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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극장에 프랑스 국기 날리는 건 문화의 힘 덕분이죠”

셜록 홈즈는 결국 영원히 죽지 못할 운명인가 보다. 원작자 코난 도일이 이미 『마지막 사건』에서 죽은 셜록을 독자의 원성에 못 이겨 『빈집의 모험』으로 살려낸 바 있다. 지난 2월 방영된 영드 ‘셜록’ 시즌3도 이를 근사하게 패러디하며 셜록을 부활시켰다. 아서 코난 도일 재단도 최근 공식 작가를 지정해 신작을 내고 있다.

뮤지컬 ‘셜록 홈즈’ 시즌2로 돌아온 연출가 노우성

한국에선 전혀 새로운 에피소드의 뮤지컬로 탄생했다. 최초의 시즌제 뮤지컬을 표방한 ‘셜록홈즈 시즌2: 블러디게임’(30일까지 압구정동 BBC아트센터)이다. 2011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전작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 이후 ‘노래하는 셜록’의 3년여 만의 컴백이다. 소극장에서 시작한 ‘앤더슨가의 비밀’은 잘 짜인 드라마와 기막힌 반전, 낭만적 주제와 감각적 음악, 창의적인 장면전환까지 빈틈없는 완성도로 창작 뮤지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아 세 차례 앙코르 공연이 매진행렬을 이어가며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11관왕에 올랐다. 올 초에는 일본 시장에도 안착했다.

제작 발표 시점에 이미 시즌제를 선언하며 매년 여름 돌아오겠다 예고했지만 2탄의 소식은 더뎠다. 새로운 뮤지컬에 대한 기대와 셜록 열풍까지 겹쳐 창작의 부담에 난산을 겪은 걸까. 근 3년의 기다림 끝에 돌아온 뮤지컬 ‘셜록 홈즈’는 어떤 모습일지, 2008년부터 셜록 부활에 매달려 왔다는 노우성(41) 연출을 만났다.

뮤지컬 ‘셜록홈즈 시즌2: 블러디게임’
대극장에서 부활한 ‘셜록 홈즈2’는 블록버스터였다. 명성에 걸맞게 상대도 잭 더 리퍼다. 잭 더 리퍼가 누군가. 1888년 런던에서 두 달간 5명의 여인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현대 역사상 최초의 연쇄살인마. 이 영구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탐정을 살려냈다.

작품은 훨씬 강렬해졌다. 오프닝부터 무려 16분짜리 노래로 잭 더 리퍼의 만행을 쏟아내는 등 완급조절을 잊은 듯한 웅장한 음악의 폭포가 ‘송스루’에 가깝게 드라마를 이끈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사건과 추리에 관객은 숨고를 틈도 없다. 19세기 런던 빈민가를 형상화한 위태로운 무대, 어둠 속에서 치솟는 시체 등 미장센도 인상적이다. 엔딩엔 시즌3의 상대가 루팡임을 암시하며 끝까지 긴장감을 이어간다.

그런데 좀 당황스러웠다. 복선이 촘촘한 추리소설을 읽는 듯, 온 신경을 집중해도 작품의 논리를 다 쫓아가기엔 벅찼다. 2시간40분이 휘몰아치고 나니 게임에 진 듯 허탈했다. 관객을 과대평가한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노우성 연출은 자신만만했다. “스릴러라는 생소한 장르를 정면돌파했을 뿐이며, 바로 거기에 시즌2의 미덕이 있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이미 뮤지컬 ‘잭 더 리퍼’가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2008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시즌 1·2·3의 소재를 다 정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있어도 전혀 상관없다. 이제 뮤지컬 시장이 커져서 실존 인물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함에 있어 관객들도 자유롭다. 뭣보다 우리는 셜록 홈즈가 주인공이다. 홈즈가 실제 있었다면 그런 연쇄살인사건이 없지 않았을까, 최고의 창과 방패가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즐거운 상상에서 출발했다. 사실 셜록 홈즈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재지만, 어떤 소재냐보단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

-홈즈 캐릭터가 영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영드가 나오기 전에 기획한 거다. 2008년 시작한 것을 2014년에 선보일 만큼 공연은 미래 관객을 향해 긴 시간 준비하는 작업이다. 영드와 비슷하다면 태생이 같기 때문이다. 시즌1부터 원작 캐릭터와 전혀 다르단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홈즈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다. 공연 예술에 어울리는 단면을 극대화했을 뿐 다 원작에서 가져온 거다.”

-진작에 셜록 붐을 점친 건가.
“그런 건 아니지만 홈즈를 21세기형 캐릭터라 느꼈다. 주인공인데 허점이 너무 많다. 마약 중독에 사회부적응자가 정의를 지키는데, 정작 정의에는 관심 없고 두뇌회전에만 올인한다. 그러면서 인간적이다. ‘영국법이 아니라 내 마음의 법을 따를 거야’라는 멋진 대사를 날리며 범인을 풀어주기도 한다. 그런 점들이 멋있기만 한 영웅 캐릭터와는 다르고, 그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지금 관객들과 잘 맞는다고 봤다.”

-시즌2가 예상보다 늦어졌다.
“2012년 9월 중극장에 올릴 준비를 마쳤는데, 사이즈가 커져 중극장에 담으면 작품 가치가 훼손될 것 같았다. 대극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 2탄이 나오기까지 20여 년 걸렸는데 불과 2년8개월 만에 만들어냈다는 건 우리 창작진의 기획력과 관객 저변이 그만큼 성장한 덕분이다. 그것만으로도 국내 뮤지컬계가 축하받을 일 아닌가.”

