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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영어는 입신의 제1 무기' … 광고로 본 100년 전 한국

상품의 시대

권창규 지음

민음사, 468쪽

2만3000원




“청소년 제군! 초여름(初夏)은 입신의 무기, 영어를 정복하라! 석수쟁이 아들로 총리대신이 되는 실력의 세상인즉, 더욱이 ‘영어’를 아는 것이야말로 입신의 제일 무기이다.”



 1936년 조선일보에 실린 영어학원 광고다. 촌스럽게 느껴지는 일부 표현을 제외하면, 요즘 영어학원 광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제 강점기 학교 교육에서 영어는 일본어에 밀려나 있었지만, 영어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는 컸다. 영어교재와 학습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출세를 위한 스펙쌓기를 요구하는 광고가 사람들을 유혹했다. 이런 상품과 광고의 등장과 더불어, 입신 출세는 양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해야 하는 권리의자 의무라는 근대 의식이 일반인들에게 깊이 뿌리내리게 된다.



 저자는 대한제국과 식민지 시대에 등장한 광고를 중심으로 한국 소비사회의 출현과정을 되짚는다. 100여 년 전, 개항장을 통해 낯선 외국 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물건들을 왜 사야 하는지,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물건들을 구매할 소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매스미디어에 실린 광고의 역할이었다. ‘독립신문’은 광고료를 수입원으로 삼아 신문을 운영했던 첫 번째 사례였고, 대한제국 시기 신문지면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10~50%에 육박하게 된다. 신문과 잡지에 실린 광고는 근대성을 상품 소비와 직결시켰고, 다양한 근대적 가치가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삶으로 흡수됐다.



 책은 광고가 자극한 사람들의 욕망을 출세·교양·건강·섹스·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요약했다. 1934년 동아일보에는 ‘구라부 크림’을 바르고 스키장으로 떠나는 여성이 그려진 광고가 실려, ‘무릇 교양인이라면 레포츠를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겼다. 성(性)이 유희의 대상이 되면서 기생 요금표 광고나 ‘먹으면 그날에 곳(곧) 알게 되는’ 자양장강제 광고도 등장했다. 또한 광고는 소비 대중을 ‘국민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10년 강제병합 이전에는 ‘대한국인’을 내세운 광고가 신문 지면에 실렸다.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에도 국채보상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과 함께 ‘우리 물건’ ‘우리 옷감’ ‘우리 기술’을 강조하는 광고들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진다.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광고 이외에도 박태원·김기림·이태준·김남천 등의 시와 소설, 평론 등을 함께 등장시키며 당대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광고가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꾼다’는 인식은 새롭지 않지만, 책 곳곳에 등장하는 소박하고 직설적인 옛 광고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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