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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무 크림', 아삭한 '열무 파스타' … 이탈리아 고향맛이죠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아르모니움'의 셰프인 에마누엘르 세라.

요즘 대세인 배우 전지현도 집에선 요리를 한다. 최근 한 행사장에서 그는 “요리에서 중요한 건 신선한 식재료”라고 말해 주부의 면모를 과시했다. 신선한 식재료, 제철 재료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신선한 식재료를 가지고 평생 한 가지 요리만 해먹고 있다면? 시금치는 시금치 나물밖에 떠오르는 게 없고, 냉이는 냉이 된장국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식재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week&이 제안하기로 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식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할 아이디어 말이다. 비법은 외국인 셰프들에게서 찾았다. 자신의 고향에서 식재료를 공수해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 이 땅에서 재료를 찾고 연구했을 터다. 결과는 예측한 대로였다. 김치나 국수만 해먹던 열무로 ‘열무 파스타’를 만들고, 깍두기 담는 무로 ‘무 크림’을 만들어 냈다. 외국인 셰프가 발견한 신통방통 한국 식재료 활용법을 소개한다.

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 다음으로 큰 섬인 사르데냐는 고 다이애나비를 비롯한 전 세계 명사들이 즐겨 찾는 고급 휴양지다. 이곳에서 미슐랭 원 스타 레스토랑인 사포센투(S’apposentu)의 오너 셰프인 로베르트 페차( Roberto Petza)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도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아르모니움’이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출신의 안토니오 파텔라(Antonio Patella)와 그의 부인인 채진아씨가 마당이 있는 2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현지에 있는 제철 음식으로 만드는 요리가 가장 맛있다”는 로베르트의 철학에 따라 로베르트와 7년 동안 함께 일한 에마누엘르 세라(Emanuelle Serra)가 셰프를 맡고 있다. 에마누엘르가 로베르트 음식 철학의 전도사인 셈이다.

 메뉴를 개발한 건 로베르트이지만 매일 재료와 싸워야 하는 건 에마누엘르였다. 신선한 제철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선 한국에서 그때 그때 나는 식재료들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했다. 이른 새벽 가락시장에 가서 이름 모를 풀들을 직접 향을 맡고 먹어보면서 한국의 식재료를 발견해 나갔다.

 그런 그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무였다. 어느 날 직원들과 무국을 먹던 그는 무의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식감에 놀랐다. 그에게 있어 무는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를 삶은 뒤 로즈메리와 마늘을 넣고 갈아 3시간 동안 푹 고았다. 마치 곰탕을 끓이듯 말이다. 이렇게 탄생한 ‘무 크림’은 구운 문어와 환상적인 조합을 이뤘다. 자칫 질길 수 있는 문어가 무와 만나면서 한결 감미롭고 쫄깃한 맛으로 변했다. 세르데냐의 가정식에선 문어 전채 요리에 파마산 치즈 크림을 사용했지만 한국에선 무 크림이 이 자리를 대신한 거다.

 그의 혀를 감동시킨 또 하나의 한국 식재료는 열무였다. 우리에겐 열무 김치와 열무 국수로 친숙한 열무를 한국에서 처음 접한 그는 그 향긋한 향과 아삭한 식감에 반했다. 데치는 정도에 따라 빛깔과 식감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1분간 데쳐 낸 열무의 그 아삭함이란! 그는 열무의 아삭함과 조화를 이룰 짝으로 쫄깃한 리가토니 면을 선택했다. 철 따라 주꾸미나 문어 등 제철 해산물로 만든 토마토 소스에 리가토니 면과 데친 열무를 넣어 볶으면 열무 파스타가 완성된다.

 무 크림이 들어간 전채요리와 열무 파스타를 먹었다면 메인 요리에 도전해 보자. 재료는 의외로 우리에게 친근한 갈치다. 보통 갈치는 구이를 해서 먹거나 매콤하게 갈치찜을 만들어 즐긴다. 그러나 세르데냐 가정식과 만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갈치 빵말이’.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얇게 썬 빵 위에 올려놓고 김밥을 말듯이 만다. 빵으로 만 갈치를 올리브 오일에 튀기듯 굽는다. 그러면 갈치의 속살은 보들보들 익고, ‘빵 갑옷’을 입은 표면 주변은 육즙이 살짝 고이면서 촉촉해지고 겉의 빵은 바삭하게 익는다. 3가지의 전혀 다른 식감이 동시에 입맛을 자극하게 된다. 여기에 근대의 줄기와 잎, 키조개와 조개 국물, 토마토를 함께 볶은 소스를 준비한 뒤 소스 위에 갈치를 보기 좋게 얹으면 된다.

 이쯤에서 근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그가 가장 아끼는 식재료가 바로 근대다. 근대가 지천에 널려 있는 사르데냐의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가 처음 한국에 와서 근대를 봤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그에게 있어서 근대는 ‘고향의 맛’이나 다름없다. 이탈리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채소인 근대는 한국 것이 조금 더 단맛이 강하긴 하지만 거의 맛이 똑같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근대는 ‘할머니 냄새’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자란 그는 200가구 남짓의 작은 이웃 마을인 할머니 집에서 미각에 눈을 떴다. 할머니는 언제나 집 근처에서 모든 식재료를 구했다. 텃밭과 뒷산에선 아스파라거스·버섯·달팽이를, 마당에선 직접 기른 닭과 오리 고기를 가져와 올리브 오일·마늘·홍고추를 넣고 볶았다. 자연에서 난 신선한 재료와 손자에 대한 사랑이 녹아든 음식이 바로 할머니의 ‘시크릿 레시피(비밀의 조리법)’였다. 그가 “미각은 그 어떤 감각보다 강인하게 추억을 상기시킨다”는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갖게 한 배경이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마들렌(madeleine) 과자처럼 그에게 있어 근대는 그런 존재다.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자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향기다.

 어느새 한국 식재료에 대해 일가견을 갖게 된 그에게 ‘한식 세계화’란 거창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식 식재료를 자유자재로 적용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식은 어떻게 요리하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겠느냐고. 그는 이런 조언을 내놨다.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화된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문화 때문이다. 가족끼리 밥을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가진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린 시절 가족끼리 먹었던 그 맛을 잊지 않고 세계 어디서나 그 맛을 구현하고 전파하려 한다. 한식 역시 가족들에게 밥상에 대한 기억과 그 문화를 잊지 않게 하는 것이 한식 세계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만든 ‘집 밥’의 힘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불변의 진리인 셈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 제철 식재료로 집 밥을 해 먹어 보라. 여기 있는 레시피는 그 식상함을 날려버릴 작은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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