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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판사의 사정, 서민의 심정

권석천
논설위원
내가 법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 게 있다. 한마디로 “왜 사법시험을 안 봤느냐”는 거다.



 별로 대단한 사연도 아니다. 대학 때 몇 달 도서관에 처박혀 시험 준비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와 마주쳤다. “네가 만약 판사가 되면 내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겠어?” 엄혹한 5공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던 그 몇 분이 법조인의 꿈과 결별한 순간이었다.



 판사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느낌만은 이후로 계속됐다. 그래서일까. 판사들이 ‘일신상의 사유’로 법복을 벗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솔직히 실망감이 앞선다. 물론 개개인의 사정이 있었을 테지만 올곧게 판사의 길을 걸어간 이들에게 마음이 간다. 판사 유병진(1914~66)이 그런 경우다.



 1950년 6·25가 터지자 피난을 갔다 9·28 수복 때 서울로 돌아온 유병진은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들을 재판한다. 그가 남긴 수기 『재판관의 고민』(신동운 서울대 로스쿨 교수 편저)을 읽으면 그 시절 판사들의 고뇌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당시 특별조치령은 부역자에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돼 있었다. 단심제였다.



 “내가 만약 서울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죄수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유병진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안심해도 된다”는 정부 발표에 발이 묶인 채 북한군의 위협 앞에 서야 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최소한의 순종은 불가피하지 않았나. 차라리 그들이 정부에 가졌던 믿음을 탓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역자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유병진은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내가 만약…’이라는 그의 판단 기준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가 만약 피고인이라면, 내가 만약 피해자라면, 내가 만약 평범한 시민이라면.



 광주고법의 ‘일당 5억원’ 판결이 논란이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 대신 교도소 노역을 할 경우 1일 5억원으로 환산하도록 한 것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검찰은 1심에서 벌금형에 대한 선고유예를 요청한 뒤 항소하지 않았다. 판결문은 ▶탈세한 법인세 및 가산세 등 818억원을 모두 납부한 점 ▶횡령한 돈 대부분을 성당 건축비로 기부한 점 등을 제시한 뒤 이렇게 판단한다. “벌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유예한다면 탈세 규모가 클수록 선고유예 가능성이 커지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판사들은 “선고유예로 봐주지 않고 50일 정도는 노역을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인데 ‘일당 5억원’ 부분만 너무 부각되고 있다”고 말한다. “판결 하나로 판사의 삶 전체를 낙인 찍는 세태가 무섭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정의의 평등한 얼굴을 가려서는 안 된다. 판결은 눈 앞의 사건만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판결과 관련되지 않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허 전 회장과 자신의 몸값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 서민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더 안타까운 건 시민들에게 법원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전관예우 의혹, 무전유죄 시비, 막말 판사 논란…. 법원을 향한 불신은 불만 당기면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기름이다.



 인간에 대한 최종 심판은 신(神)만이 할 수 있다. 제한된 증거와 진술에 좌우되는 현실의 모든 판결은 가처분(假處分)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진실 중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정답이 주어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재판은 사명감과 겸허함 없이 불가능하다.



 “글쓰기는 촌충을 몸 안에 달고 사는 것처럼 온 몸을 바쳐야 하는 작업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복종의 길이다.”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말이다. 재판도 다르지 않다. 판사들이 고통스러운 물음 앞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세우지 않는 한 사법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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