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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신명·고요 어우러진 전통춤 300종 … 우리가 지킨 건 7종뿐

‘한국 창작무의 대모’로 꼽히는 안무가 김매자(맨 앞)씨와 단원들. 창무(創舞)의 풍경 ‘춤의 김매자’에서 발췌. [창무예술원 제공]
‘손 하나만 들어도 춤이 된다’.

한국문화대탐사 ⑩ 춤

한국 미학의 정수를 간직한 한국 무용의 특성이다. 시공간에 흘려보내는 비언어적 몸짓들은 하나의 선(線)과 자태로 응집되고 여백의 미를 이룬다. 정중동(靜中動)의 숭고한 경지다.

“춤을 출 때는 신명과 고요가 서로 교통해야 하느니라. 지상과 우주가 화합하고 장삼 자락을 걷어 올릴 때는 태산을 들어 올리는 기품이 들어 있어야 참맛이 우러나느니라.”

올해로 탄생 140주년을 맞는 근대 전통 춤의 거장 한성준(韓成俊·1874~1942)이 손녀 한영숙에게 춤을 가르치며 해준 말이다. 한영숙은 승무와 학춤 기예능보유자로서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살풀이춤’을 공연해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모은 바 있다.

안국동 월드컬처오픈(WCO) 서울사무소의 무료 공간 나눔 프로그램으로 생명 평화 커뮤니티 댄스를 추고 있는 최경실 안무가(가운데 서 있는 사람)와 시민들. 조용철 기자
본래 무대예술이 아니었던 한국무용의 원리는 한마디로 답지저앙(踏地低昻:땅을 밟고 구부렸다 폈다 함)과 수족상응(手足相應:손발을 서로 조화롭게 함)이다. 서구의 춤처럼 뛰어오르거나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전통 춤은 신명의 춤이기도 하다. 흥겹고 신명 난 장단과 춤사위로 곧잘 무아지경으로 이끈다. 신명의 춤은 민중들의 고달픈 삶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승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원효대사는 광대 복장으로 무애춤을 추었다. 삶과 종교, 노동과 예술의 근원적 일치를 꾀하는 연결고리가 바로 전통 춤이었다.

음주가무(飮酒歌舞)는 한국 고대문화의 키워드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은 매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췄던 국가적 축제였다.

한국은 춤의 나라였다. 한국의 전통 춤은 무려 300여 가지나 되었다(1세대 무용학자 정병호 조사)고 한다. 정재(呈才) 같은 궁중무용과 마당놀이나 탈춤 같은 민속춤, 문묘·종묘·사찰의 의식무용으로 대별되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1960년대부터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 살풀이춤, 처용무, 진주검무, 태평무, 승전무, 학연화대합설무 등 7종목이 전승돼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이수자나 전공자들만 춤출 뿐 손 하나만 들어도 춤이 되었던 대부분의 한국인은 더 이상 전통 춤을 추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춤추는지도 알지 못한다.

전통 춤에 관한 한 오늘날 한국인들은 ‘춤맹(舞盲)’에 가깝다. 한국 미학의 정수였던 춤의 계보를 잇고 있는 한국무용계는 문화가의 변방이 되었고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은 처참할 정도다.

3월 마지막 주에 공연되는 피나 바우쉬의 ‘풀 문(Full Moon, 부퍼탈 탄츠테아터)’ 내한공연 총 4회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고 한다. 12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티켓까지도 동난 것이다. 독일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쉬의 유작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이들은 윌리엄 포사이드, 제롬 벨 등 해외 ‘빅네임’ 안무가들의 내한공연 때마다 행렬을 이루는 무용 매니어층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국내 무용단의 공연을 외면한다. 그래서 매번 객석 채우기에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춤의 나라 한국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 원형을 간직해온 전통 춤의 위상이 이렇게 추락한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1910년 일제 강점을 꼽는다. 1899년 아현 무도회장을 시발로 국립극장 성격의 협률사, 연흥사, 단성사 등 서구식 극장 양식을 띤 연희공간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일제의 강점을 당하면서 장악원(掌樂院:조선시대 궁중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의 해체와 연희 공간들의 폐쇄로 인해 전승체계가 흔들리게 된다. 이후 크게 두 가지 경로로 그 맥이 가까스로 전승되는데 이왕직 아악부를 통한 정재의 계승과 권번(券番)을 통한 민간 전통 예능교육이 그것이다. 기생조합인 권번을 통한 춤 교습은 ‘춤은 기생이나 추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낳게 된다. 이는 한국 춤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다.

