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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나리오·웹툰 작가들 R&D연구실로 쳐들어가다


[머니투데이 류준영기자 etbbae@gmail.com]

[[대중 문화예술가들, 과학에서 영감을 얻다]KAIST 제1차 엔드리스 참가자 위기철·심소연·남지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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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심소연, 남지예/사진=류준영 기자
작가들의 창작 보고가 바뀌고 있다. 수 년간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공기 좋고 조용한 시골의 외딴 별장이나 절을 찾아 마치 칩거 생활하듯 집필 하던 모습은 TV드라마에서나 보는 옛 풍경이 됐다. 젊은작가들부터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첨단과학연구시설로 간다.

'왜 갔나' 물었다. 그들은 과학기술 이론에서 기존에 없던 영감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대중문화계 핵심화두인 '리얼리티'(reality·현실성) 확보가 용이해서란다. 더욱 까다로워진 독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상상력만으론 역부족이란 게 중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뇌', '제3의 인류' 등의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특유의 상상력과 과학이론을 접목해 축조한 장대한 스케일의 과학소설을 써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글로벌 출판시장에 등단할 대히트작 작가가 나올 수 있을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는 '투명망토'(?)를 둘러 쓴 세 사람이 있다. 이들은 KAIST 강의실과 보안 A등급 실험실, 교수연구실 등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불쑥 들어온 이들을 KAIST 교수·학생·행정원들이 봐도 반기거나 박대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다. 그들은 과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펜촉과 같은 예리한 감각으로 눈에 담는다.

이들의 정체는 KAIST 아티드트 레지던시 제1회 프로그램(엔드리스, 2013년 10월~2014년 3월)에 참여한 '논리야 놀자'의 작가 위기철 씨와 장편 영화 데뷔를 준비 중인 영화인 심소연 씨,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만화 속 세상에서 '체리보이 그녀'를 연재 중인 웹툰 작가 남지예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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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철
엔드리스는 문학 및 시나리오, 만화작가를 대상으로 교내 외국인 교수 아파트 게스트하우스를 집필실로 내주고 매월 80만원에 창작금을 지원하며, 최장 6개월 간 창작활동 전반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는 KAIST의 첫 과학·문화 융합 프로젝트이다. 원한다면 과학자와 일대 일 대화도 주선한다.

이는 로봇 '휴보'를 만든 오준호 KAIST 교수가 기획했다. 그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자와 예술가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연구활동과 예술활동에 시너지를 꾀할 생각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KAIST는 앞으로 우리나라 과학전문특성화대학이란 명성과 함께 '한국형 대중문화 창작 메카'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4일 KAIST 교정에서 심소연, 남지예 작가를 만났다. 위기철 작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메일 인터뷰로 참여했다.

-프로그램 참여 이유는.

위=작가 생활을 하며 가장 부족하게 느낀 점은 타 분야와 교류였다. 작가한테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대개는 자기 분야 사람들하고만 교류하게 된다. 이공 분야라면 더욱 멀어지기 십상이다. 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과학·기술 분야와 교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했다.

남=어릴 때 TV드라마 '카이스트'를 본 후 과학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평소에 예비과학자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컸다. 이곳에서 상주하면 그들의 생활을 알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심=뇌 과학을 소재로 한 SF영화 시나리오 작품을 준비 중인 데 관련 리서치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찰라였다. 마침 KAIST 모집 공고를 본 친구가 알려줘 지원했다.

-도움이 됐나.

위=막상 와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내가 SF나 과학 소재의 작품을 쓰지 않는 이상 과학·기술 자체를 소스로 삼는다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이 분야 종사자들과 만나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문학은 결국 인생을 다룰 수 밖에 없는 작업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 생활 패턴을 기준으로 하면, 여기 머무는 동안 거의 20년 분량의 사교를 한 것 같다. 이런 사교 활동이 앞으로 내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남=공대보단 물리·수학 등 자연대 쪽 사람들을 자주 만나려 노력했다. 카이스트 드라마가 주로 공대 위주로 구성돼 있어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자연대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우주론 연구실이다. 첨단장비들이 즐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그 연구실에는 대형 칠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A4용지만 있으면 태양계 운석과 행성 등의 연구를 할 수 있다며 내게 볼펜과 A4용지 등의 비품을 한아름 선물로 안겨줬다. 헐!(웃음) 정말 꾀자 교수님이었다. 웹툰 소재로 우주는 좀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회가 되면 국방과학연구소를 직접 가보고 싶다. 다녀오면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차원이 다른 스파이물 하나쯤 쓸 수 있지 않을까.

심=리서치를 혼자하면 시쳇말로 '삽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대 이곳에선 교수님과 1시간만 얘기해도 넘칠 정도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지금 뇌 과학 관련 시나리오를 준비중인 데 KAIST 과정을 몰랐다면 굉장히 몽환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SF영화는 제대로 건드려야지 어설프게 건드리면 거짓말 같은 티가 너무 난다. 나는 리얼리티에 가까운 SF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박사님들이 어떤 연구환경에서 어떤 전문용어를 쓰는 지를 면밀히 관찰했다. 커피숍, 강의실 가리지 않고 따라다녔다.

-대중문화와 과학의 접목, 어떻게 생각하나.

