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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구 없는 고시원 빈곤층

서울 영등포시장 인근 2차로 도로변에는 고시원·고시텔 10여 곳이 늘어서 있다. 지난 10~11일 본지 취재팀은 이 가운데 5곳을 심층 취재했다. 이 지역 고시원에만 2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해 흘러들어온 사람들이다. 상당수는 중산층 이상에서 추락했거나 아예 편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2030 세대들이다. 다시 일어서고 싶지만 이들에게 재기할 기회는 거의 없다. 중앙일보는 올해 어젠다 ‘나보다 우리가 먼저’의 일환으로 ‘패자 부활전’이 없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시장 인근 Y고시원. 5층 건물의 대형 옥외간판 아래 3.3㎡(약 한 평) 남짓한 방 2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중 18개의 방 주인은 40~50대 남성이었다. 주변 고시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본지가 취재한 이 지역 고시원·고시텔 5곳에는 모두 173명이 거주 중이었다. 고시원은 별도 임차계약이 없기 때문에 거주자의 연령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다. 다만 각 고시원의 관리자들을 취재한 결과 거주자 가운데 약 100명이 40~50대 남성으로 추산됐다. 대다수가 일용직 노동자로 한 달에 서너 차례씩 월세(21만원)를 쪼개 내야 할 정도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영등포시장 인근의 고시촌 일대. 뒤편으로 보이는 여의도 고층빌딩은 한때 이들이 몸담았지만 돌아가기는 쉽지 않은 공간이다. 직장·가정에서 밀려나 갈 곳 없는 이들은 오늘도 이 고립된 공간을 맴돈다. [박종근 기자]

실직 가장, 고시 실패 명문대생도 몰려

 한 고시원 총무 A씨(48)는 “고시원 거주자 가운데 멀쩡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많다”며 “사업에 실패하거나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가정까지 잃고 이곳으로 내몰린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때 의료기기 업체에서 실직한 뒤 떠밀리듯 이곳으로 왔다. A씨는 “한 번 신용불량자로 찍히면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도 갖기 힘들다”며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최근에 우리 고시원에서 자살한 50대 남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취재진이 고시촌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는 중산층 이상으로 잘살다가 실직·사업 실패 등으로 실패한 이들이 순식간에 ‘주거 난민’으로 내몰린 경우가 많았다. 황모(60)씨는 90년대까지만 해도 한 대기업 건설사의 부장이었다. IMF 때 실직한 그는 18년 회사 생활의 경험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만만한 게 먹는 장사라고 생각해 소규모 우동집을 열었다. 장사에 경험이 없었던 황씨는 주변 가게와의 경쟁에서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개업 2년도 안 돼 식당 문을 닫았다. 투자한 퇴직금 2억여원은 다 까먹었다. 이후 소액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경제적 무능력자로 몰리면서 5년 전에는 이혼까지 당했다.

 그는 현재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감을 알아보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다. 황씨는 “40대 넘어 나 같은 화이트칼라 출신이 회사에서 쫓겨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개인적인 실패로 치부할 뿐 우리 사회는 재취업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시원이 실패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벼랑 끝’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 발간한 ‘비주택 거주가구 주거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자료집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서울지역에는 13만8805가구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2004년(6만2975가구)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고시원 거주자 가운데 62.9%가 무직, 16.2%는 일용직 노동 등 단순노무자다.

빈곤 탈출률 6년 새 32% → 23% 떨어져

 고시원에 거주하는 청년세대도 늘고 있다. 취재팀이 둘러본 영등포 고시촌의 경우 순수하게 시험 준비를 위해 살고 있는 2030세대는 10명도 채 안 됐다. 대부분 거듭되는 취업 실패로 어쩔 수 없이 방값이 싼 고시원으로 내몰리는 이가 많았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정모(34)씨는 20대에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실패한 뒤 ‘취업 삼수’를 했다. 2012년 간신히 한 증권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정씨는 고시원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는 “고시 실패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나이 때문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할 기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저소득층이 중산층·고소득층으로 올라가는 빈곤 탈출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2006년 31.71%에서 2012년 23.45%로 떨어졌다.

 한번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뜻이다.

 드물게 다시 일어서는 이들도 대부분 정부·지자체나 주변의 도움을 받은 경우다.

“신용회복위·주민센터 두드려야 길 보여”

 신용불량자였던 박경자(가명·58)씨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은행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빚 독촉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2011년 지인으로부터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당장 급하게 갚아야 할 빚이 450만원이었다. 위원회의 도움으로 연체 이자를 면제받은 박씨는 원금을 60개월 장기 분할로 월 3만~4만원씩 갚아 나갔다. 빚 압박에서 벗어나자 숨통이 트였다. 그는 지하상가 분식집에서 월 100여만원을 받으며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꼬박꼬박 상환해 온 점이 인정돼 최근 위원회에서 500만원을 대출받아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숙인 쉼터에서 살던 고모(51·여)씨는 2007년 주식 투자에 실패한 뒤 아파트를 경매로 날리고 길에 나앉았다. 닥치는 대로 식당 일을 해 봤지만 두 달 넘게 일자리를 못 구하면서 고시원비도 내지 못해 지난해부터는 노숙까지 하게 됐다. 고씨는 무작정 주민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서울시의 주거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임차보증금 500만원을 지원받았다. 덕분에 그는 친척집에 5년간 맡겨 뒀던 두 자녀와 함께 월셋방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도 구해 한 푼 두 푼 모으는 중이다.

 김문조(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건 공동체의 도움뿐”이라며 “재취업교육과 최소 주거비 지원 등 제도적 차원에서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민경원·이서준·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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