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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악마에 대한 고뇌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1995년 제4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언더그라운드’에는 동물원이 전투기들에 공습당하는 시퀀스가 나온다. 철창과 울타리를 비롯한 시설들 대부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피 같은 포연 사이로 상처 입은 온갖 동물들은 이미 죽어 널브러져 있는 다른 동물들 곁을 마치 지옥의 변방으로 유배된 유령들처럼 헤맨다. 대학 시절 골방에서 군용 모포를 뒤집어쓰고 앉아 지지거리는 비디오테이프로 보았던 그 장면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끔찍한 나머지 그 고통이 아직도 내 뼈에 서늘히 새겨져 있다.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오마하 해변을 돌진하는 수만 명의 연합군 청년들이 독일군의 기관총 소사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가지만 그다지 엄청난 인간적 비애의 감흥이 일진 않는다. 스필버그가 당시로서는 유행하지 않았던 핸드 헬드 카메라 기법을 과감히 사용해 전장의 현실감을 극대화시켰는데도 말이다.

왜였을까? 내가 전자에서 훨씬 강력한 비참을 느꼈던 까닭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라는 신랄한 괴짜가 인간을 주제 넘게 혐오하고 동물을 지나치게 연민해서일까? 아마도 그것은 전자의 경우가 평소 무시하며 버젓이 살아가던 어떤 비참의 핵심을 내게 화들짝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령 우리가 공장 시스템 안에서 동물들을 도살하고 식품으로 가공하는 광경을 일일이 목격한다면 분명 우리는 육식이란 행위에 감당하기 힘든 역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방역을 위해 동물들을 생매장시키는 작업에 투입되는 수의사들과 공무원들이 앓게 되는 정신질환 역시 동물들의 아비규환따윈 아예 없는 것으로 치고 지내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생전에 성철 큰스님은 현대에 들어 엽기적 살인마들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것은 우리가 마구 능멸하며 잔인무도하게 잡아죽이는 짐승들이 원한에 사무친 인간으로 환생해서라는 사뭇 무서운 법문을 남기셨다. 옛 백정들과 유목민들은 짐승들을 가능한 한 가장 적은 고통 속에서 꼭 필요한 수만큼만 죽였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제사까지 올려줬다.

윤회가 실재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윤회의 가치 서열은 이미 인간에 의해 전복된 지 오래다. 필경 동물들이 인간이라는 살생기계로 환생하기를 천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 싯다르타는 새가 밭이랑의 지렁이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는 깊은 연민에 사로잡혀 출가했다. 그러니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하는 것은 사찰과 교회에 억만금을 갖다 바치는 것보다 더 두터운 공덕과 사랑을 쌓는 길일 것이다.

당장 가만히 눈을 감아 보라. 그러면 일순 어두워지고, 이 세계는 동물들의 절규로 가득 차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신과 악마 사이에서 부유한다”라고 『팡세』에 썼고 “인간은 신이 아니면 동물이다”라고 『정치학』에 쓴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지만, 인간이 동물 앞에서 신으로 행세할 때 인간은 오로지 악마일 뿐이다.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대신 인간은 동물을 제멋대로 처분해도 되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그릇된 신념의 그 폭력성은 인간 자신에게까지 자주 확장된다. 괜히 버나드 쇼가 “인간은 지구의 질환”이라고 자조했겠는가. 인간의 역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들에 대한 대학살의 역사다. 1945년 이후 지금 전 세계에는 1만9000개 이상의 핵탄두가 존재한다. 인류를 스무 번 이상 멸종시킬 수 있는 양이다.

신을 섬긴다면서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사실 신이나 동물이나 다 지배하겠다는 참칭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벌레 한 마리도 만들지 못하면서 한 다스나 되는 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몽테뉴는 『수상록』에 썼다. 이런 문제들은 자칫 너무 우주적이어서 쉽사리 체념이라는 가짜 위로에 휩싸이기 십상이지만, 인간은 스스로 인간임을 회의해 보지 않는 한 그 어떤 근본적인 선량함도 얻을 수 없다.

“나는 신을 믿는다. 인간은 우주 최고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다. 우리가 마치 최고의 존재인 양 행동한다면 우리는 가장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 말이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입장을 숙고하는 것은 문명의 가치와 존엄을 점검해 보는 귀중한 숙제다. “동물은 이름을 부르면 이리로 온다. 사람과 꼭 닮았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반철학적 단장』에 썼다. 살과 피가 동물에게만 있는 게 아니듯, 영혼은 인간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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