위=제 갈 길 찾은 거다. 인문과 과학은 접목이 아니라 원래 한 뿌리였다. 인문과 과학이 분리된 역사는 그리 길지도 않다. 예전에는 철학과 과학의 구분조차 없었다. 둘 다 세계를 탐구하고 인생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적이지 못한 인문은 궤변이고, 인문적이지 못한 과학은 위험하다. 그래도 인문은 과학적 방법들을 수용해 ‘인문과학’이 되었으나, 과학은 아직 인문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비인간·비윤리 문제가 자주 언급되는 것 아닌가.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 연구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결국 인간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 '왜 과학을 하는가?'하는 근본 의문에 부딪히면 인생에서 해답을 찾는 도리밖에 없으니까. 나도 여기 와서 철학 공부하는 교수님들을 많이 봤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심=SF영화에 대한 선망이 가득했지만 아무리 써도 그 맛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SF로 시작했다가 끝에선 멜로나 다른 드마라 쪽을 전향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SF 외화는 콘텐츠 자체의 정확도와 흥미도 등 그 모든 것의 완성도가 있는 반면, 한국 SF는 흥미위주로 시작했다가, 그것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결말을 내기 일수다. 드라마 힘이나 표현해내는 프로덕션 자체에서 한계점에 봉착한다. 물론 예산차이도 있다. '인셉션'과 같은 영화 한 편 제작비는 한국영화 20개를 제작할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런대 알아야 할 것은 인셉션에는 수많은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시장은 그게 안된다. 그렇다 보니 눈이 높아진 관객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한국SF영화계 미래를 결정할 '키'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선 국내 과학자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토종 SF소설·영화 흥행 가능할까.

위=과학 콘텐츠는 이미 쌓여서 넘칠 만큼 확보돼 있고, 다만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문제이다.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저 같은 작가가 쓰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자가 쓰는 방법이 있다. 작가가 쓰면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만 넓고 깊은 얘기를 할 수 없다. 과학을 따로 공부해서 써야 하니까. 그래서 과학 전문가가 글쓰기 스킬을 익혀 쓰는 방법이 가장 좋다. 서양에서는 이미 과학저널리즘이 하나의 장르로 되어 가고 있다. 과학도들이 모두 연구실에만 박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널리 퍼뜨릴 사람도 있어야 한다. 예술·문화는 일반인과 소통하기 좋은 매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필요한 것이다.

남=미술시장에 비유해 보자. 난해하고 고차원적인 작품이 쏟아지면서 일반인들과 일정 거리가 생겼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발전을 거듭할수록 일반인들에게 먼 얘기처럼 괴리가 생겼다. 국산 SF소설과 영화, 만화 등이 일반인들에게 잘 소화되려면 관련 철학을 이해하기 쉽게 전파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관련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KAIST 엔드리스가 바로 그런 장치 중 하나다.

심=과학을 우리들 삶에 잘 녹여야 한다. 그래서 그 작품을 통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래비티'는 우주과학기술을 이야기 전반에 깔고 있지만 결국 사람에 관한 얘기다. 주연배우 산드라 블록이 지구로 귀향하고픈 마음은 관객들에게 큰 공감대를 산다. 인셉션도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프로그램을 끝낸 소감은.

위=KAIST 총장님께서 우리를 'KAIST 동문'이라고 불러줬다. 그 말 안 들었으면 저도 KAIST를 '잠시 머물렀던 곳' 쯤으로 여겼을 거다. 동문 대우를 해주시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동창회비는 못 내도 KAIST를 잊지는 않을 거다. 무슨 요청이 있으면 적극 협조할 생각이다. 그러니 KAIST는 예술학과도 없으면서 예술가 세 명을 아주 저렴한 예산으로 배출한 셈이다.

남=운영 시점이 대학 방학기간이라서 더 많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카이스트 학기 중에 이 과정이 마련된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향후 활동계획은

위=아마 과학을 소재로 작품 쓸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곳 경험이 제 작품에 녹아들 것만은 분명하다. 캐릭터에 반영되든, 주제에 반영되든 말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며 반성도 많이 했다. 아!, 저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 저리 열심이구나, 하면, 저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좀 더 열심히 내 분야를 파겠다.

남=차기작품은 2가지 웹툰을 동시 연재할 계획이다. 하나는 추리수사물이고 나머지 하나는 KAIST 학생을 소재로 한 만화를 준비하려고 한다. 일반인들 눈으로 봤을 때 젊은 과학도들의 정서 같은 것을 이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지금 쓰고 있는 스토리 메인 콘셉트 중 하나는 코마(COMA,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의 의식도 모니터링이 된다는 것이다. 뇌 과학 연구가 발전해 이제는 시각신호를 시각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다. 즉 이 사람이 뭘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다른 사람이 모니터로 볼 수 있는거다. 이를 주제로 한 시나리오를 최대한 과학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인간적이고 리얼리티하게 살려 볼 생각이다.

◆작가 프로필

▶위기철
-동화 작가/저술가
-창작이론서 ‘이야기가 노는 법’(2013년), 동화 ‘우리 아빠, 숲의 거인’(2012), 동화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2006), 인문서 ‘반갑다 논리야’, ‘논리야 놀자’(1992) 외 다수

▶심소연
-영화연출/시나리오
-3D 단편 ‘락커’(2013), 상업 장편 ‘파이널 레시피’(2010~2012) 외 다수

▶남지예
-웹툰작가
-다음 웹툰 ‘체리보이 그녀’(2012~2014), ‘치고박기 좋은 날’(201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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