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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하우스 오브 카드' 냉소할 일인가

권석천 논설위원
“규칙은 하나뿐. 사냥하든지, 사냥당하든지.”



 “늑대가 아니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양이 될 뿐이야. 양떼 속에 머물지, 늑대 무리에 합류할지 결정해야 해.”



 내 어록들이오. 나?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채널N 방영)’의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요.



 다수당 원내총무인 나는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언론 플레이, 뒷거래, 이간질, 기만, 협박, 살인도 서슴지 않지. 내가 말했잖소.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르려는 사람에게 자비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이 드라마를 미국 정치에 대한 냉소로만 바라보지 않길 바라오. 시스템엔 죄가 없소. 물론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돼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과소평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오.



 자, 내가 저지른 악행들을 걷어내고 드라마 속의 정치 시스템을 봅시다. 나의 중심 무대인 의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오. 새로 선출된 대통령도 교육 개혁을 하려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하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원칙에 따라 의원들에게 법안이든, 지역 민원이든 조건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하는 거지. 원내총무실 벽에 의원들 이름을 붙여놓고 하나하나 표 계산을 하면서.



 짜증 나고 귀찮은 일이지만 의회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대통령도, 행정부도 허수아비에 불과하오. 그게 바로 일찍이 몽테스키외가 말한 3권 분립 아니겠소. 그래서 나도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 사태를 막기 위해 상대 정당에 정년연장법안을 양보했소. 불만은 없어요. 민주주의란 어차피 최선이 아니라 차선(次善), 아니 차악(次惡)을 택하는 거니까.



 등장 인물 가운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의회 로비스트의 역할이오. 그들은 정치 후원금을 내면서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을 하지. 그렇다고 로비스트가 하는 모든 일을 색안경 쓰고 볼 필요는 없소. 노조를 대표해 법안 저지 운동을 벌이는 로비스트도 있으니. 자기 주장이 강한 로비스트들과 일해야 하는 건 고역이지만 이익집단과 의회를 이어주는 그들의 기능을 탓할 순 없다오.



 미국 의회의 전문성이 강한 까닭도 합법적으로 등록된 로비스트들이 이익단체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해주는 데 있소. 의원들은 그들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대안들이 있는지 파악하게 되지. 이익집단들의 자유 경쟁을 통해 타협과 절충이 이뤄지고 정책이 추진되는 게 미국 정치의 핵심이오. 한국처럼 음성적으로 뒷돈이 오가거나, 브로커들이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니겠소.



 다시 말하자면 미국 정치의 그림자를 비웃기만 할 게 아니라 정치 시스템의 밝은 면도 주목해야 한다는 거요. 시즌 2에 나오는 특검 수사도 마찬가지요. 수사가 시작되면 대통령마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소. 특검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이기심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오. 그런 점에서 중국 정치인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일당 체제의 우월감을 느낀다는 건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오.



 솔직히 나는 한국 정치인들이 마음에 드오. 입법보다 진영싸움에 올인하는 당신들이. 선거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당신들이. 따지고 보면 우린 비슷한 회색지대를 걸어가고 있소. 언젠가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소.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당론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건 나의 ‘가차 없는 실용주의(ruthless pragmatism)’에 맞는 것이오. 한국 정치가 효율성 있는 정치인지 의문이지만….



 이만 말을 마쳐야 할 것 같소. 저기, 아내 클레어가 다가오고 있소. 한 가지만 잊지 마시오.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한다는 것.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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