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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는 한국 국회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일반 시민에겐 다소 낯선 ‘원자력 방호방재법안’이 국회를 깨우고 있다. 이 법안의 처리 때문에 강창희 국회의장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4개국 공식방문 일정을 취소했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어제 최경환 새누리당·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를 잇따라 방문해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그렇게 시급한 법안이었다면 그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은 뭐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선거 열풍, 야권 통합 등으로 적요하던 국회가 갑자기 바빠진 건 오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네덜란드의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때문이다. 한국은 2012년 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국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의장이었던 이 회의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53개국 정상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4개 국제기구 대표들이 모였다. 당시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물질방호협약과 핵테러억제협약을 세계 각국이 비준하기로 결의했고, 특히 핵물질방호협약이 2014년까지 발효되도록 노력한다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은 핵물질방호협약의 비준국이긴 하지만 그 협약을 국내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원자력 방호방재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았다. 총선이 끝나고 대선을 눈앞에 둔 2012년 8월 레임덕에 빠져 있던 이명박 정부가 제출한 이 법안에 국회의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의 핵안보정상회의 뒤 2년이 흘러 정부도 바뀌고 국회도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네덜란드 핵정상회의 개막 연설을 하게 돼 있다. 직전 핵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공동선언을 주도한 한국의 위상을 세계가 인정한 덕분이다. 그런 한국의 대통령이 세계 정상들과 함께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채 국제무대에 나서게 되면 어떨까. 대통령이 달라졌고 국회가 바뀌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것인가. 원자력 방호방재법안은 핵물질 유출 등 핵범죄자를 처벌하는 내용으로 세계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며 과거 정부와 지금 정부, 과거 국회와 지금 국회, 집권세력과 야당세력의 의견 차이가 전혀 없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자기가 제출한 법안의 우선순위와 중요성을 챙기지 못한 정부와 새누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국가 영속성의 1차적 책임은 집권세력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내용에 이견이 없고 국가의 품격에 관한 문제인 만큼 여야가 3월 국회를 열어 이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나라 전체가 요동치는 권력이동 과정에서 어이없이 벌어진 한국적 입법 불발 사태를 이해해 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세계는 한국의 국회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3월 국회가 열리면 지난달에 정부가 제출한 주한 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협정 비준안’도 함께 처리하길 바란다. 이 비준안 역시 정치적 입장 차가 별로 없는 데다 한·미 동맹국 간의 약속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비준안은 계속 지연될 경우 미군에 납품하거나 공사를 맡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피해까지 예상되는 외교문제이자 민생 현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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