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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6년 사는 동안 소주에 빠져 돈 못 모았어요"



나는 2012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우리의 베이스 캠프를 모두 다녀왔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후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네팔 쪽은 ‘특급 도우미’ 크리슈나(32) 덕분에 편히 다닐 수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을 때다. 그는 틀림없는 네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첫 인사말은 “안녕하세요”였다.

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 사람들 ⑧ 한국말 잘하는 트레킹 가이드 크리슈나



우리말을 우리처럼 잘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6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었다. 발음뿐만 아니라 개그콘서트의 유머 코드를 알아듣는 영리한 친구였다. 그는 네팔 카스트제에서 가장 상위 계급인 브라만(Brahman) 출신으로 4년제 대학을 다니다, “학교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갔다”고 했다.



 하지만 6년 동안 돈은 별로 모으지 못했단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소주가 정말 맛있어서”였단다. 브라만은 본래 성직자 계급으로 술을 해서는 안 되지만, 네팔 밖이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꼬박꼬박 월급을 네팔로 부쳤지만, 소주 문화에 젖어 들다 보니 “한국말 배워 온 것 빼고는 남은 게 없다”고 했다.



 크리슈나와 함께 히말라야에서 보낸 날이 족히 100일은 넘을 것 같다. 그는 시종일관 친절했다. 나를 부르는 호칭도 극진했는데, ‘대장님’부터 시작해 ‘대표님’ ‘사장님’ 등 다양했다. 서로 친해진 이후에는 “형이라 부르라” 해도, 한 번도 ‘형’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좀처럼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크리슈나는 언젠가 ‘한국인 트레커’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트레킹이 끝나면 팁보다는 입고 있던 옷이나 신발을 잘 주는 편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일당을 적게 받기 때문에 옷보다는 현금이 더 좋다. 간혹 스태프에게 욕을 하는 손님들도 있다. 한국 팀을 자주 만나는 가이드나 포터들은 한국말 욕에대해 잘 알고 있다. 네팔은 한국처럼 나이 많은 사람을 무조건 받드는 문화가 없다. 손님들이 ‘야’ ‘새끼’ 같은 말을 하면,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서양이나 일본 사람들에 비해 따뜻하다. 갖고 온 술을 현지 스태프들에게 따라 주며 술자리를 같이 하는 손님은 한국 사람 밖에 없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크리슈나가 평소 “아이 씨~”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필시 우리에게서 전염됐을 것이다.



 네팔에서 트레킹 가이드는 손님이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비행기를 타고 출국할 때까지 에스코트를 해준다. 가이드가 아니라 개인 집사나 비서 수준이다. 주로 10여명 이상으로 꾸려지는 한국인 단체 팀은 더 세심하게 배려하는 편이다.



 네팔에서 등반 가이드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네팔이 한 문화권으로 영국의 지배를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을 때다. 차밭으로 유명한 다질링(Darjeeling)에서 인력거꾼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쿨리(Coolie)’로 불렸다. 19세기 후반, 에베레스트(8848m)를 정복하고 싶은 ‘영국 신사’들은 쿨리를 데리고 히말라야로 갔다. 척 보기에도 강인해 보였기 때문이다. 쿨리의일과는 해 뜨기 전 ‘사히브(Sahib)’의 텐트로 밀크티를 갖다 바치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히브는 우리말로 하면 ‘마님’이라는 뜻이다.



사히브가 텐트 밖으로 나오면 나무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사히브의 가죽 부츠 끈을 매어 주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일과다. 당시 베이스캠프 풍경을 전하는 사진이나 그림엔 어김없이 이런 장면이 있다. 그러나 1953년, 다질링 출신 텐징 노르가이(1986년 사망)가 에드먼드 힐러리(2008년사망)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며 쿨리는 ‘등반 가이드(Climbing Guide)’로 격상됐다. 지금은? 등반뿐만 아니라 트레킹까지도 현지 스태프가 맡는 역할은 막중하다. 이들이 없다면 한 해 수백 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한 해 수만 명의 트레커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50m)까지 유유자적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은 김영주 일간스포츠 기자가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14개 봉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걸으면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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