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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어느 공공기관의 용기 있는 고백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
올해 1월 중순 유길상 한국고용정보원장이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개원한 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의욕과 열정을 찾을 수 없다.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유 원장은 지난해 12월 10일 취임했다. 딱 한 달 만에 내놓은 그의 진단은 한마디로 “국민에 대한 서비스는 안중에 없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고용정보원은 국가의 인력수급 전망이나 워크넷을 통한 일자리 연결과 같은 일을 하는 고용정보의 총괄 조직이다. 이런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니 국가 고용서비스가 엉망이라는 얘기다.

 그의 진단이 나온 지 2개월여가 흘렀다. 고용정보원은 최근 자기반성문을 내놨다. “고용정보의 총괄 조직으로서 단순 보고서만 발간하고, 일부 주요 정책은 누락하는 등 부실한 분석으로 연명했다” “고용서비스가 수요자(국민)와 동떨어진 공급자 편의주의에 머물고 있다” “신뢰도는 바닥이고, 진로지도 기능은 미흡하다” “고용보험과 같은 다량의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정보 유출과 유실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성과보다는 인맥에 따른 계파가 형성돼 있다”…. 공공기관으로선 치명적인 치부가 총망라돼 있다.

 그런데 노조의 반응이 의외다. 박기영 노조위원장은 “눈치 보여서 얘기 못하던 걸 직원들이 속 시원하게 다 얘기했다. 반성문에 있는 내용만 고쳐도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를 알면서도 그냥 쉬쉬했다는 것이다.

 기관 내 모두가 다 아는 것을 그동안 왜 고치지 못했을까. 반성문에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학습된 무력감으로 업무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에 대한 열정과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도대체 ‘학습된 무력감’이 뭘까. 고위 간부는 “홈페이지 하나를 바꾸려 해도 색깔까지 고용노동부가 지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낙하산 인선으로 원장이 된 정치인은 자기 사람 심기에 바빴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계파가 하나씩 형성됐다. 갈등은 깊어지고, 눈치보기는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다음 달 12일 제2 개원을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조직을 폐기하겠다”고도 했다. 말 그대로 경장(更張)이다. 박 위원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용기 있는 고백에 (정부나 정치권이) 또 끼어들지만 않으면 세계 어느 국가의 국가고용정보기관 못지않은 일류 기관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학습된 무력감’을 심는 외부 입김과 낙하산 인사가 자신들이 선택한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걱정하는 것이다.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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