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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나폴레옹의 역설, 전쟁이 평화를 불렀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근대 유럽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캔버스에 유채, 94.5x74.8cm. 함부르크 아트센터 소장. [사진 비즈니스맵]


근대의 탄생 I·II

폴 존슨 지음

명병훈 옮김, 살림

1권 936쪽, 2권 800쪽

각권 4만원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오늘날이 변화가 가장 빠르고 많은 시대다. 이 같은 현재의 기원을 이루는 시대를 근대라고 부른다. 근대 이전의 전통시대에서 변화란 정통적인 것에서 벗어나거나 부정하는 이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했다는 말처럼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가 화두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어떻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 말씀 대로가 아니라, “하늘 아래 똑같은 것은 없다”는 신조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됐는가?



 역사학에서 일반적으로 근대의 기점은 에릭 홉스봄이 이중혁명이라고 지칭한 18세기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얘기된다. 전자가 왕정으로 상징되는 구체제를 종식시키고 국민주권에 입각한 근대국가를 세우는 정치혁명이라면, 후자는 생산방식을 농업과 수공업에서 공업과 기계로 바꾼 경제혁명이었다. 하지만 역사학 연구가 깊어갈수록 이중혁명의 신화는 해체됐다. 프랑스혁명은 사회 진보와 함께 국민 전체를 공포와 테러의 희생자로 만드는 역사의 재난을 초래했다. 또한 산업혁명기에도 여전히 주된 생산력은 기계가 아니라 수공업자가 담당했기에 혁명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근대라는 특별한 시대는 하루아침에 탄생하고 않고 잉태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의 저자 폴 존슨은 1815년부터 1830년까지의 임신기간을 통해 근대라는 인류사의 특별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에서 1815년은 ‘빈 체제’라는 프랑스혁명이 성취한 진보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반동이 시작된 해로 말해진다. 하지만 존슨은 역설적이게도 이때부터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질서가 확립됐다는 사실을 공식 기록은 물론 사적인 편지와 일기, 시와 소설 등 당시를 증언하는 거의 모든 사료를 섭력하여 밝혀냈다. 그는 군주와 정치가·발명가·예술가 등의 주연급 인물들 뿐 아니라 평민과 범죄자 심지어 동식물에까지 이르는 조연들의 역할도 부각시키는 그야말로 살 냄새나는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썼다.



 헤겔은 나폴레옹을 프랑스혁명을 구현하는 세계정신이라 지칭했다. 하지만 존슨이 보기에, 나폴레옹은 이성의 빛이 아니라 광기의 카오스다. 신기원을 여는 창조는 카오스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근대라는 우주의 빅뱅은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카오스로부터 생겨났다.



 존슨은 1815년 이후 ‘시대정신’은 개혁을 향한 열정이 아니라 안정이었다고 말한다. 전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던 나폴레옹전쟁 이후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했다. 그래서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왕정복고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오히려 ‘억압’을 반겼기 때문에 근대라는 질서가 확립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 국가들은 이 같은 질서 덕분에 과학과 문화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그 발전이 사람들의 신념·열정·가치·편견 및 사고방식을 ‘근대적으로’ 변화시켰다.



 존슨은 근대를 잉태했던 15년간은 ‘모든 게 처음이었던 시대’였고 ‘역사상 결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었던 이 시대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으로 우리말 번역본으로 1600쪽에 달하는 2권의 책을 집필했다.



 하지만 그의 ‘고귀한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근대라는 질서는 변화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역설은 근대성의 위기인 상대주의를 낳았다. 근대 이후 상대주의가 다시 세계를 카오스로 빠뜨리는 시대를 존슨은 다른 책 『모던타임스』(살림, 2008)에서 다뤘다. 근대라는 ‘구질서’가 방향을 잃고 상대주의적 우주를 떠도는 상황에서 나폴레옹의 아류들인 레닌·스탈린·히틀러·무솔리니·마오쩌둥 같은 독재자들이 출현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다시 카오스를 극복하고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룩할 새 시대를 열 것인가? 존슨은 이 같은 염원으로 200년 전 우리 현재를 잉태한 15년간을 회고하지만, 이 책에서 희망의 메시지는 전하지 못한다. 그는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유명한 그림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에 그려진 인물처럼 근대라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화가가 했다는 말처럼 중얼거릴 뿐이다. “판단은 시간이 내려줄 것이리라. 과연 찬란한 나비가 탄생할 것인지 아니면 구더기가 나올는지.” 이것이 현재 우리의 기원인 근대가 여전히 문제가 되는 이유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



김기봉은 경기대 사학과 교수, 현재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으로 파견 근무 중. 저서 『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팩션시대: 역사와 영화를 중매하다』『역사들이 속삭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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