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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독도 마누라론'의 함정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분쟁·경쟁이라면 덮어놓고 격해진다. 독도·위안부에서 축구·피겨스케이팅에 이르기까지 죄다 그렇다. 무조건 제압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 맺힌 역사라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대응방식만은 사안별로 정교하게 달라야 옳지 않겠나.



 먼저 독도. 지난달 말 미국의 일본통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방한했다. 강단에선 그는 “아베로선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진 못하겠지만 실효적 지배까진 막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니 “무대응이 최선”이라는 게 그의 충고였다.



 그러자 한 방청객이 손들고 따졌다. “아내를 실효적으로 잘 데리고 산다 치자. 그렇다고 누가 ‘저 여자는 내 마누라다’라고 우기면 그래도 가만있어야 하느냐”고. 강연장엔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강공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적확하게 대변해서일 게다. ‘독도 마누라론’이다.



 이런 자세는 통쾌할진 모르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인 시각으로만 사태를 보는 탓이다. 전 세계에 걸친 영토분쟁은 무려 200여 건. 대서양의 섬 포클랜드를 두고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1982년 전쟁까지 벌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반도만 한 카슈미르를 놓고 60년간 으르렁거렸다. 독도만 한 섬을 놓고 다투는 분쟁은 셀 수도 없다.



 그러니 바다 건너에서 독도 분쟁을 보면 어떻겠나. 손바닥만 한 땅을 놓고 옆 동네 주민끼리 옥신각신하는 꼴이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고속도로 옆에 집채만 한 광고판을 세운들 큰 관심 가질 리 없다.



 심리학에서 ‘주의 끌기(attention seeking)’란 게 있다. 반응이 나빠도 유리하다 싶으면 큰소리로 관심을 끄는 전략이다. 일부러 크게 재채기를 하거나 코를 푸는 게 그 예다. 주변에서 찡그릴지언정 자신의 감기를 알려 이익을 볼 수 있단 심리가 발동한 거다. 아이의 이유 없는 짜증도 주의 끌기일 공산이 크다. 이게 바로 일본의 작전이다.



 이 악습을 고칠 묘책은 뭘까. 바로 ‘전술적 무시(tactic ignoring)’다. 아무리 떠들어도 못 들은 척하면 그뿐이다. 좀 지나면 저절로 조용해진다. 사석에서 만난 외교관들은 늘 독도에 대한 전술적 무시를 역설해왔다. 요즘 독도 분쟁 알리기에 혈안인 외교부 방침과는 딴판이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외교 당국마저 정치권에 휘둘려 일본 작전에 말려드는 분위기다.



 늘 입 다물라는 게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목청껏 외쳐야 한다. 위안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안이다. 가녀린 소녀들이 참혹하게 짓밟힌 사연엔 누구나 피가 거꾸로 솟는다. 미국·캐나다·네덜란드 등 7개국에서 16개의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된 것도 다 그래서다.



 그럼에도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한다. 스스로 몸을 판 거라는 억지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무수하다. 성노예로 내몰렸던 네덜란드 여성 7명은 이들에겐 특히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네덜란드인까지 자발적 매춘부라 우기긴 어려운 탓이다.



 이들 벽안의 위안부 중에는 얀 뤼프 오헤르너라는 91세 된 할머니가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네덜란드령 자바섬에서 살았던 그는 1994년 위안부의 참상을 고발하는 책을 내고 미 의회 청문회에도 섰다. 그런 그는 영국인과 결혼 후 호주로 이민 간다. 아시아를 넘어 네덜란드·호주까지 위안부 문제 당사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 전쟁터에서의 성폭력은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보스니아·콩고·르완다 내전에서 벌어진 집단강간의 처참함이 낱낱이 공개된 덕이다. 유엔도 2008년 성폭력 퇴치를 위한 대대적 캠페인을 시작했다. 14일 아베 총리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꺼림칙한 건 아베 정부가 표변해 왔다는 거다. 이번에도 “고노 담화의 검증은 계속하겠다”고 토를 달았다. 계승한다면서 검증은 또 뭔가. 일본 우익 언론에서도 “궤변에도 정도가 있다”는 질타가 나왔다.



 때마침 6월 런던에선 ‘분쟁지역 내 성폭력 정상회의’가 열린다. 아베 정부가 말을 뒤집으면 위안부 만행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를 규탄할 호기로 삼을 만하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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