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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담백 … 들과 바다의 푸른 앙상블

1 막 잡아올린 도다리로 끓인 도다리쑥국은 비리지 않고 달콤하다.
나무는 여전히 앙상한 것들이 많지만, 들은 이제 제법 푸릇하다 할 만큼 녹색 기운이 퍼지고 있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검푸르게만 빛나던 바다도 점점 한여름 녹음처럼 푸르게 물들어 간다. 들과 바다가 서로 닮은 색으로 변화하는 계절, 지금이 바로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할 때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2> 통영 도다리 쑥국

시장 좌판엔 도다리, 들판엔 쑥 천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변화하는 것은 바람의 냄새다. 아마 도시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계속해서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게다가 언제나 차가 막히는 성산대교 북단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면 봄의 기미를 코로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시사철, 하루 24시간 변함없이 배출되는 매연에 후각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했을 테니.

하지만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 통영에서는 계절에 따라 그 향이 달라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여름에는 따가운 햇살에 증발한 바닷물의 짭짤한 냄새가 섞여 있다면 가을에는 떨어진 낙엽의 쓸쓸한 냄새가, 겨울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증류수 같은 냄새가 난다. 그리고 봄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향이 느껴진다. 물론 순수한 물리적 향이 아닌 감상적인 소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벌써 통영에서 세 번째 봄을 맞이하다 보니 봄의 초입에서 느껴지는 바람 내음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쑥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널린 경사진 들판에서 말이다.

관광객은 물론 통영사람들도 그 존재를 잘 모르는 당포성지는, 삼덕항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요 ‘쑥’ 공급처라 해도 좋을 곳이다.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축조하고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개보수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던 유서 깊은 성이 자리 잡고 있던 이곳은, 비록 경사가 급하긴 하지만 너른 풀밭이 펼쳐져 있어 쑥을 뜯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봄에도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쑥을 뜯었다. 물론 쑥만 뜯기엔 풍광이 좋은 곳이라 돗자리를 깔고 햇볕을 받으며 잠시 앉아 있거나 아무렇게나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본격적인(!) 목적을 갖고 온 사람들의 눈에는 빈둥거리는 것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모를 움직임으로 봄의 알싸한 향을 머금은 쑥을 캐고 돌아가는 길에는 시장에 들러야 한다. 이젠 덩치 큰 물메기와 대구가 모두 사라지고 다양한 크기의 도다리들이 좌판을 그득하게 차지하고 있는 그 시장으로 말이다.

2 통영사람들도 잘 모르는 당포성지는 너른 풀밭이 펼쳐져 쑥을 뜯기에 더없이 좋다. 3 한때 광어 짝퉁으로 통하던 도다리지만 가격은 예상 외로 비싸다. 4 끓는 물에 도다리와 쑥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해주면 도다리쑥국이 완성된다.
도다리·쑥 묘한 조화 … 소금 간만 해도 충분
도다리는 한때 광어의 ‘짝퉁’이라며 천대받던 생선이다. 당시만 해도 광어는 본격 양식에 접어들기 전이었던 터라 꽤나 고급 어종 대우를 받았고(물론 지금도 일정 크기 이상의 자연산 광어는 상당한 몸값을 자랑한다), 도다리는 그저 많이 잡히는 잡어 취급이었기에 ‘좌광우도’라는 사자성어(?)까지 만들어가며 도다리를 광어로 알고 잘못 사는 일이 없도록 TV나 신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도다리는 그저 그런 놈이라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었다. 나이키가 아닌 나이스 혹은 게스가 아닌 게우스처럼.

그런데 통영에서 첫 봄을 맞이하던 해, 광어보다 조금 작고 조금 더 짙은 색의 생선으로 끓인 국을 맛본 아내는 사정이 달랐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도다리쑥국을 맛보았는데, 그렇게 향긋하고 담백한 맛은 또 없을 거라며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터라 함께 시장에 나가 도다리를 구입했는데, 가격이 예상 외였다. 비쌌던 것이다.

“도다리가 맛있으니까 비싸지. 토영(연세가 있는 분들은 통영을 ‘토영’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 귀하다 캐서 비싸게 주는 기 아니라 맛있으니께네 비싸게 사는 기다.”

기억으로는 마리당 1만원이 조금 더 됐다. 그나마도 그건 끓여먹는 용도의 것이 그 정도였고 횟감으로 유통되는 것들 중 호랑이 무늬가 선명한 것(강도다리 혹은 범가자미라고도 불린다)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란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 도다리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신이 나서 도다리를 끓였다. 방법이야 간단했다. 물을 끓이다 도다리와 쑥을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소금으로 간을 해주면 그것으로 끝. 취향에 따라 된장을 풀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아내는 시장에서 배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도다리를 요리했다. 그리고 내 앞에 한 그릇을 놓았다. 별로 구미가 당기는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그 향만큼은 참으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먹어봤더니, 그 맛은 아내의 묘사대로였다. 쑥향이 심하면 먹기 힘들어지는데 그 국물에서는 그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막 잡아 올린 도다리는 달콤하기만 할 뿐 비린내라고는 전혀 없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그 도다리쑥국을 밖에서 사먹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해먹는 게 까다로운 음식은 아니지만 이제 10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쑥을 뜯으러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그 맛이야 여전했다. 어쩌면 예전보다는 좀 더 편하게 먹게 되어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아기가 밥상으로 뛰어들 1, 2년 후에는 식당에서 사먹는 일 역시 그리 편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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