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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배우는 건 타인과의 사랑 배워가는 과정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특별한 노력에 대한 찬사는 일본 영화가 즐겨 다루는 주제다. 이타미 주조 감독의 소시민적인 영웅들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최고의 우동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담포포’(1985), 탈세자 적발에 혼을 바치는 ‘마루사의 여인’(1987) 속 주인공들이 그렇다. 일본의 신예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도 소시민적인 영웅을 다루는 드라마다. 디지털 시대에 대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로, 얼핏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일에 ‘목숨을 건 듯’ 노력하는 소영웅에 대한 따뜻한 지지의 영화다.

신예 이시이 유야의 영화 ‘행복한 사전’

영화는 디지털 시대가 막 시작되던 1995년이 배경이다. 휴대전화와 전자사전이 출시되고, 인쇄매체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슬며시 퍼질 때다. 그런데 ‘행복한 사전’의 사람들은 언제 완성될지 모를 사전의 제작에 착수한다.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고, 중간에 사업이 포기될 수 있으며, 설사 완성이 된다 해도 전혀 보답받지 못할 노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유명 출판사의 사전편찬팀은 현대식 본관이 아니라 오래된 별관에 있고, 여기에 새로 지원하는 직원도 거의 없다.

이때 제시되는 인물이 신입사원 마지메다. 최근의 일본 사회(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미성년 같은 외톨이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그는 남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을 때 더 편안해 보인다. 가족도 없는 것 같고(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가족 이야기는 없다), 최근 10년간 하숙하고 있는 주인 할머니와 마음을 나누는 정도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비사교적이라 오래가지 않아 회사에서 쫓겨날 것 같다. 그런데 사전편찬팀의 팀장이 볼 때 그는 편집자로서는 적임자다. 성찰적이고, 치밀하며,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지메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사전제작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15년은 언어에 대한 ‘행복한 사전’의 연서(戀書)에 다름 아니다. 단촐한 팀원들은 새로운 단어를 수집하기 위해 늘 주머니에 수첩을 넣어 다니고, 수집된 낱말의 의미를 시대에 맞게 새로 정의한다. ‘오른쪽’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서로 토론을 벌이는 과정은 하나의 낱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대상인지에 대한 고백처럼 보인다. 이들은 ‘10’자의 ‘0’이 있는 자리가 ‘오른쪽’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해석이 공적인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 결국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언어라는 점을 넌지시 비춘다.

‘행복한 사전’에 따르면 언어를 배우는 건 결국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걸 배우는 것인데, 이건 우리 모두가 경험한, 혹은 경험했다고 믿는 사회화의 과정이다. 마지메는 언어학 석사까지 받았지만, 여기에는 서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말 한마디 없이 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세상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소년의 고집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가 해석을 맡은 표제어는 ‘사랑’이다. 마지메가 사랑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은 실제로 그가 사랑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행복한 사전’은 사전을 만드는 데는 언어학 학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곧 말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발견이고, 또 그 발견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마음의 자세라는 것이다. ‘행복한 사전’은 소년 마지메가 말과 사전을 통해 어른스러운 사랑을 배워 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인 셈이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행복한 사전’으로 지난 7일 열린 제37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했다. 경쟁작이 코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감독의 화려한 출발을 알리는 소식이다. 하지만 신예의 작품치고는 형식의 보수성은 차치하고라도 개인적인 세계로의 협소한 집중이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의 요동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거의 지워져 있다. 영화는 소통의 아름다움을 대단히 소중하게 그리고 있는데, 진작 소통해야 할 대상은 너무 좁게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주인공 마지메 역의 마쓰다 류헤이는 거장 오시마 나기사의 유작 ‘고하토’(1999)에서 미소년 사무라이로 나왔던 그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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