가져갔다. 왓츠앱과 오큘러스 모두 엄청난 성공 신화를 쓴 셈이다. 한데 여기서 분명한 사실 하나, 두 회사 창업자 모두가 접을 수밖에 없는 꿈이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위상의 기업을 일구는 것이다. 두 회사의 리더이자 주인은 이제 그들이 아니기에.

<30> 드롭박스 창업자 드루 휴스턴

그런 의미에서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록 스타’로 인정받는 젊은 창업자 겸 CEO가 있다. 드롭박스(Dropbox)의 드루 휴스턴(Drew Houston·31)이다. 드롭박스는 올해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골드먼삭스, 세쿼이어캐피털 등 유수 투자자들로부터 총 2억5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기업 가치는 무려 100억 달러(약 10조6000억원). 최대 주주인 휴스턴의 자산도 1조3000억원대로 불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회사가 기업공개(IPO)를 할 경우 트위터의 가치를 가뿐히 제압하는 ‘잭팟’을 터뜨리라 예상한다. 지난해 11월 트위터의 IPO 첫날 시가총액은 250억 달러였다.

무엇보다 드롭박스는 구글·애플·페이스북·세일즈포스닷컴처럼 ‘플랫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수많은 파트너를 제 안으로 끌어들여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 중인 것이다. 꿈이 큰 휴스턴은 이미 수 차례의 강력한 M&A 유혹을 이겨냈다. 제안자 중에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있었다.

드롭박스(Dropbox) 로고.
그렇다면 드롭박스란 뭘까? 쉽게 말해 각종 파일을 PC는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갖 기기에서 자유롭게 넣고 빼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어떤 기기에서든 사진이나 문서를 ‘드롭박스’ 폴더에 집어넣으면 연결된 모든 기기로 순식간에 업로드 된다. 여러 사람이 한 계정에 접속해 실시간 공동작업을 할 수도 있다. 이동저장장치(USB 메모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며, e메일이나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해 파일을 올리고 내리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 2기가바이트(GB)의 저장 공간을 무료 제공하고, 윈도부터 안드로이드까지 거의 모든 운영체제(OS)를 지원한다. 현재 2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파일 공유 서비스다.

휴스턴이 밟아온 길은 21세기 성공 창업자의 교과서만 같다. 그는 하버드대 출신 엔지니어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보스턴 근교에서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살 때 어린이용 IBM 컴퓨터를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열두 살 때 게임을 하던 중 발견한 버그를 제작사에 알려 임시 직원에 발탁되기도 했다. 공부를 잘해 SAT(미국 대입 평가시험) 1600점 만점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오직 관심은 프로그래밍과 창업이었다. 주말이면 관련 서적을 수북이 쌓아놓고 읽는 것은 물론 저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창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길은 쉬이 잡히지 않았다. 몇몇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서 일하며 자기만의 비전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을 찾은 그는 작업 내용이 담긴 USB메모리를 가져오지 않은 걸 깨달았다. 낭패감에 휩싸인 가운데 퍼뜩 ‘각종 파일을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드롭박스 홈페이지를 보면 그가 ‘보스턴 기차역에서 (드롭박스 소프트웨어의) 코드 첫 줄을 썼다’고 설명한다.

드디어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은 그는 2007년 실리콘밸리로 이주한다. 이어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YC)에 도전한다(본지 2013년 5월 26일자 ‘세상을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Y콤비네이터 세운 폴 그레이엄’ 참조). 당시 그가 YC의 액셀러레이팅(보육) 대상이 되기 위해 제출한 지원서 내용은 그 패기와 통찰력,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로 인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지원서를 살펴보면 그가 당시 이미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기기가 우리 일상은 물론 업무 영역 전반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여러 파일 공유 서비스가 출시됐으나 일반인도 쉽게 접근하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제품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의 문제의식과 해법은 YC의 인정을 받아 철저한 멘토링은 물론 적지 않은 투자까지 받게 된다. 대신 YC의 요구와 그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공동 창업자를 물색한다. 이란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MIT 후배 아라시 페르도시였다. 페르도시는 고작 6개월 남겨놓은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실리콘 밸리로 달려온다. 그는 현재도 드롭박스 최고기술책임자(CTO)다.

드롭박스라고 처음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은 건 아니었다. 초기 고객 물색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일껏 투자받은 돈을 온라인 광고비로 허비하던 중 휴스턴은 색다른 방식을 고안한다. 유머러스한 코멘트와 함께 시제품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찍어 얼리어답터들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들어온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선한 뒤 또 후속 비디오를 올렸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해 시제품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 이른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이후 드롭박스는 뛰어난 기능과 편리한 사용자환경(UI) 디자인, 무료-유료로 이원화된 요금 설계, 빠른 동기화 속도와 안정성, 사용자가 또 다른 사용자를 추천하면 양측에 무료 데이터를 추가 제공하는 마케팅, 외부 개발자나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 정책 등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지난해 휴스턴은 MIT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였다. “테니스 공을 쫓아 목줄이 끊길 지경으로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꿈에 집중하라.” “삶을 완벽하게 만들려 하지 말고 재미있게 만들라.” 특히 내 맘을 사로잡은 건 자신을 둘러싼 원(circle)에 대한 이야기였다. 휴스턴은 말했다. “1분만 생각해 보라. 당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5명의 사람(circle of 5)은 누구인가?”

그는 재능 또는 노력만큼이나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이냐가 중요하며, 그것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제 곁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꿈꾸며 닮고 싶어하는 사람 또한 ‘당신의 인맥’이라고 강조했다. 내 서클은 누구이며, 누구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인가. 이번 주말을 바쳐서라도 고민해 볼 만한 주제인 듯하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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