1926년, 한국 무용은 대전환점을 맞는다. 일본 현대무용 개척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경성 공연을 계기로 신무용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시이 바쿠는 최승희와 조택원 등을 연구생으로 받아들여 한국 근대무용을 세계에 알리는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엘리트 출신인 최승희(1911~69)와 조택원(1907~76)은 전통 춤을 그대로 무대로 올린 게 아니라 서양 춤과 접목시키고 거기에 시대정신을 담아서 신무용이라는 장르를 개척했어요. 최승희나 조택원은 일제 강점기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걸출한 재능과 인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세계인을 감동시켰던 것이죠. 국가적 지원이라는 건 생각할 수도 없던 때입니다. 그들은 1930년 후반에 미국·중국·일본·유럽·남미 등 전 세계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그들은 국악인들을 대동하고 갔어요. 그렇게 한국 전통 춤의 원형을 보여주고자 애썼던 것이죠. 특히 조택원의 경우는 공연만 한 게 아니라 유창한 영어로 한국적인 몸짓의 의미를 서양사람들에게 특강해서 가르쳤습니다. 최승희 역시 우리 한국인의 몸짓을 어떻게 하면 어필할까 고심하고 연구했지요. 그래서 가는 곳마다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고 피카소, 찰리 채플린 같은 유명인사들이 몰렸던 겁니다. 진정한 한류의 선두 주자는 전 예술 장르를 통해서 최승희와 조택원이었다고 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기숙 교수는 이와함께 김창하·한성준·김숙자·이동안·강선영 같은 전통 춤 거장들의 공로를 기렸다.

60년 춤 인생을 돌아보는 ‘그리고 다시 봄 김매자’ 공연을 앞두고 신촌 포스트극장을 찾았다. 한창 연습 중에 김매자 이사장은 김선미·최지연·김지영 같은 제자들과 함께 예술사가 김미상 박사를 초청해서 ‘춤본Ⅰ·Ⅱ’와 창작무용을 놓고 연구를 하고 있었다.

“젊은 학생들이 와서 공부 좀 하라고 해도 좀처럼 오지 않고 박사나 교수급 안무가들만 참여하는군요. 확고한 이론을 갖추고 전통의 미의식을 체득, 몸에 익힌 후에야 자신감 있게 우리 철학을 담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내 과감한 실험정신도 거기서 온 거예요. 1975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제1회 김매자 무용발표회를 하면서 한국 무용계 사상 맨 처음으로 버선을 벗고 맨발로 무대에 올랐어요. 의상도 개량했죠. 8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무용 전용소극장을 만들었습니다. 87년 ‘춤본Ⅰ’, 89년 ‘춤본Ⅱ’를 선보였고요. 70이 넘었지만 지금도 춤을 추지 않으면 몸이 아픕니다. 춤이란 삶의 경험과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는 거예요. 한국 춤은 인간 해방의 춤입니다.”

‘한국 창작무용의 대모’로 통하는 김매자 선생은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40년 가까이 창무예술원을 이끌어왔다. 1000회가 넘는 해외 공연과 한국 춤의 기틀을 잡기 위해 춤본을 연구한 업적은 무용계의 귀감이다.

현대 무용과 발레는 한국 무용의 상대 개념으로 나뉜 분류다. 극장예술인 서양 무용은 17세기 궁정 발레에 그 뿌리를 둔다. 지난 4세기 동안 현대 무용, 포스트모던 무용, 컨템퍼러리 무용이라는 형식으로 변화, 발전해왔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야 극장 예술이 도입되기 시작해 아직 1세기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소수의 애호가들 외에 대중과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무용계의 경향은 장르 간 융·복합 및 협업작업이다. 지난 2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 작품 ‘투 인 투(Two in Two·안성수 안무, 디자이너 정구호 연출)’는 2회 공연이 모두 매진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발레 분야에서 한국 무용인의 활동은 괄목할 만하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신임 예술감독을 비롯해 강효정(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김지영(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박세은(파리 오페라 발레단) 발레리나와 김용걸(파리오페라 발레단) 등이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활동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다.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발레리나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모던 발레나 컨템퍼러리 발레 안무가는 탄생하지 않고 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 레퍼토리는 모두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호두까기 인형’ 등 클래식 발레로, 수세기 동안 해외에서 공연되어 온 작품들을 그대로 가져와 공연하고 있다. 창작 역량은 기르지 못해 서양 발레의 버전을 답습한다. 작품뿐 아니라 토슈즈, 의상, 무대장치까지 사온다. 발레의 토착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춤의 대중화와 세계화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춤과 멀어졌던 사람들을 춤추게 하자면 굳게 닫힌 마음부터 열게 해야 하니까요. 우리 몸은 꿈이 춤추는 집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세상 사람들을 춤추게 하면 행복해집니다. 춤을 통해 생명과 평화의 동심원을 점점 키워 가면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이고 접화군생(接化群生)이죠. 뭇 생명이 서로 진실되게 만나고 진화해가는 거죠. 한국 춤은 자연스럽고 기교가 많지 않습니다. 원리만 알면 쉬워서 얼마든지 국민 춤으로 만들고 세계인과 향유할 수 있습니다.”

조화로운 춤 세상은 안무가 최경실(생명 평화 춤 공동체 대표) 박사의 소망이다. 최 박사는 월드컬처오픈(WCO) 서울사무소의 무료 공간 나눔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재능 기부를 해오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춤은 테크닉을 요하지 않는 커뮤니티 댄스다.

말춤으로 세계를 뒤흔든 가수 싸이나 한국 비보이들, K팝 가수들의 활약상을 보면 가무에 능했던 문화 유전자가 우리 시대에 되살아나는 듯하다. 몸 가진 이라면 누구나 춤출 수 있다고 한다. 마당놀이 계열의 전통 춤은 장단과 리듬, 반복성을 갖추고 있어서 대중적 겨냥이 쉽다. 춤의 근원을 파고들지 않고 동작부터 시작하는 맹목적인 테크닉으로는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춤도 결국은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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