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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29>축구 전술의 역사

이충형 기자
축구는 얼핏 단순하고 날것 그대로의 스포츠로 느껴진다. 하지만 1명의 선수교체나 포지션 변경으로 전세가 뒤집히기도 하는 것이 축구다. 포메이션은 각 팀의 특징을 그대로 말해주는 설계도다. 돌아온 FIFA 월드컵의 계절을 맞아 축구 전술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알아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각 팀의 포메이션 그래픽은 『한눈에 축구의 전략을 읽는다』(이수열·2006)를 참고했다.



뻥축구에서 4-2-3-1까지 진화 … 4백이 현대 축구의 대세

이충형 기자



올해 브라질 월드컵(6월 12일~7월 13일) 공인구로 사용될 브라주카.


우선 포메이션의 개념을 잡고 시작하자. 현재 선진 축구리그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4-4-2에서 맨 앞의 4는 수비 라인, 가운데 4는 미드필더진, 뒤의 2는 공격 라인을 말한다. 장기를 시작할 때 말을 질서 있게 배치하듯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들이 가지런히 3선을 형성한 채 경기가 시작된다(전술에 따라 4선, 5선 라인도 가능하다). 경기 땐 이 라인을 기본으로 해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각 팀은 감독의 철학과 선수들의 특성에 따라 최적화된 전술을 짠다.



 근대 축구의 시작은 통상 잉글랜드에서 축구협회(The FA)가 창립된 1863년으로 본다. 이때부터 축구 규칙이 확립되고 남미 등 신대륙으로 축구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포메이션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한 명의 수비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죄다 상대 문전에 포진했다. 말하자면 1-9 시스템이다.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건 당시엔 전진 패스를 받은 최종 공격수와 골대 사이에 골키퍼 포함해 수비수 2명이 있으면 오프사이드(1925년 수비수 1명으로 룰 개정)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격수와 골키퍼 간 일대일 찬스가 나기 힘들었고 수비가 비교적 수월했다.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공격수 2명을 뒤에 배치했다. 1-2-7이 된 것이다. 이 2명이 미드필더의 조상이다. 이들은 측면으로 쳐들어오는 상대 공격수를 막고 공수 간을 연결했다. 1880년대 잉글랜드에서 후방을 좀 더 두텁게 발전시킨 2-3-5 시스템이 나왔다.



30년대 오스트리아의 2-3-5



1930년대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2-3-5를 변형시킨 MM(더블M) 시스템으로 ‘기적의 팀’이란 찬사를 받았다. 공격수 5명 중 2명을 처진 위치에 놓아 2-3-2-3을 형성했다. 거꾸로 놓고 보면 M자 2개를 쌓아놓은 형태다. 처진 공격수 2명이 중원을 분담하고 양쪽 미드필더는 측면 수비와 공격 전개에 참여, 오늘날의 양쪽 윙백과 비슷한 플레이를 하는 등 현대 축구의 진화 방향을 잡아갔다. 또 공격 라인부터 1차 수비에 가담하며 압박 축구를 구사했다. 3백(3명의 수비라인)을 채용, 3-2-2-3 형태로 대형을 만드는 WM 시스템도 생겨났다.



50년대 헝가리의 4-2-4



50년대 이후 세계 축구는 푸슈카시 페렌츠가 이끈 헝가리 대표팀과 펠레·가린샤의 브라질 대표팀이 주도했다. 이 팀들은 기본적으로 4-2-4 대형을 채택했다. 2명의 미드필더는 이전 공격과 수비의 보조 역할에서 벗어나 경기 흐름을 주도적으로 조율하며 ‘축구는 중원 싸움’이라는 인식을 심었고 처음으로 4백을 채택했다.



 헝가리가 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준우승하고 브라질이 58년(스웨덴)·62년(칠레) 월드컵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4-2-4는 전성기를 누렸다. 이들을 깨기 위해 다른 팀들이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며 축구에 백가쟁명 시대가 도래했다.



 한동안 시원찮은 성적으로 ‘무늬만 축구 종가’였던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벌어진 66년 월드컵에서 적진에 붙박이 측면 공격수를 두지 않았다. 미드필더를 보강해 중원을 더 촘촘하게 만들었고 수비진의 좌우 풀백(윙백)이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측면 공격을 분담했다. 문전에선 체격이 좋은 공격수 로저 헌트와 제프 허스트에게 길게 공중 볼을 띄워주는 ‘포스트 플레이’를 활용했다. 이런 전술로 잉글랜드는 첫 월드컵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70년 월드컵 브라질의 4-3-3



브라질도 진화했다. 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4-3-3을 들고 나왔다. 펠레를 중심으로 자일지뉴·히벨리누 등 6명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는 끊임없이 자리를 바꿔가며 문전으로 쇄도했고 오른쪽 수비수 카를루스 알베르투까지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현대적 윙백의 전형을 보여줬다. 축구 역사상 최강의 공격력을 보인 팀으로 꼽힌다.



60년대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카데나치오



브라질의 무시무시한 공격 축구는 역설적으로 다른 팀들에 의한 수비의 진화를 낳았다. 이탈리아는 4-2-4가 대세이던 50년대부터 ‘카데나치오’라 불리는 독특한 수비 전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빗장’이란 뜻대로 3~4명의 수비 라인이 대인 방어를 펼치고 뒤로 1명의 스위퍼가 이를 뚫고 나온 상대 공격수마저 쓸어버리는 식으로 실점을 봉쇄한다.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 축구 리그(세리에A)는 현대 축구의 흐름이 된 ‘선수비 후공격’을 가장 먼저 정착시켰다. 이기길 좋아하기보다 지길 더 싫어하는 그들의 특성과 맞아떨어졌다.



