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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규제개혁, '혁신 마일리지'는 안 된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1998년 7월 31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북부와 지리산에 기록적인 비가 내렸다. 35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시간당 145㎜의 폭우는, 자기 몸 외엔 어떤 것도 챙길 수 없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집은 물에 잠겨도 제자리에 있었지만 자동차는 아니었다. 몇몇 시민단체는 힘을 합해 ‘떠내려간 차 찾아주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 일엔 돈이 들었다. 재정적으로 힘들어진 시민단체는 차주들에게 “최소비용인 5만~10만원을 입금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차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90%) 입금하지 않았다.



 당시 대학생이던 기자의 사회학개론 공책에 필기된 내용이다. 마지막엔 교수의 물음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개인의 윤리 문제일까요?”



 제도(규제) 없이 인간은 함께 살 수 없다. 개인은 이익과 비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따라서 개인의 합리성은 조직의 합리성과 따로 놀 때가 많다. ‘함께 사는 좋은 사회’라는 윤리명제가 아닌, 규제와 인센티브가 적절하게 작동할 때 사회는 굴러간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강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에게 규제는 쳐부술 원수이고 암 덩어리이며 퉁퉁 불어터진 국수다. 대통령의 의지가 이 정도면 공직사회에 전해지는 압박은 대단히 크다. 대통령의 끝장토론을 지켜본 국장급 공무원 K는 “가시적인 무언가를 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내 인사권자의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말이 위에서부터 내려오면 단계를 거칠 때마다 관성이 더해져 그 힘이 엄청나게 커진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혁신’이란 단어는 박 대통령의 ‘규제개혁’만큼이나 강한 신조였다. 대통령이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연일 강조하자 정부는 ‘혁신 마일리지 제도’라는 걸 만들어 공무원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마일리지를 쌓는 방법에는 ▶독후감 쓰기 ▶정부 정책에 댓글 달기 ▶워드 자격증 따기 등이 포함됐다. 어떤 기관은 필기시험으로 혁신을 측정했다. 의미는 사라지고 혁신이란 단어 자체가 목표가 됐다.



 K국장은 말을 이어갔다. “규제는 복효적(復效的)이다. 어떤 이에겐 피해가 되고 어떤 이에겐 이익이 된다. 규제에 손을 댈 땐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그 제도가 탄생했는지, 그것을 없앰으로써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볼지 따져봐야 한다. 제도의 연혁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98년 집중호우 이후 지리산에선 개인 취사와 야영이 전면 금지됐다. 이런 규제는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곳에선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만들기 힘든 규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K국장의 반응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관료집단의 특성”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왕에 규제개혁을 말하기 시작했으니, 제도의 복효성과 연혁을 꼼꼼히 살펴서 나쁠 건 없다. 제도의 의미와 맥락에 대한 학습이 함께 진행된다면 더 좋다. 분위기에 휩쓸려 “성과를 내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현 정부에서도 ‘제2의 혁신 마일리지 제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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