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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둘 아직도 가슴 뛴다는 현역 수채화가

박정희 할머니가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서 "오늘 기분이 정말 최고야"라며 엄지손가락을 들고 활짝 웃었다. 이 그림은 셋째 사위 집에 있는 난초 화분을 그린 것으로 특선을 수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언제나 행복했지.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지금이 제일 좋아.”

10번째 개인전 연 박정희 할머니
"그림 그릴 수 있어 늘 행복했지"
자녀에겐 육아일기·동화책도 써줘



 수채화가 박정희 할머니는 올해 한국 나이로 92세다. 이달 중순 서울 종로에서 ‘아흔두 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뛴다’를 주제로 10번째 수채화전을 개최했다. 최근 기자가 찾은 인천 화평동 ‘평안 수채화의 집’에선 꽃과 그림에 둘러싸인 할머니가 활짝 웃고 있었다. 할머니가 이곳에서 그림을 가르친 것은 50여 년 전부터다. 남편이 운영하던 ‘평안의원’ 2층이 그의 아틀리에 겸 미술학원이었다.



 “내가 요즘 아파. 전시회에는 못 갔어. 제자들 가르치는 것도 그만두려 했는데 제자들이 ‘가만 계시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합니다. 그냥 문만 열어두세요’라고 해서 가르치는 건 계속하고 있어. 오늘은 컨디션이 최고야.”



 할머니는 익살맞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얼마 전 방광염 수술을 받았다. 수술 때문에 거동이 힘들다. 그래도 손에서는 붓이 떠나지 않는다.



 수채화가로 공식 데뷔한 건 1990년 그의 나이 67세 때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여덟 살 때부터다. “아이들은 칭찬을 해줘야 돼. 그러면 다 해결돼. 나도 학교 선생님이 ‘정희는 똑똑한데 그림도 잘그리는구나’라는 말에 내가 진짜 잘그리는줄 알고 그리기 시작한 거야.”



 그림 그리는 것만큼 좋아하는 건 글쓰기다.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쓴다. 1남4녀를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는 2001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로 출간됐다. “자신이 어떻게 낳고자랐나, 어떤 이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컸나를 알면 살다가 힘든 고비를 만나도 착하고 행복하게 이겨나갈 수 있지.”



 인터뷰 중 김명심(69·인천시 신흥동)씨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금요일마다 그림을 배우러 오는 제자다.



 “다른 학원에도 많이 가봤지만 할머니 그림은 특별해요.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요. 청소년부터 중장년까지 요일별로 다른 제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배우러 와요.”



 할머니는 아직도 매일매일이 설레고 행복하다고 했다.



 - 몸이 아프셔서 힘들지 않으세요. 많은 이들이 가난이나 병 때문에 힘들어 하잖아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는 거야. 하나님이 살라고 하셨으니 행복하게 살아야 해.”



 - 살면서 힘든 일도 있었을 텐데.



 “힘든 거야 말할 수 없이 많았지. 시집을 갔더니 시부모에 시동생이 6명이야. 막내 시동생은 일곱 살이었지. 6·25전쟁 때는 죽을 뻔도 했고. 하지만 난 전쟁통에도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들과 기쁠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



 할머니의 선친은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이다. 인천 출신인 할머니는 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44년 평양의전 출신 의사 유영호씨와 결혼해 평양으로 가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47년 삼팔선을 넘어 친정이 있는 인천으로 내려왔다가 그곳에서 6·25전쟁을 겪었다. 평양에서 내려온 시댁 식구들까지 해서 23명 대가족의 살림을 돌봤다.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도 계속했다. 남편 병원에 걸 캘린더를 직접 그렸고, 아이들에게 줄 동화책도 손수 만들었다. 그중 한 권인 『깨끗한 손』은 최근 도서출판 ‘노란돼지’를 통해 출간됐다. 언니들과 달리 손도 까맣고 성적도 안좋다고 고민하는 넷째딸 순애의 실제 이야기다. 그림책의 모델인 순애는 현재 배재대 식물의약학과 유순애 교수다.



 “백설공주니 콩쥐팥쥐니 하는 애들용 동화책 대부분이 계모가 전실 자식 구박하는 얘기더라고. 안되겠다 싶어 내가 직접 동화책을 만들었지. 우리 애들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동화책을 얻고 싶은 욕심에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



 할머니는 전시회와 미술학원 운영으로 생긴 수입 등을 모아 한국점자도서관과 인천맹인복지회관을 건립했다. 지금도 매년 1000만원을 시각장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송암장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7회 장애인의 날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 그림에만 전념하셨으면 위대한 화가가 되셨을 텐데. 후회되는 일은 없으세요.



 “난 위대한 거 싫어. 그저 평범한 게 좋아. 후회되는 일은 없어. 2005년 먼저 간 남편이 “난 당신만 있으면 돼.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5분도 살고 싶지는 않아”라고 했어.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랑 고백을 들은 사람이라고.”



글=박혜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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