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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일 비용은 기한 있지만 통일 혜택은 영원하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그야말로 대박이다. 온 나라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일하고 있는 통일 업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한마디로 몸살을 앓는 지경이다. 그리 고상하지도, 학술적이지도 않은 이 한마디의 중독성이 마치 빈속의 알코올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이제 과거 한때의 동화일 뿐이다. 선진국 반열에 든 한국의 젊은이들은 통일이라는 단어를 낯설어하고 사람들은 평양의 소식보다 뉴욕 증시의 동향에 더 민감해진 지 오래다. 한국 민족주의의 특수성보다 자본주의의 보편성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5000년 단일 민족의 역사를 자랑해온 오늘날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필자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좋아할 수 없는 시대는 구한말이다. 선각자들의 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의 근대화에 실패했으며 한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다. 어린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고 젊은이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본군의 복장을 입고 남태평양의 어느 이름 없는 섬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차가운 중국 땅 어딘가에 묻혀 있다. 두려운 것은 후손들이 구한말보다 우리 시대를 더 원망하는 상황이다. 만일 우리 시대에 통일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통일 문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분단 70년을 바라보고 있다. 세 조각으로 나뉘었던 45년간의 후삼국 시대보다 더 긴 시간을 우리는 갈라진 채 살아가고 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언제 통일됩니까”다. 그럴 때 이런 답을 준다. “언제 통일하고 싶습니까”라고. 통일은 객관적 미래가 아니라 주관적인 의지의 선택이다. 두 번째 질문은 “통일 비용과 편익 중 어느 것이 더 큽니까”다. 우문(愚問)이다. 통일 비용은 일정 기간 지불되지만 편익은 자손 만대까지 영원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의무다.



 필자가 옛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사회주의의 배급제에 의지해 고단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집에서 오는 생필품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짐이 부산항을 거쳐 배로 유럽까지 오는 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그 긴 시간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서울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치면 일주일 남짓이면 되는 일인데도 말이다.



 거의 200만 명에 달하는 남북한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핏줄에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대륙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마치 섬처럼 오로지 배와 비행기로만 국외로 나갈 수 있다. 통일이 되면 남북한 최대 150만 명의 병력 감축이 가능하고 매년 수십조원의 국방비가 생산적 투자로 전환될 수 있다. 이 땅은 대륙과 대양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그야말로 한반도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다. 굶주림과 인권의 사각 지대에서 고통받는 북녘 형제들의 가슴 아픈 현실에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작은 갈등들이 곧바로 전 사회적 진영 간 갈등으로 확산되는 이 피곤한 현실도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박’이라는 화두는 대북 정책에서 통일정책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몇 년 전 한 외국 대사가 필자에게 불쑥 던진 “당신들의 대통령들은 왜 통일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까”라는 말이 지금도 가슴에 진한 멍울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한국의 위정자들은 남북관계 발전을 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과정일 뿐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통일이다. 이제 정파를 떠나 진보와 보수를 넘어 통일을 말해야 할 때다. 통일 문제만큼은 정쟁의 구도를 넘어 초당적인 협력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야당의 협력과 진보 진영의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 통일 준비는 국민적 합의와 범정부, 범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통일준비위원회의 출범을 목전에 두고 하고 싶은 말이다.



 통일준비위원회는 그 많은 위원회 중의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통일을 준비하는 의지와 역량이 결집되는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 남남갈등으로 갈라진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마침내 즐거운 통일, 그리고 아름다운 통일의 꿈을 실현하는 엔진이 되어야 한다.



 뉴스에서 이런 보도를 접하고 싶다. “백두산으로 MT를 간 학생들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았는데 다행히 부상자는 없다고 합니다.” 올레길도 좋고 둘레길도 좋다. 그렇지만 방학이 되면 줄줄이 자전거를 타고 개성, 평양을 거쳐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으로 내닫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만주 벌판을 질주하는 부산발 컨테이너 트럭을 보고 싶다. 서울역에서 유럽의 끝까지 기차로 한숨에 달려가 스페인의 어느 한가로운 시골길을 길을 걸어보고 싶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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