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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길어올렸다, 이 뜨거운 언어

시인이 말로 붙잡은 대상은 이내 사라질 순간일 수 있다. 김경주의 신작 시집에 수증기·입김 등 형체없이 떠도는 이미지가 많은 이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다. 그에게 스미고 머뭇거리며 서성이던 말들이 시로 영글고, 책으로 묶일 때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경주(38) 시인의 네번째 시집 『고래와 수증기』(문학과지성사)는 느릿하게 왔다.

 “시를 쓰는 속도와 느낌이 다를 텐데 수치로 환원하는 건 우습죠. 몸으로 시가 오는 속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몸의 흐름과 에너지를 따른 거에요.”

 그렇다 해도, 그를 기다렸던 독자는 목이 빠졌을지 모르겠다. 그는 ‘핫’한 시인이었으니. 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는 29쇄를 찍으며 2만 부 가까이 팔렸다. 출판사 문제로 절판돼 2012년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중고책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두 번째 시집 『기담』(2008)도 1만 부 이상 팔렸다. 그의 시에 열광한 건 대중만이 아니다. 김수영 문학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주목도 받았다.

 세속의 잣대로 보면 부족할 것 없는 듯하지만, 그에게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는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기사는//시집은 쌉니다//그냥 눈물이 나/나, 그냥’(‘그냥 눈물이 나’ 중)처럼 시가 하찮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시인은 눈물 짓고, 독자가 등을 돌리는 현실을 고민했다. 산문시가 많았던 초기작과 달리 이번 시집의 시가 간결해진 건 이런 고민 때문이다.

 “대중이 시에서 멀어져 그들만의 리그가 됐어요. 난 여전히 설레고 좋은 데.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처음 시를 공부할 때 나를 매혹했던 게 소리의 질감, 라임(rhyme)이더군요. 소리의 부활, 라임이 사는 게 시가 사는 길이다 싶었어요.”

 2000년부터 소극장 낭독 모임인 ‘펭귄라임클럽’을 이끌고 있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시에는 호흡이 숨겨져 있고, 문학은 숨쉬기 과정이다. 운율이 있어야 온도를 갖고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시를 소리내 읽지 않아 시를 따라갈 틈이 없어졌다. 그가 무대 위에서 시를 낭독하며 호흡을 다듬은 이유다.

 그에게 시는 언어로 언어를 비우는 작업이다. ‘무대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입김이다/그는 모든 장소에 흘러 다닌다/그는 어떤 배역 속에서건 다시 자주 사라진다’(‘시인의 피’ 중)처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증기와 입김, 구름, 물거품 등의 시어는 흘러가며 사라지는 결을 담아낸다.

 시집의 제목이 말하듯 시인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수면으로 올라가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내는 고래처럼 차가운 바다 속에서 길어올린 말들을 숨결과 입김에 담아 흘려보내는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시는 다 설명하지 않아도, 부족한 언어로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에 시인은 끝끝내 실패하는 존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좌절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긍지와 고뇌, 외로움으로 세월에 남겠다. 그렇게 믿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그런 약속으로 읽힌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경주=1976년 광주 출생.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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