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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저 벌교에서 컸어요, 깐깐한 일본 뚫었죠

32.9% 대 61.1%.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 중소·중견기업과 수출 상위 50대 기업의 수출 비중이다.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은 “사람도 허리가 튼튼해야 건강할 수 있듯이 중견기업이 튼튼해야 나라 경제도 튼튼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에서 허리를 책임지는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은 전체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마저도 수출 규모가 50만 달러 미만인 기업들이 전체의 75%였다.

 국내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컸다. 해외로 진출하려 해도 판로 확보부터 영업망 확대, 물량 증대까지 나라마다 제도와 관행이 다르고 복잡하다 보니 수출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 정도면 넘어볼 만하다’며 과감하게 도전한 기업들도 있다. 주로 기존 사업의 한계에 부닥친 끝에 치열한 고민을 거쳐 새로운 문을 두드린 경우였다. ‘발상의 전환’으로 신시장을 개척한 대표 중소기업 3곳을 소개한다.

 ◆㈜벌교꼬막, 연구원 두고 4억원 투입

지난해 3월 일본 도쿄 식품박람회에 참가한 ㈜벌교꼬막의 부스. [사진 ㈜벌교꼬막]
 지난달 21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앞바다. 어선 9척의 뱃전에 서 있던 어부들이 바다 밑 진흙 속에 묻혀 있을 밧줄 끄트머리를 한번에 쫙 잡아당겼다. 바다를 가르며 떠오른 밧줄망에는 진흙 묻은 2년생 꼬막 수백 개가 매달려 달랑거렸다. 모두 어른 엄지손가락 두 개는 족히 합쳐놓은 듯한 크기였다. 그간 이곳에서 나오는 꼬막들은 우리네 밥상에 올랐지만 지난해 약 18%가 일본으로 수출돼 ‘한국산 꼬막 맛’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들 꼬막의 양식·수출 사업을 하고 있는 ㈜벌교꼬막의 서홍석(46) 대표는 전남에서 20년간 꼬막·바지락 양식업에 종사한 토박이다. ‘토박이의 애환’이 되레 그가 수출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한 계기가 됐다. 서 대표는 “흔히 꼬막은 몇 달 만에 자란 걸 거둬 먹는 줄 아는데 생물 꼬막은 3년을 꼬박 길러야 밥상에 올릴 만큼 큰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적조 같은 자연재해가 생기거나 태풍이 와서 1~2년간 기른 꼬막이 죄다 폐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는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이면 양식장 전체가 울음바다”라며 “하루아침에 쫄딱 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양식을 그만둔 어민도 많다”고 말했다.

 해가 갈수록 시름이 깊어지던 중 재작년에 안면이 있는 일본 바이어 하나가 “아예 꼬막을 가공해서 팔면 어떠냐”고 귀띔했다. 가공용(냉동·고추장 등) 꼬막은 2년산이어도 충분한 데다 원전 사태로 ‘수산물 비상’이 걸린 일본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해 10월 회사를 설립해 이듬해 3월 열리는 도쿄 식품박람회 출품 준비를 시작했다. 또 꼬막가공식품을 만들기 위해 회사 내에 꼬막 전문 연구원 3명을 두고 연구비 4억원을 지원했다.

 서 대표는 “1년 내내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고 KOTRA 후쿠오카 무역관과 함께 여러 바이어를 설득한 끝에 수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물꼬막과 냉동꼬막, 꼬막 고추장 등 지난해 수출 물량은 2000t, 금액으로는 300만 달러(약 32억원) 규모다. 올해 30억원을 투자해 직접 운영하는 가공공장도 지을 예정이다. 가공용 꼬막 물량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2년생 꼬막을 판매하길 원하는 인근 어민들의 꼬막도 매입하기 위해서다. 서 대표는 “2015년 100억원 매출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부터는 꼬막 다시마와 된장도 수출할 예정”이라며 “꾸준히 여러 가지 꼬막 가공식품을 개발해 세계에 벌교꼬막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글벳, 아프리카 현지사무소 추진

지난해 9월 이글벳이 케냐에서 개최한 아프리카 바이어 설명회. [사진 이글벳]
 ‘사람에게 쓸 의약품도 부족한 아프리카라면, 가축에게 필요한 의약품은 틀림없이 더 부족할 것이다.’ 사람이 쓸 것도 없는데 웬 동물용 약이냐는 생각을 뒤집어 아프리카 동물용 의약품 시장을 노린 기업이 있다. 지난해 카메룬에 항생제·주사제 등 총 11개 품목의 수의약품, 규모로는 1만5000달러(약 1600만원)에 달하는 시범 수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국내 동물용 의약품업체 최초의 아프리카 진출이다. 충남 예산에 본사를 둔 동물용 의약품 전문업체 ‘이글벳’ 얘기다.

