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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한 가스관 ‘1석 4조’인데 … 손 놓고 있는 한국 정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 자치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조약에 서명하던 지난 18일. 유럽과 미국의 비난 성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푸틴의 한 측근이 조용히 일본으로 향했다. 푸틴의 오랜 동지이자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업체 로스네프트의 최고경영자(CEO) 이고리 세친이었다. 그는 이튿날 도쿄에서 기자들을 모아 놓고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한다면 모스크바는 아시아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전략기술분석센터(CAST)의 중국전문가 바실리 카신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러시아는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고 중국 지지만 받아도 아무도 러시아가 고립됐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4년 뒤면 300km 코앞 산둥까지 들어오는 러시아 가스관



러시아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이런 발언을 내놓은 배경은 뭘까.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중-러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주목한다. 양국은 동시베리아 코빅타 가스전과 사하공화국 내 차얀다 가스전을 중국 동북 3성~베이징을 거쳐 산둥반도까지 파이프로 연결하기 위해 2년여 동안 본격적인 가격 협상을 벌여왔다. 실제 세친도 이날 회견에서 “오는 5월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천연가스 최종 계약이 체결된다면 글로벌 파워가 바뀔 것이고 그러면 서방은 필요 없어진다”고 큰소리 쳤다.



 중·러 에너지 동맹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이 논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정가에서는 오는 5월 중·러 정상 회동에서 수년째 이어진 천연가스 가격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어느 때보다 맞아떨어지고 있어서다. 우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에너지 수출에서 유럽 의존도를 낮춰야 할 형편이다. 석유·가스는 러시아 수출의 70%, 연방정부 재정수입의 52%를 차지한다. 이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가는 지역이 유럽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의 75%가 유럽으로 향한다. 아시아 소화 분량은 15%에 불과하다. 천연가스의 경우 아시아에 수출하는 물량은 1100만t으로 미미하다.



 중국은 환경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동안엔 천연가스에 비해 가격이 싼 석탄을 주로 써왔다. 문제는 석탄이 스모그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최근 중국 젊은 층 사이에는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자”며 이민을 고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인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백근욱 선임연구위원은 “연료 사용 문제가 사회 안정성 문제로 번지면서 중국 내에는 스모그 원인인 석탄 사용을 줄이고 천연가스 사용 비중을 현재 5~6%에서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 외교가에서는 수입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에 모종의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안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내 한 소식통은 “양국 정부 간 긴밀하게 접촉이 이뤄지고 있어 마지막 남은 가격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될 공산이 커졌다”고 전했다. 중·러는 가격 협상에 서명하는 대로 곧장 공사에 들어가 이르면 2018년에 동부 시베리아와 산둥반도를 잇는 4000㎞ 파이프라인을 완성할 계획이다. 한반도에서 서해 넘어 315㎞ 전방까지 러시아 천연가스가 배달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금이 중·러 파이프라인 협상에 한국이 뛰어들 호기라고 지적한다. 눈앞에 차려지는 ‘자원 밥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게 아니라 이 파이프라인을 한국으로 연장해 ‘다목적 자원외교 카드’로 활용하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산둥으로 들어온 파이프라인을 인천까지 연장할 경우 한국에는 크게 네 가지 실익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수입선 다변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중동·호주 등 다른 수입선과의 거래 시 가격 협상 권한이 커지는 것이다. 백 연구위원은 “대형 선박으로 LNG를 전량 들여오는 상황과 파이프라인 공급선을 확보한 상황은 가격 협상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산둥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300여㎞에 불과해 해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데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블라디보스토크~북한 내륙~속초 라인이 850㎞인 데 비하면 연결 구간이 훨씬 짧다. 서해는 수심이 평균 55m로 얕아 파이프라인 공사에 기술적 제약도 없다.



 인천으로 들여온 러시아 가스관은 대북 협상의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재영 구미·유라시아실장은 “비핵화를 전제로 인천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연결하는 파이프 라인 건설을 북한에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북한에 당근책이 된다는 얘기다. 이 실장은 “블라디보스토크~북한 내륙~속초 라인이 대북관계에 따라 공급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던 데 비해 인천~개성~평양 파이프라인은 이런 염려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북한 외에 일본에도 팔 수 있다. 국내에는 2400㎞ 길이의 내륙 순환 가스 파이프라인이 있다. 부산과 일본의 규슈 지역을 연결하면 러시아~중국~한국~일본을 거친 동북아 천연가스 동맹체 결성이 가능해진다. 일본은 전력 발전의 30%를 LNG 연료에 의존하는데 한국처럼 LNG를 전량 선박으로 수입하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천연가스를 쓰는 나라가 됐다. 실제 멕시코만의 산지 기준으로는 가스 1mmbtu의 평균 가격이 4달러지만 일본에는 이보다 4.5배 비싼 가격으로 도입된다.



 가스 수입비용을 낮추기 위해 일본은 러시아 사할린에서 홋카이도 혼슈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개설하는 방안을 러시아와 오랫동안 논의해왔지만 북방 4개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백 연구위원은 “일본 내 가스 파이프라인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인천으로 들여온 파이프라인은 우리가 일본에 외교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된다”며 “일본 천연가스 시장에서 미국의 LNG 못지않게 한국의 파이프라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합치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세계 최대 단일 대륙이자 거대 시장인 유라시아 역내 국가 간에 협력을 통해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북한 개방 유도 등에 함께 나서자는 구상이다. 이 실장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매개로 북한을 둘러싼 4개국이 에너지 공동체로 묶이면 한반도 평화 유지에 강력한 억제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중~한 파이프라인은 장기적으로 동북아 환경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된다. 중국·한국이 합쳐 시장이 커지면 LNG 수입 가격을 더 낮출 수 있고 그만큼 중국 내 사용량을 늘릴 수 있다. 스모그 주범인 석탄 사용 감축의 전기를 마련하는 셈이다. 한국이 중앙아시아에 보유한 가스전을 활용할 길도 열린다. 한국은 현재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등에 가스전을 매입해 보유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생산된 가스를 국내로 들여올 방법이 없어 애를 먹어왔다. 백 연구위원은 “파이프가 연결되면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이 생산한 가스를 중국에 주고 러시아산 가스를 파이프를 통해 공급받는 ‘스와프’ 거래가 가능하다”며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논의에 뛰어들 시간이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한국가스공사 등 국내 유관 부처·기관 사이에는 서해 파이프라인에 대한 논의가 멈춘 지 오래다. 정부 한 관계자는 “MB 정부가 블라디보스토크 라인을 강조한 이후 서해 라인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아무도 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MB 정부는 2010년 파이프라인 설치의 경제 타당성 검토를 위해 러시아 가스프롬,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외부 용역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블라디보스토크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당시 조사는 서해 라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PNG(파이프를 통해 가져오는 것), CNG(압축천연가스), LNG(액화천연가스) 상태로 들여오는 방법과 비교했다.



 중국은 2012년 2월 방중한 한국석유공사 대표에게 중·러 파이프라인을 한국으로 연결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아직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가스 연결은 석유공사가 나설 업무는 아닌 데다 에너지 문제는 정치·경제·외교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여서 공사 차원에서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자부 이용환 가스과장은 “가스 도입 문제는 가격과 부대 조건, 에너지 수요 현황, 대체 에너지인 셰일가스 수급 현황 등 다양한 각도에서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의지가 확고한 만큼 중·러의 협상 결과에 따라 차후 서해 라인도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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