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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교황의 아름다운 일탈

두어 주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흥미로운 일화를 언론에서 접했다. 로마교구 사제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직접 들려준 얘기란다. 교황은 특히 ‘자비’를 강조하면서 “자비란 무엇보다 하느님 백성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기에 사제는 자비를 보여야 한다”며 목자 없는 양처럼 피곤에 지쳐 영혼이 피폐해진 이들의 죄를 용서해주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강연 도중 교황은 잠시 준비한 원고를 덮어놓고선, 그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 시절 한 신부 장례식에서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아리스티 신부님은 고해사제로 유명했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 신부님의 관에 헌화하다 신부님의 손에 쥐어진 묵주를 보았지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 손에 있는 묵주를 가져왔지요. 그 순간 신부님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반만이라도 내게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교황은 그날 이후로, 그리고 교황직에 오르고 나서도 그 묵주를 윗옷 가슴 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특히 누군가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묵주가 있는 주머니 쪽에 손을 대면 금세 자비의 마음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일화를 읽노라니 내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내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터키·그리스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스탄불의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에 들른 적이 있었다.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 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눈 앞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라는 이름이 크게 클로즈업됐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명 문장과 명 설교로 유명한 그. 오죽하면 요한 금구(金口)란 별칭으로 더 알려졌을까.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아, 내가 그토록 흠모하던 요한 금구 성인! 어쩌다 그가 남긴 명문을 만날 때면 그 격한 호흡에 얼마나 감동했던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가이드를 따라 저만치 이동 중이었다. 이때다 싶었다. 나는 사진 봉사자를 얼른 불렀다. 그러고는 안전줄을 밀고 유해가 안치된 함 쪽으로 다가가 ‘손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뒤 슬쩍 함 뚜껑에 손을 얹고 사진 한 장을 찍게 했다. 그 순간 기도했다. “성인이시여, 저에게 당신의 열정과 영검이 함께하도록 빌어주소서.” 이 기념비적인(?) 사진은 그 기도에 대한 담보로서 지금 내 연구소 한쪽에 고이 모셔져 있다.

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리스티 신부의 묵주가 탐났을까. 왜 나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유해를 몰래라도 만지고 싶었을까. 모자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감당하는 데 요구되는 영적 역량이 턱없이 부족함을 매순간 느끼며 살고 있는 게 모든 사제의 가난한 현실 아닐까. 사실 ‘자비’나 ‘열정’이나 한통속이다. 둘 다 사제들의 생명력인 것이다.

그러한데 며칠 전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내심 무척 찔린 적이 있다. 화제는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생활상에 대한 것이었다. 분유가 모자라 아사되는 아이들, 링거액과 결핵약이 없어서 죽음으로 내몰린 환자들, 영양실조로 성장이 멈춰 평균 신장 1m60㎝를 밑도는 군인들…. 민간 대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이의 안타까움과 그걸 듣고 있는 나 자신의 무덤덤함이 교차되는 찰나, 물음이 솟았다. 나 신부 맞아? 나는 지금도 자성 중이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북한의 혈육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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