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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치옹호와 정치혁명을 위하여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사회는 지금 공동체의 근본 운영원리 자체가 요동하고 있다. 그 핵심은 정치증오를 넘는 정치축소와 반(反)정치다. 정치 없는 국가생존, 정치 없는 자유와 평등은 전연 불가능함에도 한국에서 정치비판은 이제 정치적대와 정치해체에 가깝다.

 근대 이래 정치의 핵심 주체는 시민과 대표(의회)였다. 근대 여명기에 등장한 ‘국가’라는 말 자체가 종교·귀족·지주 및 사익으로부터의 직립·독립을 뜻한다. 따라서 의회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독립적 의회(대표) 중심의 국가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역전이 발생하고 있다. 공적 대표와 의회가 전체 사회, 특히 기업·언론·학계·종교의 사적 기득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는 동안 대표성과 민주성이 없는 재벌과 관료(법원·검찰·국가정보기구)가 공동체 전체의 공론과 가치를 좌우하고 있다. (의회)정치의 복원을 통해 비로소 군사독재로부터 시민·의회·민주정부로 주권과 결정권한을 찾아온 지 한 세대 만에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공동 활동’을 뜻하는 정치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전제와 시장, 즉 독재화와 기업화 양쪽에 의해 항상 존재해왔다. 전제군주체제를 극복한 이후 막스 베버가 ‘현대국가는 기업’이라고 그 모순적 본질을 간파한 뒤, 정치의 바른 역할이야말로 공동체 발전과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본 연유였다. 전제국가와 기업국가를 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바른 정치는 관료국가·관료화가 아니라 의회국가·의회화다.

 베버의 혜안은 당대 세계를 지배한 극단적인 두 ‘경제결정론’에 대한 통찰의 소산이었다. 인류사에 최초로 체계적인 ‘정치경제’ 관념을 도입한 애덤 스미스의 ‘시장결정론’과, 반대의 이념에서 정교한 ‘정치경제’ 이론을 제시한 카를 마르크스의 ‘토대결정론’을 말한다. 정치부재를 초래한 두 극단적 세계관에서 국가와 정치, 시민참여와 공공영역의 적절한 위치와 역할은 없었다. 해나 아렌트가 말하듯, 볼셰비즘과 시장만능주의는 정치를 적대하며, 그럼으로써 독재와 사익을 극대화하는 반면 공동체의 시민성과 공공성을 해체해왔다.

 레닌과 스탈린을 거쳐 사회주의독재체제 해체로 연결된 카를 마르크스의 토대결정론의 붕괴는, 정치(이론)의 부재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오늘날 글로벌 파탄위기에 직면한 동시에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에 미래의 세계대안을 양도한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의 파산을 뜻한다.

 사실 독재와 사익에 맞서 정치의 공적 역할과 공공성을 바로 세우려는 시도는 이론과 현실 양쪽에서 계속돼 왔다. 현대에만도 아렌트, 마루야마 마사오, 함석헌, 하버마스와 같은 정치철학자들로부터, 스웨덴·핀란드·독일을 포함한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체제의 정치지도자들 역시 전형적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해방과 안전, 자유와 평등을 위해 전체 공동체 자체를 변혁한 링컨과 만델라는 개인의 행복이 전체의 의무라는 정치의 본질을 깨달은 동시에, 타협·대화·설득이 최고의 정치수단이라는 점을 실천한 대표적 정치지도자이자 정치이론가였다.

 ‘민중의 행복이 최고의 법’이라는 언명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근대 공화제의 최고 원칙이었다. 이때 ‘행복’은 구원 또는 안전·안녕을 뜻한다. 그런데 정치만이 ‘모든’ 민중의 안전과 안녕을 고르게 보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 공동체 밖에는 법(규범)과 안전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동체=문명 안에서만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다.

 문명·문명화(civilization)란 본래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체 ‘시민’으로서 공통의 정치문제에 참여할 시민적(civil) 권리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모두의 자유화와 모두의 평등화, 즉 모두의 ‘시민화’와 ‘인간화’를 말한다. 그것이 문명화·문명사회인 것이다. 근대 이전 사적 영역에 존재하는 노예·여성·아동·장애인·야만인에게는 공적 정치문제에 참여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적’이라는 말은 원래 (먹고사는 데 바쁘게 하여) ‘정치에의’ 공적 참여자격을 박탈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민과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공적 참여가 배제된다면 끝내는 먹고사는 문제 자체가 힘겨워진다. 역설적 진리다. 오늘의 끝없는 자살행렬을 포함해 비정규직·해고자·실업자·청년백수·빈곤층·중퇴자들의 눈물겨운 ‘사적’ 삶들은 ‘공적’ 박탈의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문명, 즉 시민적 안녕과 인간적 삶을 제공하기 위한 혁명을 꿈꾸자.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안전과 행복, 자유와 평등을 향한 정치확장, 정치참여, 정치혁명을 시작하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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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