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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여자 아니라 엄마?







고은이가 선물이기는 했지만 ‘갑작스런’ 선물이었습니다.

계획한 임신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생긴 …

임신을 위해 돈과 시간과 체력을 쓰는 분들에게는 ‘병자년에 방죽을 부리는’ 소리일 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습니다.

의학적으로 노산의 기준인 (만) 35세를 ‘가까스로’ 넘기진 않았지만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어디 쉽게 임신이 되는 나이입니까.

혈기 넘치는 고딩ㆍ대딩은 여름 방학철 불장난만으로 애가 덜컥 들어선다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여자에게 임신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주변에는 결혼한 지 수년이 흘러도 임신이 안 돼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았으니 저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은이가 갑작스럽게 제게 오면서 제 지위는 엄마로 등업(?)됐습니다.

준비 안 된 등업이다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맘에겐 실수의 연속입니다.

고은이를 안아 들어올리는 법도 모르겠고, 고은이가 울면 도대체 왜 우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혹자는 엄마는 아이 울음소리만 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라고 하는데, 그거 아닙니다. 백일이 지난 지금도 저는 왜 고은이가 우는지 모르겠습니다ㅠ).

지난해 7월 괌에 여행가서는 고은이 옷을 산다고 산 게 죄다 여름옷을 사왔습니다.

고은이가 12월생인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옷이 필요하다고 그냥 눈에 보이는 예쁜 옷을 산 거죠.

그 옷들은 옷장에 고이 보관 중입니다.
(아, 그리고 아기는 생각보다 빨리 크네요ㅠ. 옷을 살 때나 선물할 때는 사이즈는 무조건 큰 걸로 골라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 안 된 등업으로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특히…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20대엔 최루성 영화가 ‘울어라 울어라’ 체면을 걸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신랑의 무심한 한 마디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해집니다.

모유수유를 위해 신랑이 고은이를 안아 제게 가져다주면서 농담으로 한 “고은아 저기 너 밥” 이라는 말에 ‘나는 고은이 밥으로만 존재하나’ 싶어 울컥합니다.

초보맘이 고은이와 전투를 벌이는 사이 발렌타인데이(2월 14일)가 됐습니다.

오랜만에 기분을 좀 내고 싶어서 신랑이랑 와인이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모유수유가 걸렸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도 시간이 지나면 낮아지니깐, 수유를 하고 나서 고은이를 재운 다음 밤에 깨면 미리 유축해 놓은 모유를 주면 되겠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다시 직수(직접 모유수유)를 하면 되고 … 고은이에게 해가 가지 않는 완벽한 플랜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발렌타인 전날 저녁 신랑에게 말하자 신랑은 “엄마라는 게 생각하는 건. 고은아, 엄마가 너 밥 안 주고 술 먹으려고 그래.”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울컥했습니다. 눈물이 주르륵. 신랑에게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정말 서러운 건 다른 거였습니다. 이제 나는 여자가 아니라 엄마구나 … 하는 점.

지난해 밸런타인데이엔 신랑이 예약한 호텔 발렌타인 패키지 저녁을 먹었습니다. 한껏 차려 입고 샴페인을 즐기며 로맨틱한 저녁을 보냈죠. 그런데 올해는 엄마가 된 탓(?)에 집에서 와인 한 잔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니, 그게 슬펐습니다.

이제 나의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인가 …

임신으로 불어났던 뱃살은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축 쳐지고, 무릎 나온 펑퍼짐한 트레이닝복만 간신히 몸에 맞고, 화장은커녕 씻지도 못해 낯빛은 거무튀튀하고 나도 거울을 보면 고개를 돌리는데 누가 나를 여자로 매력적으로 볼까 …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여자로서의 인생. 붙잡을 수 없는 만큼 목이 메도록 슬펐습니다.

당황한 신랑이 나를 안고 달래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산모” 라고 급 위로해 줬지만 눈물이 쉬이 멈추질 않더군요. (다행히(?) 다음날, 신랑이 독일 출장 때 사 온 아이스와인과 기분이 금세 좋아질 듯한, 심하게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이었죠^^)

그래서 아예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여자 인생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자 인생의 시작이라고. 엄마 인생의 시작과 함께. ‘무조건 옳은’ 고은이를 보고 있자면 새로운 인생이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생각을 고쳐먹기는 했지만 서글픔과 우울함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닙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그리고 그 시간이 서글픔과 우울함의 틈새를 메울 때까진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처방약이 될 겁니다. (혹시 글 읽은 당신이 누군가의 남편이라면 “당신은 나에겐 최고의 여자”라고 말해 보시면 어떨까요.^^)

고란 기자

[사진 설명]
1) 고은이가 할 수 없다면 엄마가 한다. 성질 급한 엄마, 고은이 엎어 놓다.
2) 고은이 덕분에 백 만년 만에 DSLR 꺼내 들다. 고은이는 무조건 옳다는 팔불출 엄마.
3) 근접촬영&NO보정. 이것이 진정한 아기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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