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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안, 또 세계 휩쓴 날 … 옷 벗은 '쇼트트랙 대부'

‘쇼트트랙의 황제’ 빅토르 안이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을 차지한 17일. ‘한국 쇼트트랙 대부’ 전명규 교수는 빙상연맹 부회장에서 물러났다. 빙상연맹은 스스로 개혁을 하겠다며 빙상발전위원회를 출범했지만, 현직 연맹 임원이 절반 이상 포함돼 변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몬트리올(캐나다) AP=뉴시스]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이 17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끝난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1000m 1위에 오른 데 이어 3000m 수퍼파이널 3위를 기록하며 2007년 이후 7년 만에 세계선수권 챔피언을 되찾았다.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6회 우승(2003~2007, 2014년)은 남자 쇼트트랙 최다 기록이다. 지난달 소치 올림픽 3관왕에 오른 빅토르 안은 러시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같은 날 전명규(52·사진) 한국체대 교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에서 물러났다. 연맹은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명규 부회장이 소치 올림픽 성적 부진에 책임지고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다.

 연맹의 실세로 불렸던 전 교수는 소치 올림픽 기간 내내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남자 대표팀이 노메달에 그친 반면 빅토르 안은 눈부시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씨가 “전 교수가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전 교수 눈 밖에 난 현수는 러시아 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파문이 커졌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안현수 선수의 문제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와 안현수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였다. 2002년 1월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이었던 전 교수는 만 17세였던 안현수를 선발전 없이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안현수는 그해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든든한 ‘줄’을 잡고 한국 쇼트트랙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당시 남자 대표팀 선수들은 “안현수의 들러리가 되기 싫다”고 했다. 안현수는 2006 토리노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선수들과 훈련했다. 그러면서도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전 교수는 ‘쇼트트랙의 대부’로 입지를 확실히 다져왔다. 그는 확실한 에이스를 두고 나머지 선수들이 돕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개인종목인 쇼트트랙을 단체종목처럼 운영한 것이다. 전 교수는 선수 발굴 능력과 다양한 전략 개발에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국내외로 뻗어 있는 인적 네트워크까지 갖춰 빙상계 1인자로 군림했다. 지금까지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이 따낸 26개 금메달 중 21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고, 대부분 그의 제자들이 이뤄낸 성과다. 안현수는 특히 아끼는 제자였다.

 그러나 에이스가 우승을 독식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파벌을 만들었다. 전 교수가 이끄는 한국체대 그룹과 비(非)한국체대 그룹으로 나뉘었다. 2010년 쇼트트랙의 병폐가 세상에 드러난 ‘짬짜미’ 사건은 파벌싸움에서 비롯됐다. 선수 간 구타사건도 있었다.

 사제지간이 갈라진 건 2007년을 전후해서다. 전 교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현수가 성남시청에 입단한 뒤 대표 선발전 등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게 부친 안씨의 주장이다.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안현수는 2010 밴쿠버 올림픽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게다가 성남시청마저 해체되자 안현수는 러시아로 귀화했다. 국내 쇼트트랙에 발을 못 붙이게 했다는 것도 안씨의 말이다. 이때 빙상계는 출신 학교로 갈리는 게 아니라 전 교수의 절대권력 아래에 놓였다는 것이다. 파벌 싸움의 수혜자 안현수가 피해자 빅토르 안으로 바뀌었다.

 남자 대표팀은 소치 올림픽에서 12년 만에 노메달에 그쳤다. 에이스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쇼트트랙의 한계가 드러났고, 전 교수에겐 비난이 쏟아졌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박세영(21·단국대)이 1000m 3위, 종합 5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여자 대표팀 심석희(17·세화여고)가 종합우승, 박승희(22·화성시청)가 종합 2위를 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여자 대표팀은 소치 올림픽에서 금2·은1·동2개를 땄다.

 빙상연맹이 빙상발전위원회 출범을 알렸지만 10년 넘게 뿌리내려온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 교수를 ‘희생양’ 삼아 내보내는 건 아닌지, 내부 인사 위주로 꾸려진 발전위원회가 강도 높은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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