 스위퍼는 리베로로 진화한다. 최후방에서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 땐 전진해 자유롭게 공격에 가담한다. 74년 서독 월드컵 패권을 차지한 서독팀의 야전사령관 프란츠 베켄바워는 ‘리베로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현 한국대표팀 감독인 홍명보도 현역 시절 리베로로 활약하며 공격수 못지 않은 득점력을 선보였다.



 60년대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아약스(네덜란드)팀에서 비롯된 ‘토털 풋볼’은 서독 월드컵 2라운드에서 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서독·브라질을 연파하며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결승에서 서독에 패했지만 당시 네덜란드는 격이 다른 축구를 선보였다. 수비-공격 라인 간 공간을 극도로 압축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포지션 간 자리를 바꿔가며 공을 가진 상대를 압박했다. 멀티 플레이어가 된 선수들은 공격-중원-수비 간 역할 분담의 벽을 허물었다.



90년 월드컵 서독의 3-5-2



80년대는 3-5-2의 시대였다. 80년대 중반 이탈리아 유벤투스는 1명의 스위퍼(리베로)와 2명의 스토퍼로 3백을 구성하고 골키퍼와 3~4명의 미드필더가 순식간에 수비에 가담하는 수비형 3-5-2로 유럽 챔피언에 올랐다. 공격은 미셸 플라티니(프랑스)란 걸출한 플레이메이커와 투톱이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도 디에고 마라도나가 중심이 된 3-5-2로 86년 멕시코 월드컵을 거머쥐었다. 3-5-2는 미드필더를 늘리고 1-2-3선 간 간격을 줄인 강력한 압박축구 전술이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국 서독과 이탈리아(3위)를 비롯, 축구 선진국 대부분이 3-5-2를 구사해 이 대회 경기당 득점은 2.2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94년 월드컵 브라질의 4-4-2



유행은 다시 4-4-2로 바뀌게 된다. ‘오렌지 3총사(반바스텐·훌리트·라이카르트)’가 활약한 90년대 초반 AC밀란(이탈리아)이 선도했고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이 전술로 우승하며 새 패러다임이 됐다. 현재까지도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를 비롯, 유럽 빅리그의 많은 팀이 4-4-2를 기본으로 한다. 3백이 대인방어를 펼치는 3-5-2와 달리 4백이 지역 방어를 펼친다. 4명의 수비수는 일(一)자 대형을 유지하며 순식간에 전진, 상대 공격수를 오프사이드 함정에 빠뜨린다. 특히 양쪽 윙백의 기습적인 오버래핑이 이 전술의 강점이기 때문에 위력적인 4-4-2를 구사하려면 훌륭한 윙백이 필수적이다. 2000년대 브라질의 전성기 땐 카푸-호베르투 카를루스라는 세계 최강의 윙백 콤비가 있었다.



2000년대 프랑스의 4-2-3-1



4-4-2의 변형으로 원톱을 내세운 4-3-3 또는 4-2-3-1이 나왔다. 1명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또는 그 반대)로 삼각 대형을 구성하는 것이 이 전형의 핵심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를 호령한 프랑스는 가장 강력한 4-2-3-1을 구사한 팀이었다. 지네딘 지단(공격) 뒤로 파트리크 비에라-에마뉘엘 프티(나중엔 클로드 마켈렐레)가 버티고 선 세계 최고의 허리진이었다.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흔히 ‘더블 볼란치’로 불리는데 상대 공격을 수비수에 앞서 차단하고 공격 전개의 시발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현재 선진 축구팀은 대부분 4백을 기본으로 팀마다 특색 있는 전술을 펼친다. 바르셀로나와 이 팀이 주축이 된 스페인 대표팀은 붙박이 공격수 없이 패싱 게임으로 중원에서 공을 소유하다가 빈 공간으로 달려드는 동료에게 연결해 득점하는 ‘제로톱(zero top)’ 전술로 세계 최강 자리에 올랐다.



 한국은 상당 기간 축구의 변방이었다. 83년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당시 박종환 감독이 펼친 전술은 50년대에 유행하던 4-2-4였다. 이후 월드컵에 8회 연속 진출하며 빠르게 선진 축구 전술을 쫓아왔다. 2002년 4강에 오를 때 거스 히딩크가 구사한 포메이션은 3-4-3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4백 전술 수행 능력이 떨어져 현실에 맞는 전술로 최선의 결과를 이뤘다. 현재 홍명보호는 4-2-3-1을 구사한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팀에 4백은 다소 버거워 보인다. 튼튼한 수비를 우선시하는 현대 축구에선 좋은 수비수, 특히 강한 윙백을 보유한 팀이 강하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수비수나 골키퍼로 빅리그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가 적다는 것은 뛰어난 수비수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국 수비수의 기량이 떨어지는 건 축구 선진국에 비해 선수층의 저변이 얕고 공격수 선호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33년까지 ‘FIFA 랭킹 10위 진입’과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선 국제 경쟁력을 갖춘 수비수 육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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