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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한번 못 쏴보고 … 크림서 쫓겨난 우크라이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반 총장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등과 관련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푸틴에게 말했다. 반 총장은 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아르세니 야체뉵 임시총리도 만난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시스]


크림반도는 군사적으론 이제 러시아 땅이다. 우크라이나군이 곧 철수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항복’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서방 간 외교적 대결은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러시아의 크림 병합은 현상(現狀·status quo)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데다 서방 역시 군사개입을 할 의향이 없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오전 친러시아계 자경단원을 자처하는 이들이 세바스토폴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해군기지를 장악하고 세르게이 가이둑 우크라이나 해군사령관과 일행을 억류했다. 가이둑 사령관은 크림 당국의 조사도 받았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심페로폴과 세바스토폴 사이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해군 수송 시설도 장악됐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당초 “크림반도에서 철군하지 않겠다”고 호언했었다. 그러나 합병 선언 다음 날 러시아 흑해함대 장교들이 우크라이나 해군 기지를 둘러보는 사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보따리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모습이 TV를 탔다. 이들은 “우리에겐 (대항하란) 명령도 무기도 없다”(뉴욕타임스)고 했다.

 그러자 불과 몇 시간 만에 키예프 당국이 ‘백기’를 들었다. 안드리 파루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위원장은 “크림반도에 있는 우리 군 장병과 가족들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우크라이나 본토로 이동시킬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유엔이 크림반도 일대를 비무장지대로 선포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항복”이라는 말만 안 했을 뿐 명백한 백기 투항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두고 서방에서도 “현대사에서 가장 매끄럽게 이뤄진 침공”(영국 BBC방송)이란 평가가 나왔다. 지난달 28일 친러 무장세력이 우크라이나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주요 도로에 검문소를 세울 때 이미 승부가 가려졌다는 것이다. 사실상 무혈입성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러시아 노선을 주도한 미국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모세 얄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8일 텔아비브대 연설에서 “미국이 해외에서 약점을 자꾸 노출하면 자신들의 안보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얄론 장관은 “집에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테러는 다시 찾아올 것”이라며 “미국이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브라질도 러시아가 참여하는 7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예정대로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알베르토 피게이레도 외무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가 브라질·러시아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못 박았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부랴부랴 러시아 주변국인 발트해 3국을 방문,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미국은 단호하게 발트해 우방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한 까닭이기도 하다.

 서방은 일단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단 군사적 옵션은 제외했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이 20, 21 양일간 회동에 들어갔다. 이미 지난주 잡힌 일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을 제재 대상에 더 포함시키는 쪽으로 결론을 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그들대로 러시아에 대한 ‘보복’을 했다. 러시아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취소하는 한편 옛 소련 국가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완전히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서방의 제재에 아랑곳 않는 러시아는 크림 합병 절차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18일 서명한 합병 조약을 하원인 국가두마가 20일 비준했다. 상원은 21일 비준할 예정이다. 조약에 따르면 상·하원의 비준이 끝나면 합병을 위한 법적 절차는 종료된다. 완전 합병은 내년 1월 1일 이뤄진다.

한편 19일 유엔 안보리에선 미·러 사이에 가시 돋친 설전이 벌어졌다. 서맨사 파원 주유엔 미국 대사가 “도둑이 도둑질을 해봐야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러시아를 대놓고 비난하자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대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모욕이다. 당장 취소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푸틴 지지율 75.7%=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율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급상승해 5년래 최고치인 75.7%를 기록했다고 현지 여론조사 전문기관 브치옴(VTSIOM)이 20일 밝혔다. 지난 15~16일 1600명을 상대로 한 이번 조사에서 푸틴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11.4%포인트나 뛰었다. 2012년 대선 당시 푸틴의 득표율은 63.6%였다. 브치옴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단호한 대응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러시아 국민의 91%가 크림 병합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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