“낯설어도 진보적인 노선이 한국 창작뮤지컬이 갈 길”
시즌1에 비해 불편하고 낯설다는 반응에도 그는 “그런 반응이 만족스러운 결과”란다. “시즌1과 2의 미덕은 다릅니다. 둘 다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 전혀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시즌1은 미스터리 추리물로 범인이 누구냐가 문제였다면, 시즌2는 예고 살인을 홈즈가 막을 수 있을까라는 스릴러 공식에 맞춰 확 바꿨어요. 시즌1을 사랑해준 관객을 믿고 조금은 모험을 한 거죠. 시즌1이 반보 앞섰다면 시즌2는 한 보쯤 앞에서 끌고 가고 싶었어요. 지금 10여 회 올린 시점에 이미 7, 8번 본 관객들이 계십니다. 곳곳에 숨겨진 암호를 숨은 그림 찾듯 발견하며 재미를 느끼는 거죠. 시즌2는 그만의 미덕대로 흘러가야 합니다.”

-어려워 다시 보게 하는 게 전략이자 미덕인가.
“마지막에 다 설명하는 원작소설처럼 간다면 스릴러에 어울리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추리를 해결하다 보니 정보량이 많아지고, 노래·영상 등 다양한 장치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정보를 제공하니 관객이 피곤한 부분은 있다. 그럼에도 스릴러라는 장르를 최대한 뮤지컬화했다는 것이 이 작품만의 미덕이다. 보통 스릴러를 표방하는 뮤지컬들은 굉장히 낭만적으로 풀어 냉정하게 따지면 스릴러가 아니다. 우리는 장르에 어울리는 구성과 음악을 추구했고,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기술적 안배에 의해 적당히 박수받는 여타 뮤지컬과 달리 모든 신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내게 됐다. 그 거친 에너지도 흔히 만나기 힘든 특별한 체험 아닐까.”

그는 대중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놓는 순간 크리에이터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면서, 진보적인 에너지야말로 한국 창작뮤지컬이 취해야 할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보수적인 작품을 지향합니다. 시장이 좋지 않으니 예측가능한 쪽으로 안전하게 가는 거죠. 그렇다면 역동적 시장을 가진 우리가 진보적 선택을 하자는 겁니다. 브로드웨이의 공식은 몇 십 년간 지속되고 있고, 우리 창작진도 이제 빠삭한데, 쉽게 그들의 공식을 따라간다면 과연 우리 뮤지컬의 언어는 이런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요? 그 순간을 위해 모든 공식을 거부했습니다. 셜록 홈즈라면 이런 도전을 해야 한다는 거죠.”

시즌1은 일본 라이선스 시장 진출해 호평
애초에 시즌제로 기획한 것도 우리 창작진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공연계에 외국 창작진을 귀하게 모시는 풍토가 있지만 우리 창작력도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례가 없는 기획을 했고, 그 성과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일본 굴지의 공연제작사 도호가 시즌1의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히로인 이치로 마키를 비롯한 최고 배우와 연출진이 참여해 도쿄예술극장 2주간 전석매진, 이례적인 6개 도시 투어로 이슈가 됐다. 요미우리신문은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교묘히 오가며 가슴 아픈 사랑의 대단원을 맞는다”고 호평하며 “좀 분하지만 한국 뮤지컬은 일본에 한 발 앞서 있다”는 홈즈역 하시모토 사토시의 인터뷰를 실었다. 기존 한류 시장이 아닌 일본 공연 애호가들에게 침투했기에 의미가 더했다.

“최종윤 작곡가와 함께 무대인사에 초대받았는데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다는 창작진과 배우들이 우리를 보려고 줄 서서 기다리더라고요. 객석 반응도 좋아서 시즌2도 곧 가게 될 것 같아요. 일본 측에서는 오히려 시즌2가 대본에 빈틈이 없어 각색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형 창작뮤지컬은 ‘영웅’ 등 민족성에 호소하거나 ‘광화문 연가’ 등 추억의 히트가요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주류였다. 일정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한 노선이기 때문이다. 노 연출이 과감히 국경을 초월한 셜록 홈즈를 택한 건 국내 시장의 한계를 인식한 영리한 선택이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진출하려면 그들의 이야기가 수월하다는 판단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작품이죠. 프랑스와 영국은 앙숙이잖아요. 프랑스 아티스트들이 만든 작품을 영국이 상품화해 돈을 벌었지만, 결국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프랑스 국기를 휘두르게 된 거죠. 일본 국립극장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셈인데, 그게 바로 문화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 힘을 믿고 우리 뮤지컬이 본고장 영국에서 공연되는 꿈을 품은 거죠. 지금은 꿈이지만 양질의 콘텐트를 만들어놓으면 길이 열릴 거라 믿습니다.”

시즌1으로 각종 상을 휩쓸자 영화·방송 등 숱한 의뢰가 들어왔지만, 창작 뮤지컬에 대한 비전 하나로 모든 유혹을 뿌리쳤다. “약속했으니까요.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고자 여기에만 매달렸습니다. 안전하게 가지 않은 건 시즌 1·2·3의 조화라는 큰 그림을 위해서죠. 시즌1이 미스터리에 로맨스 넣어 많은 사람이 즐겨 먹게 했다면, 시즌2는 입에 안 맞는다는 사람이 있더라도 진짜 스릴러를 만들고자 한 겁니다. 시즌3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액션 어드벤처로 만들려 합니다. 아름다운 뮤지컬 팩키지를 선물하고 싶달까요. 판타지와 낭만 등 뮤지컬의 온갖 미덕을 동원해 아주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들 겁니다. 거기에 루팡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대죠. 19세기 말 격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루팡과 홈즈가 불꽃 튀는 대결을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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