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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황제 노역' '세 모녀 자살'로는 통일 없다

이하경 논설주간
‘황제 노역’과 ‘세 모녀 자살’을 두고도 통일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달 28일 ‘드레스덴 선언’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긴장의 수위를 높이는데도 미국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내세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중국 역시 현상유지 쪽을 선택한 답답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나왔다. 화해·교류·협력과 비핵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유연한 입장이다.



한·미 동맹만 외치면서 비핵화를 요지부동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와는 달라진 접근이다. 북한은 생존을 이유로 네 번째 핵실험을 예고했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 화해를 선택한 것이다. 박근혜 이니셔티브의 승부수다. 화해의 궁극적 지향점은 통일이다. 이제부터는 북한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매력적인 존재로 받아들일지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회장님의 하루 일당을 5억원으로 인정해준 사법부의 ‘황제 노역’ 판결은 공동체의 정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5억원은 서민들이 한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거액이다. 그런데 회장님이 하루의 교도소 노역으로 5억원의 벌금을 탕감받는다면 인간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국가가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차가운 반지하 셋방에서 세 모녀가 세상과 결별한 사건은 이웃의 어려움에 냉담한 우리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힌 고발장이다. 국가는, 공동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가 정의와 복지의 결핍을 해결하지 못해 가슴을 치고 있는데 북한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1990년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이 원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베를린 장벽을 허문 것도 동독 주민들이었다. 동독 5개 주가 스스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겠다고 결정했다. 서독은 기본법 23조에 따라 이를 수용했을 뿐이다. 물론 서독은 동독보다 강하고 잘살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한국처럼 ‘차이’가 ‘차별’로 연결되는 사회였더라면 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서독만큼 잘살지도, 강하지도 않다. 진보인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보수인 콜이 승계해 통일로 완성하는 초당적인 합의의 정신도 뚜렷하지 않다. 우리는 통일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환기적 리더십에 해답이 있다. 야권의 분열 덕분에 36.6%의 낮은 득표율로 집권한 그는 취임 직후의 총선에서 참패했다. 여소야대의 악조건이었지만 남북관계를 포함한 북방정책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남북한 신뢰구축과 불가침을 강조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한국 주도로 이끌어냈다. 통일비용 마련을 위한 남북협력기금법도 마련했다. 공산국가인 중국·소련과 수교했다. 미국으로부터 평시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았고, 광주 미문화원과 AFKN 채널도 반납받았다. 자주외교로 평가받는 이유다. 비결은 세계사적 탈냉전의 흐름을 읽고 야당과 시민사회의 역동적인 요구를 폭넓게 수용한 데 있었다.



 놀라운 점은 군 출신임에도 “모든 외교는 내치의 성공에 기반한다”는 신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북방외교를 뒷받침한 기둥으로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함께 민주화를 꼽았다. 실제로 보수층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렀고, 해외순방 때 산별노조 대표와 동행했다. 임기 중 최저임금제 도입(1988년),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1990년), 의료보험 확대(1991년), 국민연금 확대 도입(1991년) 등의 사회통합적 복지·노동 정책을 단행했다.



김선혁 고려대 교수는 “노태우를 ‘가발 쓴 전두환’으로 지칭했던 것이 속단이었다”며 “적어도 노태우 시대는 부단하고 확고하게 민주주의를 지향했던, 그리고 민주주의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살아 숨 쉬며 작동했던 그런 시대였다”고 평가했다.(『노태우 시대의 재인식』, 나남, 강원택 서울대 교수 편)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는 북한 붕괴론이 없다. 비핵화와 화해·협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 방식과 비슷하다. 보수·진보의 흐름이 만나는 초당적 접근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내치에서도 초당적 협력이 본격화돼야 한다. 성장과 일자리를 확대하면서 정의와 복지의 결핍을 해소하는 과정에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이는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사회통합의 길이다. 산업화·민주화를 통일로 마무리하려는 ‘통일 대통령’ 박근혜에겐 더없이 절실한 과제다. 보수층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당·노조·시민사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민주화와 북방외교를 성공시켰던 노태우 리더십을 기억해야 한다. 야당과 손잡고 ‘황제 노역’ ‘세 모녀 자살’이 없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통일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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