 이글벳은 1970년부터 동물용 의약품 제조를 전문으로 해온 회사다. 국내에서 축우·양계업이 성장할 때 덩달아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을 이뤘지만 90년 초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며 급격히 정체기를 맞았다. 2012년 기준 약 25조원으로 국내 시장의 40배가 넘는 해외 수의약품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때부터다.

 90년대 중반부터 동남아시아에 수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활로를 찾았다’고 하기엔 규모가 작았다. 동물용 의약품의 강자인 네덜란드 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인구 대비 가축시장이 크기 때문에 사업이 성공하면 훨씬 효율이 높다”는 게 이유였다. 카메룬의 경우 동물용 의약품 시장 규모가 1000억원, 수단이나 에티오피아의 경우는 5000억원 이상이다. 2013년 6월 카메룬 바이어와 협상을 시작한 끝에 KOTRA 두알라 무역관의 보증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김승호 해외사업부 상무는 “아프리카는 나라마다 먹지 않는 동물이 저마다 달라 초기에 조건을 맞춰 수출하기가 까다롭지만 동물용 의약품을 자급할 제조업 기반이 없어 한번 진출하면 꾸준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의외로 장기적으로는 시장도 안정적이었다. 한 국가의 시장 규모가 줄어들면 인접 국가로의 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이지리아의 내부 소요로 수출이 저조하자 축우 산업이 활발한 나이지리아 서쪽 토고나 양계업 위주인 남쪽의 카메룬으로 판로를 뚫는 식이다.

 유럽산보다는 20% 싸고, 중국산보다는 20% 비싼 한국산 의약품에 대한 현지의 반응도 좋았다. 초기 수출 뒤 3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아프리카 바이어들을 모아 ‘바이어 데이’도 개최했다. 사업 확장을 위해 올해부터 케냐에 현지사무소를 설립하고, 나이지리아가 안정되는 대로 추가 사무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물량을 늘려 수년 내 아프리카 수출 규모를 40만 달러(약 4억3000만원)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예산 본사에 현 공장의 2.5배 규모의 신축 공장을 올 10월 완공한다. 김 상무는 “40년간 동물용 의약품에 종사해왔던 노하우를 살려 아프리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호컴넷 “이란 ATM 수요 6만 대 넘어”

지난해 11월 청호컴넷과 이란 ATM 생산업체 페브코와의 수출 계약식. [사진 청호컴넷]
 청호컴넷은 그간 미국·유럽의 무역제재 조치로 국내업체들이 덩달아 수출을 생각지도 못했던 이란 시장에 금융자동화기기(ATM) 부품을 수출한 경우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이란 최대의 ATM기기 생산기업 페브코와 3년간 8000만 달러(약 854억원) 규모의 ATM 부품을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다.

 “서구의 기업들이 이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최대한 기회로 삼자”는 게 청호컴넷이 이란에 수출을 성공시킨 계기가 됐다. 지난해 여름부터 KOTRA 테헤란 무역관을 통해 수출 관련 상담을 진행했다. 사실 페브코는 지난해 7월까지 중국산 부품 수입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이에 이병우 테헤란무역관장이 “선진 기술을 갖춘 청호컴넷이란 회사를 아느냐”며 높은 부품 품질과 확실한 사후관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직후 청호컴넷은 이란 측 바이어인 라얀 그룹의 무함마드 로라스비 회장과 구매담당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계약 성사에 만전을 기했다.

 이란의 ATM 소요량은 약 6만5000대. 하지만 현재 보급량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만 대 수준이다. 게다가 인구가 한국의 두 배가량으로 많고 지폐의 품질이 나빠 ATM이 쉽게 마모된다. KOTRA는 “매년 보급대수의 10%를 훌쩍 넘는 기기가 교체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청호컴넷은 “이란이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앞으로 동쪽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나 서쪽의 동구권 국가들과 러시아 시장까지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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